중국의 정치 공세를 막는 대만의 투명한 선거관리
송재윤의 슬픈 중국: 변방의 중국몽 <마지막 회>
한반도 게임: 미중 전쟁과 코리안 딜레마 (3)
2차대전이 끝나고 5년 지나 6.25전쟁이 터진 그 순간부터 세계는 두 진영으로 갈라져서 40여 년간 냉전을 치러야만 했다. 6.25전쟁의 결과 동북아에선 대한민국과 중화민국(대만)이 공산화의 위험을 벗어나 부강하고 자유로운 민주주의 체제로 성장했다. 이와 달리 마오쩌둥 사상에 포박당한 중화인민공화국은 1978년 12월에야 개혁개방의 기치를 내걸고 교조적 공산주의 이념에서 벗어나서 급속한 경제성장의 일로로 나아갈 수 있었다.
2010년 중국은 일본을 제치고 세계 제2위 경제 규모를 달성할 수 있었으나 그때부터 자유주의 국제 질서와의 불화가 시작되었다. 2020년 중국발 팬데믹 이후로 미주, 유럽, 아시아 주요국들은 반중(反中)의 국제 공조, 억중(抑中)의 군사 동맹을 강화하고 있다. 세계는 지금 제2의 냉전을 목도하고 있다. 제1차 냉전이 미국과 소련의 대결이었다면, 제2차 냉전은 미국과 중국의 대결로 전개되는 양상이다. 1950~1953년 한반도에서 격돌했던 미국과 중국은 다시금 경제적 이해득실을 넘어 이념적 근본 차이를 둘러싼 군사·외교적 갈등상태에 놓여 있다.
중국에 맞서는 대만의 저력
지난 회 살펴보았듯, 제2차 냉전 시기 미·중 대결의 가장 핵심적 두 지역은 바로 한반도와 양안(兩岸)이다. 이미 핵무장에 성공한 북한은 한국, 일본, 나아가 미국을 조준하고 있다. 대외 무역 총액의 98.3%를 중국에 의존하고 있는 북한은 현실적으로 중국의 핵 전초기지가 되어 있다. 중국은 대만과 한국에 고분고분한 친중 정부를 세우기 위해서 온라인과 오프라인, 합법 영역과 불법 공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저돌적이고도 다각적인 방식으로 광범위한 정치전(政治戰, political warfare)을 벌이고 있다.
정치전이란 병력을 동원하여 물리적으로 충돌하는 군사적 기동전(kinetic warfare)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직접 싸우지 않고서도 적국을 무너뜨리기 위해서 전개하는 모든 형태의 소리 없는 전쟁을 의미한다. 가짜뉴스나 허위 정보로 대중의 현실 인식을 교란하는 인지전(cognitive warfare), 소셜 미디어나 언론 댓글로 여론시장을 파고드는 선전전, 전쟁 공포나 경제 불안을 조장하는 심리전, 문화예술계를 장악하여 군중 의식을 지배하는 문화전, 대중매체와 언론기관을 파고드는 미디어전, 국가 기관과 정부 관원을 파고드는 첩보전, 전산망과 인터넷을 교란하고 해킹하는 사이버전, 펜타닐 등의 오피오이드 마약 및 향정신성 의약품을 은밀하게 대량 유포하는 생물학전 등등 정치전의 전략·전술은 헤아릴 수없이 많다. 중국 군부의 정의에 따르면, 정치전이란 한계를 넘어선다는 의미에서 초한전(超限戰, unlimited warfare)이다.
한국에 대한 중국의 초한전은 이미 정계, 관계, 문화예술계, 학계, 재계를 겨냥해 때론 은밀하고(covert), 때론 공공연하게(overt)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다. 물론 중국은 명백하게 외국이라 여겨지는 한국보다는 자국의 영토 일부라 주장하는 대만을 더 심하게 겁박하고 위협한다.
대만에 대한 중국의 정치적 간섭은 노골적인 군사적 협박, 경제적 압력, 외교적 공세에 그치지 않는다. 중국은 대만의 인터넷에 직접 개입하여 허위 정보(disinformation)를 퍼뜨리고, 간첩을 밀파하고, 뇌물을 살포하고, 정치인을 포섭하고, 문화·학술계를 파고들어 선전·선동전을 벌이고 있다. 대만을 파고드는 중국의 정치적 공세는 집요하고 정교한 방식으로 실시간 끊임없이 전개된다.
특히 대만에서 선거가 치러질 때면 중국의 정치적 공세는 더욱 극심해진다. 중국은 대만의 친중 후보를 지원·엄호하는 한편, 반중 후보를 향해선 노골적인 비판과 공격을 가하면서 대만 국민을 공포 속으로 몰아가고 있다. 놀랍게도 그러한 중국의 전방위적 공격 앞에서도 대만 국민은 단호하면서도 여유롭게 대만의 주권과 대만인의 정체성을 꿋꿋하게 견지해 왔다.
과연 대만의 저력은 어디서 나오는가? 첫째, 전 세계 경제에 최고급 반도체를 공급하는 디지털 제조업의 허브로서 대만이 갖는 국제경제적 위상이다. 둘째, 자유, 민주, 인권, 법치 등 범인류적 가치를 선양하며 자유주의 국제 질서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대만인들의 이념적 보편성이다. 셋째, 중화민국의 헌법 정신에 따라서 가장 투명하고. 깨끗하고 공명정대하게 선거 민주주의를 유지하고 있다는 대만인의 정치적 자부심을 꼽을 수 있다. 이러한 세 이유 중에서도 특히 대만 특유의 민주적 선거관리 시스템이야말로 정치적 분열과 이념적 충돌 속에서도 대만의 정치적 독립성을 견지할 수 있게 해주는 가장 중요한 제도라 할 수 있다.
부정선거 논란을 불식하는 대만식 선거관리
현재 캐나다 토론토 부근에 살고 있는 한 대만인 노부부는 2024년 1월 대만 선거에서 투표하기 위해 타이베이행 비행기표를 샀다. 대만 선거에 영향을 끼치기 위해서 중국 정부가 중국 체류 중인 친중 성향 대만인에게 대만행 항공료를 할인해 준다는 보도를 접하고서 노부부는 당장 비싼 왕복 항공권을 구매했다고 한다. 해외 체류하는 대만 국적자는 대략 200만을 헤아린다. 2024년 1월 대만 선거에서도 미국에 살고 있는 수천 명의 대만인들이 태평양 건너가서 참여했다.
대만 선거에선 사전 투표, 부재자 투표, 우편 투표, 재외 국민 투표 등의 절차가 전혀 없다. 대만에선 모든 유권자가 선거 당일 직접 투표소에 가야지만 소중한 한 표를 던질 수 있다. 대만 정부가 당일 현장 투표 외는 그 어떤 다른 방식의 투표도 허락하지 않는 이유는 자명하다. 선거 부정을 완벽하게 근절하고, 부정선거 논란 자체를 원천적으로 뿌리뽑기 위함이다.
대만의 모든 투표장은 선거 당일 투표가 종료되면 순식간에 개표장으로 뒤바뀐다. 투표함은 그 자리에서 한 치도 움직이지 않는다. 그 자리에서 곧바로 그 상태 그대로 투표함이 개봉되기 때문이다. 개표 속도를 조금 앞당긴다는 명분으로 전자장비 따위를 사용해서 표를 먼저 분류하는 절차 따위는 아예 없다.
선거 관리원은 투표함에 직접 손을 넣어 한 장 한 장씩 유권자가 직접 기표한 투표용지를 손으로 집어 들고 참관인들이 눈으로 확인하고 촬영할 수 있도록 머리 위로 활짝 펼쳐 보이며 득표한 후보의 성명을 육성으로 크게 소리내어 외친다. 관리인이 그렇게 득표한 후보자의 이름자를 부르는 행위를 대만에선 “창표(唱票)”라 한다. 특정 후보의 이름자가 불리면, 그 뒤에서 관리원이 사인펜을 들고서 벽에 붙인 종이 위에 인쇄된 그 후보의 이름자 밑에 바를 정(正)자의 한 획씩을 긋는다. 전 세계 최첨단 반도체의 90%를 생산하는 하이테크 산업국 대만에서 먼 옛날 방법 그대로 개표 과정을 고수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어느 사회든 디지털 기술이 발달할수록 최첨단 전자장비에 대한 사회적 불신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인공지능이 발달할수록 온라인 여론 조작은 용이해진다. 지난 몇 년간 러시아와 중국이 미국, 캐나다, 호주 등의 선거에 다방면으로 개입해 영향 공작을 벌여왔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대만과 한국에 대한 중국의 사이버 공격은 갈수록 정교해지고 있으며, 대립하는 정치 세력들의 상호 불신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또 한국식 전자 개표기를 수입해 간 이라크, 볼리비아, 콩고, 키르기스스탄 등 여러 나라에서 공교롭게도 부정선거가 일어났다는 사실은 선거에 사용되는 전자장비에 대한 합리적 의심을 부추긴다.
그렇기에 더더욱 대만은 100% 당일 현장 투표만 실시할뿐더러 투개표 전 과정을 완전 수작업으로 진행한다. 전자장비에 전혀 의존하지 않지만, 대만에선 개표 시간이 전혀 오래 걸리지도 않는다. 일례로 2024년 1월 13일 대만 정부 총통과 입법위원 선거에서는 대만의 유권자 중 72%(대략 1400만 명) 정도가 오전 8시부터 4시까지 투표장에 몰려가서 4200만 장의 투표지에 기표했다. 그리고 불과 5~6시간 지나서 밤 9~10시 정도가 되었을 땐 투표 결과가 대충 다 드러났다. 투표장이 즉시 개표장으로 바뀌어 전국에서 동시에 개표가 진행되기 때문이다. 본래 개표 과정은 각 투표장의 결과 수치를 하나씩 모두 더하기만 하면 끝나는 단순 작업이다. 전자장비의 도움 없이도 인류는 얼마든지 맨손으로 공명정대하고도 유리알처럼 투명한 선거를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치를 수가 있다.
대만에선 1935년 일제 치하에서 최초로 지방 선거가 치러졌다. 당시에는 참정권이 특정 금액 이상의 세금을 내는 일부 시민들에게만 주어졌다. 그때에는 후보자의 이름자를 직접 손으로 기입하는 방식이 채택되었다. 그때도 이미 개표할 때는 창표 관행이 행해졌다. 1950년부터 국민당 정부는 미국의 압력 아래서 도시와 향촌에서 보통 선거를 치르기 시작했다. 당시엔 문맹률이 높았기 때문에 이름을 직접 적는 방식 대신 인쇄된 이름자에 도장을 찍도록 했는데, 국민당은 관리원이 일일이 표를 펼쳐들고서 득표자의 이름을 부르는 창표의 절차를 공식 도입했다. 대만에서도 민주주의가 실현되고 있음을 널리 선전하기 위함이었다.
1970년대 국민당 정권 아래서 대만은 선거 부정 시비가 끊이지 않았다. 선거 관리원이 손가락에 일부러 잉크를 묻혀서 무효표를 만들거나 반대당 후보의 표를 국민당 후보 표로 둔갑시키는 사례도 있었다. 난데없이 전기가 나갈 때 국민당 표를 투표함에 쏟아붓는 사례도 있었다 한다. 급기야 1977년 부정선거에 항거하는 대규모 민중 시위가 발생했다. 이른바 중리(中壢) 사건이다. 대만 민주화 운동의 기념비적 이벤트로 기억되는 1979년 가우슝(高雄) 사건도 국민당 독재에 저항하여 선거 제도의 복원을 요구하며 시작되었다. 실로 험난한 과정을 거쳐 가면서 대만은 오늘날의 투명하고 공정한 선거관리의 전통을 확립했다.
역사적으로 확정할 순 없지만, 아마도 창표의 절차는 과거 중화 제국 향리(鄕吏)들의 문서 행정에서 기원했을 듯하다. 전통 시대 중국뿐 아니라 조선에서도 지방 정부에선 밑바닥 서리들이 2인 1조가 되어서 한 명은 문서 내용을 창(唱)하고, 다른 한 명은 눈으로 확인해서 준(準)하는 절차가 있었다. 그러한 문서 확인의 절차를 창준(唱準)이라 했다. 조선조에서도 창준의 절차를 거치기 때문에 호적(戶籍)대장을 비롯한 관공서의 문서가 공신력을 지닐 수 있었다. 조선조에서 문서 행정을 맡은 하급 서리들도 투명성과 공신력을 확보하기 위해서 입으로 외치고, 눈으로 확인하고, 손으로 받아적는 절차를 거쳤음을 알 수 있다.
한국과 대만의 민주주의, 과연 무엇이 다른가?
1980년대 후반 대한민국과 중화민국(대만)은 거의 동시에 민주화를 이뤘다. 이후 한국에선 네 차례, 대만에선 세 차례나 선거를 통해서 평화적으로 정권 교체가 이뤄졌다. 정치학자 헌팅턴은 공명선거를 통해서 두 차례 이상 정권이 교체하면 민주화가 정착됐다고 판단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른바 “두 차례 권력 교체 시험(two turn-over test)” 이론이다. 한국과 대만은 그 기준을 오래전에 달성했다.
과거 권위주의 군사독재를 경험한 한국과 대만은 지난 20년 넘게 선거 민주주의 모범국으로 전 세계의 칭송을 받아 왔다. 겉만 보면 한국과 대만은 비슷한 수준의 경제 수준과 민주주의 발전 정도를 보이지만, 조금만 더 깊이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과연 한국이 대만과 비교될 수 있을 만큼 안정된 민주주의를 구가하고 있는지 심히 의심스럽다.
지난 40여 년의 한국 헌정사를 돌아보면, 거의 모든 대통령이 임기 중 친인척 비리에 휘말리거나 퇴임 후 구속되었으며, 벌써 세 명이나 국회의 탄핵을 당했고, 한 명은 검찰 조사를 받은 후 극단적 선택을 하기도 했다. 대만에서도 민진당 천수이볜(陳水扁, 1950- ) 총통이 퇴임 후 부패 혐의로 구속된 사례가 있고 국민당 마잉주(馬英九, 1950- ) 총통 또한 법적 시비에 말려들었지만, 한국만큼 큰 혼란상은 벌어지지 않았다.
오늘날의 대만도 선거를 치를 때마다 전 국민이 두, 세 파로 갈라져서 격렬하게 대립하고 갈등한다. 2350만 명의 작은 인구를 가진 대만이지만 정치적 양극화는 어느 나라에 못잖다. 대만 국민의 정치적 분열과 갈등은 갈수록 커져만 가는 중국의 영향력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특히 최근 10여 년간 대만 정치에 대한 중국의 간섭이 갈수록 심해지면서 대만 정치는 더욱 심각한 분열상을 보여 왔다.
첨예한 정치적 대립이 상존(常存)하는 만큼, 대만의 인터넷엔 가짜뉴스, 허위 정보, 음모론이 어지럽게 떠다닌다. 2024년 1월 선거 직후에도 대만의 SNS는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는 여러 주장이 난무했었다. 사람들이 가짜 표를 넣거나 선거 관리원이 결과를 조작했다는 등의 근거 없는 주장들이었는데, 대만의 중앙선거위원회가 즉각 나서서 기민하게 가짜뉴스와 허위 정보를 불식했으며, 다수 구독자를 가진 유튜버들도 대대적인 사실 확인을 통해서 거짓말과 음모를 물리칠 수 있었다. 시간이 갈수록 더 큰 불신과 의혹에 휩싸이는 한국의 중앙선관위와는 대조적이다.
위기의 대한민국, 대만식 선거관리를 받아들여야
일제의 식민 지배와 군부독재를 겪고 나서 개발독재의 방식으로 급속한 산업화를 이루고 1980년대 후반 민주화를 이뤄서 3번 이상 평화적 정권 교체를 경험한 실로 엇비슷한 대만과 한국이지만, 선거관리의 투명성과 공정성에선 대만이 압도적 우위를 보인다.
한국의 중앙선관위가 지난 10년간 실시한 291건의 채용에서 1200여 건의 부정을 자행했다는 감사원의 조사 결과가 한국 선거관리의 부패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2023년 10월 국정원과 한국인터넷진흥원과 중앙선관위가 공동으로 조사해서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대한민국 중앙선관위의 사이버 관리 점수는 100점 만점에 31.5점으로 F-보다 낮았다. 언론에 공표된 2023년 10월 10일 국정원과 한국인터넷진흥원의 발표를 보면 선관위 전산망에선 대략 다음과 같은 문제점이 드러났다.
1. 해킹으로 선관위의 내부 선거 시스템까지 침입 가능
2. 선관위 통합선거인명부 탈취 및 내용 변경 가능
3. 사전 투표 여부 조작 가능
4. 유령 유권자 등록 가능
5. 사전 투표용지 무단 인쇄 가능
6. 정당 대표·최고위원 선출의 ‘온라인 투표시스템’ 보안상 허점 발견
7. 투표권자 인증 절차 미흡
8. 다수 유권자 대리 투표 및 투표 결과 조작 가능
9. 사전투표소 내부 통신장비 침투 가능 (비인가 장비 연결 방식의 선거망 침투 가능)
10. 부재자 투표 ‘선상투표’의 경우, 특정 유권자의 기표 결과 유출 가능 (비밀투표 원칙 파괴)
11. 개표 결과 변경 가능
12. 개표 데이터베이스(DB) 부실 관리
13. 안전한 내부망에 설치·운영되지 않고 패스워드도 관리 부실
14. 특정 후보의 득표수 변경 가능
15. 투표지분류기 해킹 가능: A 후보 표를 B 후보 표로 분류해 결과 조작 가능
16. 북한 해킹조직 “킴수키”의 사이버 공격 정황 확인
중국과 북한의 정치전에 상시 노출돼 있는 대한민국에서 선관위의 전산망이 형편없는 낙제점을 받았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가장 공정하고 투명해야 마땅한 독립적 헌법기관 중앙선관위가 자녀 채용 비리를 예사로 저지르는 데 머물지 않고 사이버 안보를 엉망으로 관리하는 실태는 한국 민주주의가 총체적 위기에 봉착해 있음을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이다.
게다가 신성한 투표지를 소쿠리, 빵 상자에 넣어 나르는 몰상식한 관리 실태, 신권 지폐처럼 빳빳한 투표용지가 무더기로 발견되자 공식적으로 제작한 동영상에서 ‘원상 복원 기능이 있는 특수 재질’을 사용했다는 기상천외한 변명을 둘러댄 후 전문가의 비판이 쏟아지자 슬그머니 그 동영상을 내려버린 행태까지·····. 선관위는 국민적 공신력을 이미 오래전에 상실했다. 결국 대통령이 선관위의 부정선거 획책을 의심하며 비상계엄령까지 선포하는 나라가 되었으니 더 무슨 말을 할 수 있으랴? 음험한 딥스테이트(deep state)의 조작 행위인가? 부패한 헌법기관의 부실 행정인가? 전체주의 적대국의 은밀한 선거 개입인가?
대만이 중국의 계속되는 도발과 집요한 공격에 굳건히 맞서 자유, 민주, 인권, 법치를 지킬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세상 그 누구보다 대만인들이 중국의 음험한 술수와 숨겨진 의도를 냉철하게 꿰뚫어 볼 수 있는 역사적 지식과 정치적 혜안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역사와 중국인의 정신세계를 잘 알고 있는 대만의 정치 지도자들은 중국에 대한 환상이나 존경심을 품기보단, 대기근의 참상과 문화혁명의 광기로 점철된 중국 현대사의 비극을 냉철히 꿰뚫어 보고 중국의 모순과 착오를 비판한다.
한국의 지도자들은 어떠한가? 구한말까지 명나라를 숭배하던 위정척사파의 낡은 세계관에 갇혀서 지금도 중국을 “높은 산봉우리의 나라”라 칭송하면서 “중국몽에 동참”할 기회를 엿보고 있지는 않는가?
바로 그러한 우려와 불안을 떨칠 수 없어 지난 4년 8개월 동안 나는 거의 매주 200자 원고지 30매가 넘는 긴 원고를 써서 인터넷 조선일보에 연재해 왔다. “문화혁명 이야기” 75회, “대륙의 자유인들” 75회, “변방의 중국인” 56회를 잇달아 연재하면서 대한민국에 널리 퍼진 “중국 판타지”를 어느 정도 해체할 수 있으리라 희망했었는데, 연재를 마칠 즈음 다시 한국의 정치 상황이 원점으로 돌아간 듯해 착잡하고 허탈하다. 바라건대 부디 대한민국이 중국식 문화혁명의 광기와 남미식 폭민 정치의 미망에 빠지지 않고서 정치적 발전과 문명적 성숙을 이뤄갈 수 있기를! <끝>
*지난 4년 8개월간 연재를 맡겨주신 조선일보사에 가슴 깊이 감사드립니다. 또한 매주 글을 읽어주시고, 댓글을 달아주시고, 메일로 독후감과 다양한 의견을 전해주신 모든 독자분께 큰절을 올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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