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처신하라" 왕이, 루비오와 첫 통화서 훈계성 성어 사용
美언론 인삿말로 오역 헤프닝도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장관)이 미국 외교 사령탑으로 대중 강경파로 알려진 마코 루비오 신임 미 국무부 장관과의 첫 통화에서 훈계의 의미가 담긴 성어(成語)를 사용했다. 미국 일부 언론들은 이를 의례적 인삿말로 오역해 혼동을 빚기도 했다.
25일 미국 국무부·중국 외교부에 따르면, 미·중 외교 수장인 루비오와 왕이가 전날 통화를 하고 양국 관계와 세계 주요 문제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다. 루비오는 대만과 남중국해에서 중국이 취하는 강압적인 행동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고, 역내 동맹국들에 대한 미국의 확고한 의지를 강조하면서 “미국의 이익과 미 국민을 최우선에 놓는 미·중 관계를 추구할 것”이라고도 했다. 왕이는 이에 대해 “대만은 중국의 영토”라며 미국이 ‘하나의 중국’ 원칙을 준수할 것을 촉구했다. 또 “대국이 대국의 모습을 갖추려면 국제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면서 “잘 처신하고(好自爲之·호자위지), 중·미 국민의 미래와 세계 평화·안정을 위해 건설적 역할을 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왕이가 사용한 ‘호자위지’는 직역하면 “스스로 잘 행하라”는 뜻이지만, 내포된 의미는 다소 거칠다. 중국 고전인 회남자(淮南子)에서 나온 말로,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예의 바르게 행동하고 책임을 지라고 경고할 때 주로 쓴다. 왕이웨이 인민대 국제관계학원 교수는 대만연합보에 “루비오는 중국에 대한 잘못된 입장과 발언을 했던 인물”이라면서 “‘호자위지’는 루비오가 먼저 입장을 바로잡아야 중국이 상대해줄 수 있다는 메시지”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루비오는 미 정가에서 손꼽히는 대(對)중국 강경파다. 지난 15일 인사 청문회에서도 “중국은 거짓말과 도둑질로 강국이 됐다”며 “중국은 미국과 거의 대등하며 가장 위험한 적국”이라고 말했다. 그는 의원 시절 신장 위구르자치구의 소수민족 탄압을 비판해 2020년 중국의 제재 대상이 됐다. 이런 루비오를 향해 70대의 외교 베테랑 왕이가 ‘선배’를 자처하는 듯한 태도로 ‘개인적 견해가 양국 관계를 망치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경고를 날린 것이다.
미국 일부 언론들은 ‘호자위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오역 보도했다. 로이터 통신은 ‘올바르게 행동하라(conduct yourself well)’로 번역하여 훈계조의 뉘앙스를 전달했지만, 미국의 시사 주간지 뉴스위크는 ‘자신을 잘 돌봐라(take good care of yourself)’라는 따뜻한 인삿말로 둔갑시켰다. 중국 외교부는 이후 공개한 영문 버전에서 호자위지를 ‘알맞게 행동하라(act accordingly)’로 번역했고, 중국 관영 영자지 차이나데일리는 ‘올바른 결정을 내려라(make the right decision)’로 번역해 속뜻을 드러냈다.
다만, 싱타오일보·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등 중화권 매체들은 이날 양국 외교 수장의 통화가 강경한 외교적 표현이 오가는 와중에도 기존 미·중 소통의 틀을 벗어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중국 관영 언론들은 루비오가 “미국은 대만 독립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고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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