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판다"... 트럼프에 No라고 말하는 그린란드 사람들
[WEEKLY BIZ] [Cover Story] 트럼프가 매입 의지 보인 그린란드 대해부...광물·에너지 자산만 4조4000억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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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 섬 그린란드. 한반도의 약 10배 면적(217만㎢)에 이르는 이 광활한 얼음 땅엔 경남 창녕군 인구 정도(5만7000명)만 산다. 조용하던 이 섬이 최근 시끄럽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그린란드를 소유하겠다고 나서면서다. ‘만우절 농담’이 아니었다. 트럼프는 지난달 22일 소셜미디어 트루스 소셜에 “미국은 국가 안보와 전 세계의 자유를 위해 그린란드 소유권과 통제권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했고, 지난 20일 취임 첫날에도 “그린란드는 멋진 곳이다. (미국은 그린란드 땅이) 국제 안보를 위해 필요하다. 덴마크도 따라올 것이라 확신한다”고 했다.
만약 미국이 돈을 내고 그린란드를 사겠다고 나서면 이 땅을 살 수는 있는 걸까. 만약 그린란드를 산다면 이 땅엔 얼마짜리 가격표가 붙을까. 이 땅에서 나고 자란 그린란드인들은 ‘미국 그린란드주(州)’가 되는 데 대해 어떤 생각일까. WEEKLY BIZ가 최근 그린란드를 둘러싼 이슈를 국제법 전문가와 그린란드 현지인들의 목소리까지 취재해 10문 10답으로 대해부했다.
◇①미국은 그린란드 땅을 어떻게 소유하려 할까
만약 미국이 그린란드를 차지하려 한다면, 마치 부동산 거래처럼 돈을 내고 사는 방식이 가장 유력할 전망이다. 19세기 이래 미국의 주요 영토 확장의 역사를 봐도 그렇다. 미국은 1803년 현재 12개 이상 주(州)가 포함된 광활한 루이지애나 땅을 1500만달러 내고 프랑스에서 사들였다. 1867년엔 러시아에 720만달러를 주고 알래스카를 샀고, 1917년에는 덴마크에 금화 2500만달러어치를 주고 버진아일랜드를 샀다.
지난 임기 시절부터 그린란드에 관심을 보였던 트럼프는 2019년 8월 18일 자신의 트위터에 “미국은 그린란드 매입(purchasing)에 절대적으로 관심이 있다. 이 아이디어는 (이전) 여러 대통령이 논의한 바 있다”고 썼다. 당시 이와 관련해 기자들이 질문하자 트럼프는 “문득 떠올랐다”며 “기본적으로 큰 부동산 거래”라고 말하기도 했다.
◇②그린란드는 살 수는 있는 땅인가
국가 사이 토지 매매를 전면적으로 금지한다는 국제법상 규정은 없다. 실제로 미국은 19세기 후반부터 50년 넘는 협상 끝에 덴마크 소유였던 버진아일랜드를 사들인 이력도 있다. 당시 미국은 파나마운하와 미국 동부 해안에 가까운 이 섬을 경제적·군사적 요충지로 보고 눈독 들였고,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합병이 우려되던 덴마크를 향해 “만약 섬을 팔지 않으면 독일에 빼앗기기 전에 미국이 빼앗을 것”이라며 매매계약을 이뤄낸다.
◇③버진아일랜드 구매와의 차이점은
결정적 차이가 있다. 당시 버진아일랜드는 덴마크의 ‘식민지’였지만, 그린란드는 주민들에게 자치권을 부여한 ‘자치령’이란 점이다. 그린란드는 비록 덴마크령이지만 엄연히 정부를 꾸려 자치권을 행사하고 있다. 자치정부법에 따라 주민투표를 통해 덴마크에서 독립할 길도 열려 있다.
이처럼 자치권이 있는 지역은 주민들에게 (어느 국가 소속이 될지) ‘결정권’이 보장된다고 전문가들은 해석한다. 자크 하트만 영국 던디대 로스쿨 교수는 “그린란드는 덴마크의 일부이지만 국제법상 그린란드인들은 스스로 자신의 정치적 소속을 결정 가능한 자결권을 갖고 있다”고 했다.
◇④그렇다면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나
미국이 그린란드를 사려면, 자결권이 있는 그린란드인들 스스로 주민투표를 통해 ‘덴마크에서 독립할지’ ‘미국에 속하는데 동의하는지’ 등을 먼저 결정해야 한다. 만약 그린란드가 미국에 편입되는 걸 주민들도 동의한다면 미국 땅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만약 미국이 그린란드에 거액을 지불한다면, 미국 의회 승인도 있어야 한다. 다만 이런 과정에서 신(新)식민주의나 경제적 강압 행위라는 글로벌 비판과 외교 관계 긴장 등과 같은 부작용이 불거질 수 있다.
◇⑤마치 기업처럼 그린란드를 본다면, 얼마짜린가
국내총생산(GDP)을 기업의 매출이라고 치고 계산해보면, 그 규모가 다른 나라에 비해 큰 편은 아니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2021년 기준 그린란드의 GDP는 32억4000만달러(약 4조7000억원)로, 한국 GDP의 0.17% 정도다. 연간 GDP 성장률은 1.3%, 무역수지는 4억6000만달러 적자다. 어업과 해산물 수출이 주요 수입원이다.
‘기업 가치’를 산정할 때 현재 매출뿐 아니라 미래에 대한 가능성을 고려한다. 그린란드에 ‘가격표’를 붙인다면 미래의 잠재력에 엄청난 프리미엄이 붙을 전망이다. 아직 대부분이 개발되지 않은 채 땅 밑에 묻힌 막대한 광물자원과 지정학적 중요성 때문이다. 그린란드 얼음 땅 밑에는 희토류·우라늄·철광석·석유 등 다양한 광물자원이 묻혀 있다. 여기에 기후변화 여파로 얼음이 녹으면서 ‘그림의 떡’이던 어마어마한 광물자원이 채굴 가능한 자원으로 떠오르고 있다. 미 연구기관 아메리칸 액션 포럼(AAF)은 지난 16일 ‘그린란드 가격 책정: 거래의 본질’이라는 보고서에 “그린란드의 광물 및 에너지 자산의 가치는 4조4000억달러에 가깝다”고 분석했다.
여기에 새로이 개척될 ‘북극 항로’도 그린란드의 가치를 추가로 높이는 요인이다. 미 연구기관 애틀랜틱 카운슬은 “(그린란드를 포함한) 북극 지역의 얼음이 녹으면 지구의 해상 운송로가 근본적으로 바뀔 수 있다”고 했다. ‘북극 항로’가 본격 개통될 경우 그린란드가 해상무역의 새로운 글로벌 허브로 떠오를 수 있다는 분석이다.
분석 주체가 무엇을 얼마큼 고려하는지에 따라 그린란드의 ‘가치’는 다르게 산정된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지난 8일 보고서를 통해 그린란드의 경제적 가치로 1조1000억달러(약 1455조원)를 제시했다. 그린란드의 지리적 중요성과 경제적 가치를 감안한 수치다. 뉴욕타임스는 데이비드 바커 전 뉴욕 연방준비제도 소속 이코노미스트의 분석을 인용해 그린란드의 가치가 최대 770억달러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⑥그린란드 사람들 생각은
아무리 땅값이 매겨지고 사려고 하는 사람이 있어도, 주인의 ‘팔 마음’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린란드 사람들의 생각이 그만큼 중요하단 뜻이다. 예페 스트란스비에르(Stranssbjerg) 그린란드대 경제·언론학과 교수는 WEEKLY BIZ 인터뷰에서 트럼프의 그린란드 병합 언급에 대해 “가장 중요한 것은 자결권이란 기본 원칙과 그린란드 주민의 결정권을 무시했다는 점”이라며 “이는 외교적 규범에 도전하고 동맹국들의 기대까지 완전히 뒤집는 행위”라고 했다. 그는 또 “그린란드인이 원하는 건 미국인도, 덴마크인도 아닌 그린란드인이 되는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이 같은 의견은 WEEKLY BIZ 취재에 응한 일반 그린란드인도 엇비슷했다. 새우잡이배 선원 이비크 옌센(Jensen·37)은 “그린란드는 현재 충분한 자치권과 자유를 갖고 있고, 덴마크의 경제적 지원과 복지 시스템도 누리고 있다”며 “나를 포함한 대부분 그린란드인은 현 상태를 선호할 뿐만 아니라 멀지 않은 미래에 독립국가로 거듭난 그린란드를 꿈꾸고 있다”고 말했다. 그린란드의 수도 누크에서 나고 자란 에리크 라스무센(Rasmussen·48)은 “우리는 판매 대상이 아니다. 우리는 미국이 이누이트(알래스카 토착민)와 인디언 등 다른 민족들을 수세기 동안 홀대한 역사를 알고, 이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지난 7일 트럼프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그린란드 통제권 확보를 위해 경제·군사적 강압 수단을 쓰지 않겠다고 약속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확언할 수 없다’고 답한 부분을 문제 삼았다. 그는 “트럼프는 강압적 수단을 써서라도 그린란드를 미국의 지배 아래에 둘 수 있다는 말을 부인하지 않아 그린란드 합병이 마치 미국의 뜻에 달려 있다는 인상을 줬다. 그린란드가 만에 하나 미국에 편입된다 하더라도 이는 우리의 ‘보폭’과 조건에 맞춰 이뤄져야 할 일”이라고 했다.
300년 넘게 덴마크 지배를 받아오며 그린란드인 가슴속에 남은 ‘지배국’에 대한 앙금도 트럼프의 발언에 거부감을 유발하는 요소다. 미칼리 옌센(Jensen·39)은 “그린란드는 너무 오랫동안 식민 지배를 당했고 또다시 누군가의 식민지가 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요즘 그린란드인들끼리는 현재 벌어지는 일들이 너무 터무니없어 이걸 주제로 농담을 주고받을 정도”라고 전했다.
◇⑦미국이 1인당 10만달러씩을 제시하면 그린란드인은 ‘찬성’ 투표를 할까
만약 실제 투표를 치르자고 합의되고 이 투표 과정에서 미국이 그린란드인들에게 대대적인 경제원조를 약속하며, 개개인에게도 거액의 현금성 선물을 안긴다면 어떻게 될까. 이 같은 가정을 바탕으로 ‘만약 미국이 1인당 10만달러를 약속하면 미국 편입에 찬성할 생각이 있느냐’고 그린란드인들에게 묻자, WEEKLY BIZ에 답한 그린란드인들은 대부분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했다. 누크에서 관광 가이드로 일하는 말리크 프레데릭센(Fredriksen·20)은 “그린란드인이라는 정체성을 포기하고, 그린란드의 미래를 우리의 손으로 결정할 권리가 없어진다고 생각하면 수만 달러를 준다고 해도 의미가 없다”고 했다.
◇⑧미국이 그린란드인을 유혹할 방법이 있을까
주민 개개인에게 거액을 떠안기는 것보다 더 중요한 요인이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그린란드인들은 ‘복지 강국’으로 손꼽히는 덴마크의 복지 시스템을 누리고 있다. 이와 비슷한 수준의 복지를 보장하지 않는 한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비용이 만만치 않을 것이란 뜻이다. 그린란드인 키키크 올센(Olsen·36)은 “누가 당장 10만달러를 주겠다고 하면 혹할 수는 있겠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미국은 복지 수준이 우리(높은 복지 수준)와 정반대라 결국 손해 보는 거래가 될 것 같다”고 했다. 그린란드 시시무트에 사는 댄(가명)은 “우리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상황이 생기면 의료 수송기를 타고 덴마크로 가서 무료로 치료받을 수 있고, 매년 5주의 휴가는 물론 출산 휴가도 8주나 보장된다. 이 같은 모든 복지가 사실상 덴마크의 세금으로 운영되는데 미국이 이만큼 해주진 못할 것 아닌가”라고 했다. 또 다른 그린란드인 아론(가명)은 “만약 그린란드에 미국식 교육과 의료 복지 등이 적용되면 (개인이 쓰는) 비용이 어마어마하게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덴마크는 그린란드를 위해 매년 약 10억달러를 지출하고 있다. 그린란드 인구 5만7000명을 기준으로 환산하면 주민 한 명당 매년 1만7500달러(약 2550만원)를 지원받는 꼴이다. 미국이 그린란드인 개개인에게 10만달러를 안겨준다고 해도 덴마크에서 받는 복지 혜택 6년 치 정도에 불과한 셈이다. 이처럼 그린란드인들이 누리는 덴마크의 복지까지 감안하면 그린란드의 평가 가치, 즉 매입 비용은 훨씬 커질 것이란 예상이다.
◇⑨그린란드의 공식 입장은
그린란드 자치정부의 공식 입장도 그린란드인 생각과 일치한다. 그린란드 총리실 측은 “그린란드는 판매 대상이 아니다”라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앞서 그린란드 자치정부와 덴마크 정부는 트럼프의 그린란드 매입 제안을 정면 반박하고 나섰다. 지난 13일 무테 에게데 그린란드 총리는 기자회견을 열고 “그린란드의 독립은 그린란드의 일이며 그린란드의 영토 사용과 관해서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덴마크 본토와 페로 제도, 그린란드 등 세 곳으로 이뤄진 덴마크 왕국은 그린란드가 사라지면 면적 기준으론 영토의 98%가 사라진다. 이에 덴마크는 ‘원칙’을 강조하고 나섰다. 지난 15일 메테 프레데릭센 덴마크 총리는 트럼프와의 전화 통화에서 “(그린란드의) 독립 여부에 관한 결정은 그린란드 스스로 해야 한다”고 했다.
◇⑩트럼프 주니어의 그린란드 방문 영향은
지난 7일 트럼프 대통령의 아들 트럼프 주니어는 그린란드 수도 누크를 방문해 호텔에서 15명 안팎 현지인과 오찬 행사를 열었다. 현지에선 그린란드인 생각과 다른 미국의 ‘여론 작전’에 대해 거부감이 커졌다고 한다. 이 자리에서 참석자들은 ‘매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고 적힌 빨간 모자를 쓴 채 트럼프 대통령과 스피커폰으로 전화 통화까지 했다. 하지만 영국 가디언은 호텔 관계자를 인용, 참석자 중 여럿은 트럼프 주니어가 공짜 점심을 미끼로 모집한 노숙인이라고 보도했다. 트럼프 주니어는 이를 곧바로 반박했지만 현지의 냉랭한 분위기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린란드 일간지 세르미티크는 지난 14일 열한 살짜리 아이가 미국의 그린란드 합병을 지지하는 미국인들에게 100달러를 받은 사건을 보도하기도 했다. 댄은 WEEKLY BIZ 인터뷰에서 “최근 시시무트에도 매가 모자를 나눠주는 트럼프 지지자들이 있었는데, 오히려 이런 소란 때문에 트럼프에 대한 부정 여론이 더 커지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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