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경제

민사 1심에 평균 437일… '지연된 정의'가 국민들 분노 불렀다

太兄 2025. 1. 25. 21:05

민사 1심에 평균 437일… '지연된 정의'가 국민들 분노 불렀다

[법은 왜 짓밟혔나] [3] 재판 지연 3가지 이유

입력 2025.01.25. 01:13업데이트 2025.01.25. 08:10
2018년 12월 7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전국법원장회의에서 참석자들이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재형 대법관, 조희대 대법관, 김명수 대법원장, 이기택 대법관. /연합뉴스

조희대 대법원장은 2023년 12월 취임사에서 “모든 국민은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지는데도 법원이 이를 지키지 못하여 국민의 고통을 가중시키고 있다”고 했다. 조 대법원장 취임 후 1년이 지났지만 ‘재판 지연’ 문제는 좀처럼 개선되지 않은 것으로 24일 나타났다. 소송을 내도 재판부가 6개월 이상 기일을 잡지 않거나, 1년 반을 기다린 재판이 10분 만에 끝나는 일도 있다. 법조계에서는 “전임인 김명수 대법원장 시절부터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는 법언이 지켜지지 않으면서 국민이 분노하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작년 기준 민사 1심 합의부 사건 평균 처리 기간은 437.3일이었다. 코로나 이전인 2019년(298.3일)보다 46.6% 늘어난 것이다. 2020년(309.6일), 2021년(364.1일) 2022년(420.1일)에 이어 2023년에는 473.4일을 기록했다. 작년 형사 1심 합의부 사건 처리 기간도 198.9일로 2019년(158.7일)보다 25.3% 늘었다.

그래픽=송윤혜

조 대법원장 취임 후 통계상으로 조금 개선된 것으로 보이지만, 소송 당사자와 변호사는 체감하기 어렵다고 한다. 한 변호사는 “작년 7월에 손해배상 사건을 맡아 법원에 소송을 냈는데 반년이 지났는데도 기일 한번 안 잡혔다”며 “피고 측은 답변서 하나 내지 않는데 재판부가 아무런 소송 지휘도 하지 않고 방치한다”고 했다. 수도권의 한 법원에선 형사사건 항소심을 접수한 지 1년 6개월이 지나 첫 재판이 열렸는데, 10분 만에 끝났다고 한다.

그래픽=송윤혜

법정 다툼을 벌이는 쌍방 당사자들이 판결에 불복하는 항소율은 4년 연속 증가 추세다. 민사 1심 합의부 사건의 항소율은 2020년 32.5%에서 2021년 41.7%, 2022년 45.3%, 2023년 48.5%로 높아졌다. 같은 기간 형사 1심 합의부 항소율도 60%대 중반을 맴돌고 있다. 재판이 늦어지면서 재판에 대한 불복 비율도 높아진다는 해석이 나온다.

①‘포퓰리즘’에 무너진 사법 행정

전현직 법관들은 재판을 잘하면 상을 주고 부족하면 질책하는 방향으로 ‘사법 행정권’이 행사되지 않으면서, 재판 지연이 심각해졌다고 지적한다.

김 전 대법원장은 ‘사법의 민주화’를 명분으로 고법부장 승진제를 없애고, 후배 판사들의 투표로 법원장이 되는 ‘법원장 후보 추천제’ 등을 도입했다. 그러나 이 때문에 일선 판사들이 열심히 일할 동기가 사라졌다는 비판이 꾸준히 나왔다. 국제인권법연구회 출신 등 특정 성향 판사들이 법원행정처 주요 보직을 차지하기도 했다. 법원 내 엘리트로 꼽혔던 고법부장·고법판사들은 이 기간 매년 십 수명씩 법원을 떠났다.

조 대법원장은 취임 직후 법원장 추천제를 시행하지 않았고, 작년 11월에는 사실상 폐지하겠다고 했다. 판사 출신 변호사는 “이미 망가진 사법 시스템을 회복하려면 더 많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②법관 선발 변화와 ‘워라밸 문화’

법관 선발 방식이 바뀌면서 일에 몰두하던 법원 문화가 사라진 것도 재판 지연 원인 중 하나다. 과거 사법시험 시절에는 사법연수원 성적이 특출난 20대 후반 인재들이 법원에 몰렸다. 이들은 선배 판사에게 새벽까지 도제식으로 교육받으며 재판을 진행하고 판결문 쓰는 법을 배웠다.

그러나 로스쿨 도입 후 법관 선발 시 ‘5년 이상’ 등 경력을 요구하게 되면서 이런 교육은 어려워졌다고 판사들은 말한다. 한 부장판사는 “요즘 신임 법관들은 로펌에서 일하다 온 30대 중반인데, 가정도 있고 자신만의 업무 습관을 이미 갖고 있어서 일을 새로 가르치기 어렵다”며 “과거와 달리 판사직을 일반 공무원처럼 생각해 ‘워라밸’을 찾아 법원에 오는 것 같다”고 했다.

③법원별 업무량 다른데 분석도 못 해

재판 데이터와 업무 부담 평가 등에 기반한 명확한 원인 분석이 없어 지연 문제가 수년간 악화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달 김두얼 명지대 교수 등이 발표한 ‘법원 업무의 현황과 과제’에 따르면, 2023년 기준 법원별 판사 1인당 사건 수는 서울남부지법이 654건으로 가장 많았고, 춘천지법이 330건으로 그 절반에 그쳤다. 사건마다 특성이 다른 점을 고려해도 법원별 업무 부담의 편차가 너무 크다. 사실상 법관 인력 배치에 실패해 특정 법원에 일이 몰려 재판이 더 지연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 교수는 “법원별 또는 판사당 업무 부담과 재판 지연 상황이 모두 다를 텐데, 법원이 매년 공개하는 일률적인 ‘사법 연감’ 통계로는 이를 파악하기 어렵다”며 “세부적인 데이터를 바탕으로 원인을 분석하는 일종의 ‘재판 처리·지연 백서’를 정기적으로 펴내고, 이를 바탕으로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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