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대통령, 진솔한 사과 없이 사태 피하는 건 동업자인 당 버리는 것"
[비상계엄·탄핵소추… 원로 인터뷰]
[6] 이회창 前 한나라당 총재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는 본지 인터뷰에서 “결국 윤석열 대통령 자신과 가족, 배우자에 대한 문제가 비상계엄 선포를 직접적으로 좌우한 게 아닌가 싶다”며 “국가를 대표하는 정상이 사적 동기가 포함된 일로 비상계엄을 한 건 잘못”이라고 했다. 이 전 총재는 “사람들은 저를 ‘제왕적 총재’로 불렀다”며 “그래도 저는 쓴소리를 다 들었다”고 했다.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언하고, 탄핵소추를 당했습니다.
“윤 대통령이 말했듯, 야당의 입법 독주에서 촉발된 면이 없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거기에 대응하는 방법으로 비상계엄을 선포한 건 상식에 반하는 겁니다. 어렵더라도 정상적·합법적 절차로 대응해 가야 했는데, 정상적인 궤를 벗어났습니다. 헌법과 법률에도 맞지 않습니다.”
-계엄 사태 이후 대통령은 어떤 선택을 해야 했을까요.
“여당은 정권의 동업자죠. 대통령은 자기 임기를 마치면 끝나지만, 다음 정권의 재창출은 정당의 몫입니다. 대통령으로서는 당과 나라를 위해 국민 앞에 엎드려서 잘못된 걸 사과했어야 했어요. 진솔하게 사과하고, 대통령이 궐위되면 60일 이내에 대선을 하게 돼 있으니 조기 대선을 위한 시간적 여유를 가져야 한다는 그런 절차를 국민 앞에서 얘기했어야 했죠. 윤 대통령은 그냥 들어앉아 버렸습니다. 자신의 사적 편익을 위해 동업자인 당을 버린 겁니다.”
-국민의힘이 정권을 다시 가져올 수 있을까요.
“정권 재창출을 위한 승리에는 두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첫째, 정당은 분열되면 안 됩니다. 과거 새누리당에서 바른정당이 분당해 나간 예가 있고, 그 이후 분열의 피해도 직접 당해보지 않았습니까. 둘째는 정치 상대방과의 차별화입니다.”
-그런데 왜 내분이 계속되는 걸까요?
“지금 상황에 대한 심리적 정리가 안 된 겁니다. 정치는 항상 국면 변화가 있습니다. 탄핵이 옳으냐 그르냐를 여당이 지금 따질 때가 아닙니다. 이제 다음 정권은 누가 잡느냐에 대한 국면에 들어갔습니다. 당이 스스로가 살고 국가가 안정화를 이루기 위해선 새로운 국면에 대응해 나가야 합니다. 탄핵·반(反)탄핵파가 서로 싸워선 안 됩니다. 예컨대 ‘TK(대구·경북)에서는 적어도 국회의원은 된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살살 피해서 국회의원 직을 유지한다 한들 살아도 산 게 아니고 정치인으로서는 죽은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차별화란 무엇을 말하는 겁니까?
“여당은 이재명 대표 사법 처리에 은근히 기대하고 있겠지만,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우연에 기대지 말고 정도(正道)로 이기는 방법을 강구해야 합니다. 여당이 반드시 비관적이라고는 안 봅니다. 민주당은 이재명 대표 일극 체제인데, 이것은 독재죠. 깃발을 세워놓고 모두 한곳으로 달려갑니다. 국민의힘은 흐트러진 것으로 보이지만 다양성·이질성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국민이 이재명 대표의 일극주의에 싫증을 느낄 때 여당에서 여러 후보와 인물이 나와 경쟁하고 다양한 드라마를 만들면 오히려 그것은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국민의힘이 ‘정권 심판론’을 벗어날 수 있을까요..
“현실적으로 조기 대선이 치러지면 정권 심판론이 강하게 일 겁니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잘못된 건 인정하고, 그걸 전제로 나가야 합니다. 이쯤에서 당부하고 싶은 건, 야당은 각종 약속을 남발할 거라는 겁니다. 적어도 여당은 보수로서의 정도를 걷는다는 걸 반드시 보여줘야 합니다. 보수는 버릴 수가 없는 가치입니다. 개인의 존엄·자유·권리를 기반으로 하면서 공동체가 선과 정의·공정이라는 가치를 추구하는 게 보수입니다. 국민과 국가를 위해 헌신하는 정당이라는 인식을 줘야 합니다. 네거티브나 포퓰리즘 같은 것에 빠져서 탐닉하면 안 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은근히 정의·선에 대한 집착이 강합니다. 문재인 정부 시절 조국 사태를 되돌아 보세요.”
-민주당은 한덕수 권한대행도 탄핵하겠다고 합니다.
“그건 국가에 대한 반역이나 다름없습니다. 지금 대통령이 나락으로 떨어지고, 국가의 정상이 무력화돼 버린 거 아닙니까. 공간을 메우면서 수습해 나가야 할 사람이 권한대행입니다. 한 대행에 대해서도 아쉬운 측면은 있습니다.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할 때 국무회의 자리에서 드러누워서라도 막았어야 했습니다. 이를 막지 못해 아쉽지만 직무대행으로서 한 대행만 한 사람이 없습니다.”
-이재명 대표가 어떻게 행동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대통령이 되려고 한다면 정말 이제는 국가를 위해서 큰마음으로 야당으로서의 역할을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화가 나는 점이 있을 거예요. 여러 사법 사건이 걸려 있는데, 윤 대통령이 여야 영수회담도 안 하고 무시해 버리고 했죠. 저는 야당 총재 시절 김대중 대통령과 7차례 영수회담을 했고, 마지막을 제외하고는 할 때마다 공통 합의점을 끌어내 정국을 전환시켰습니다. 국가를 위해서 생각해야 합니다.”
-윤 대통령이 헌재 재판 등에 비협조적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그건 온당치 않다고 봅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때를 떠올리게 됩니다. 당시 지금은 별세한 홍사덕 전 국회 부의장이 제게 전화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박 대통령이 지금 외국에 나가서 다른 정상을 만날 수도 없게 됐다. 대통령으로서의 직위를 이미 상실했다고 본다. 그러니 대통령 본인이 모든 책임을 제가 지겠다, 국민께 용서해달라고 엎드리는 길밖에 없다고 본다’고 말해줬습니다. 대통령이 저렇게 자꾸 피하는 모습을 보이는 건 여권은 물론 대통령 자신에게도 별로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이번을 계기로 개헌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정치·사회 상황이 많이 바뀌었기 때문이 저도 근본적으로는 현재 헌법, 소위 1987년 체제를 근본적으로 검토할 시기가 됐다고 봅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언제 개헌을 할지, 어떤 내용으로 할지는 신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전부 아니면 전무(all or nothing)’의 대통령제가 이번 사태의 원인이며 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로 가면 해결될 수 있다고 얘기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국회가 제왕적 국회가 돼 탄핵을 밀어붙이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나라에서는 독일의 내각제가 성공적이라는 얘기를 많이 하는데, 지금 독일은 유럽의 환자입니다. 민주화 이후 대통령들은 대통령제가 어떤 것이고, 대통령의 권력이 어떻게 운영돼야 한다는 확고한 개념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1993년 취임식 직후 김영삼 전 대통령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저는 대통령 취임식 단상의 자리가 대통령 내외 중심으로 화사하게 꾸며져 있어 권위주의 시대와 크게 다르지 않았음으로 이것은 민주화 시대와는 안 맞는 것 같다고 얘기했었습니다. 맞장구를 쳐줄 줄 알았는데 ‘뭐 그런 걸 얘기하느냐’는 식의 표정이었습니다.”
-제도보다 사람이 더 큰 문제라는 건가요.
“우리나라 대통령들의 심리 상태는 대체로 세 단계를 거치는 것 같습니다. 첫째로 선민의식에 빠집니다. 자신이 용(龍)이 됐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둘째는 성채(城砦)의식입니다. 대통령이 되고 나니 권력에게 모여 있고, 나라를 자신이 다 장악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피(被)포위의식에 빠집니다. 임기 중반을 지나면 모두가, 심지어 여당에서도 불쑥불쑥 치받고 자신에게 대든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저도 ‘제왕적 총재’라는 말을 들은 일이 있지만 부정적 의미여서 거부감이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어떤 사안을 결정하든 의원총회를 열어 의견을 들었습니다. 쓴소리도 다 들었습니다. 대통령도 이런 소통이 없다면 ‘제왕적’이라는 말을 듣는 겁니다.”
-정치를 하면서 후회되거나 돌이키고 싶었던 순간은 없었습니까.
“정치를 했던 사람으로서 정치에 혐오가 판치고 후진성을 벗어나지 못했다는데 자책과 자괴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회창
1935년 황해도 서흥군 태생으로 경기고,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1957년 제8회 고등고시에 합격하고 1981년 46세에 대법관에 임용됐다. 군사정권에서도 소신 있는 판결을 해 ‘대쪽 판사’로 불렸다.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을 거쳐 1993년 감사원장에 임명됐다. 그해 12월 국무총리에 발탁됐지만 김영삼 대통령과 갈등을 겪어 127일 만에 물러났다. 1996년 신한국당에 입당해 전국구 국회의원으로 정치에 입문했고, 3김(김영삼·김대중·김종필) 정치 청산을 주장했다. 15대(1997년)·16대(2002년) 대선에 출마했지만,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에게 고배를 마셨다. 신한국당·한나라당 총재로 재직할 당시 강력한 리더십을 행사해 ‘제왕적 총재’로도 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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