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우자'를 외치는 美 대선...가장 살벌해진 세 가지 이유 [송의달 LIVE]
막판까지 초(超)접전 양상을 보이는 2024년 미국 대선은 가장 분열되고 살벌한 선거로 꼽힌다. 그도 그럴 것이 민주당과 공화당 대선 후보인 카말라 해리스와 도널드 트럼프는 역대급으로 공통점이 없다.
해리스는 인도계 어머니와 자메이카계 아버지를 둔 흑인 여성으로 서부 캘리포니아에서 검사로 활동했다. 트럼프는 유색 인종 없이 백인만 모여있던 동부 뉴욕의 동네에서 태어나 성장한 백인 남성으로 부동산 개발 사업으로 돈을 벌었다.
◇‘내전(內戰) 직전’ 같은 미국 정치사회
모든 게 판이한 두 후보는 현재와 미래 미국의 모습과 미국인들의 가치관·존재 방식을 놓고 대립하는 ‘문화전쟁(Culture War)’에서 좌·우파 진영의 총사령관이다. ‘너 죽고 나 살기 식(式)’으로 치닫는 양측의 대결은 미국 남북전쟁 직전인 1860년대 초와 흑인 인권 문제로 갈등이 극심했던 1960년대를 닮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나 배쉬(Dana Bash) CNN 앵커는 지난달 낸 저서 <America’s Deadliest Election>에서 “‘싸우자(fight!)’를 외치면서 한쪽의 승리는 반대 쪽의 패멸(敗滅)로 인식하는 미국 역사상 가장 잔인한 선거가 벌어지고 있다”고 했다.
◇①역사관·정통성·교육관에서 정면 충돌
양측은 건국(建國) 주인공을 둘러싼 역사관에서부터 충돌하고 있다. 미국에 온 아프리카 흑인 노예(좌파)와 유럽에서 자유를 찾아 건너온 백인 개신교도(우파)로 주인공은 상반된다. 흑인 노예가 미국 땅에 도착한 지 400주년 되는 2019년 8월 14일 뉴욕타임스(NYT) 매거진이 시작한 탐사기획 ‘1619 프로젝트’가 갈등의 불을 붙였다.
이들은 “아프리카 노예 20여명이 처음 버지니아주 포인트 컴포트 해안을 밟은 1619년 8월을 미국 건국 연도로 삼아야 한다. 미국은 흑인 노예들과 흑인들의 희생과 기여로 성장했다”고 주장한다. 이를 바탕으로 미국 역사 전체를 새로 쓰고 사회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본다.
우파는 “유럽에서 이주한 백인들이 건국 주인공이며, 이들이 독립선언서를 공포(公布)한 1776년 7월 4일이 건국일”이라고 맞선다. 이를 위해 2020년 9월 ‘1776 위원회(Commission)’를 세운 트럼프 당시 대통령은 이듬해 1월 18일 ‘1776 보고서(The 1776 Report)’를 발간해 ‘1619 건국관’을 비판했다. 그러나 이틀 후 대통령이 된 바이든은 취임 당일 행정명령으로 ‘1776 위원회’를 폐지했다.
“노예제는 미국에만 존재했던 악(惡)이 아니며, 노예제를 두고 자유를 외쳤다고 해서 건국의 아버지들을 위선자로 볼 수 없다”는 견해와 “240년 넘게 인종주의가 구조화된 미국에서 흑인 우대 같은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이는 ‘진짜 미국인(real American)이 누구인가?’라는 미국의 정통성과 정체성(正體性) 문제로 이어져 정치·사회의 뇌관(雷管)이 되고 있다. “‘이민자들이 세운 나라’인 미국이 ‘백인 중심의 과거’로 돌아가지 않아야 한다”는 쪽(좌파)과 “미국이 다시 위대해지려면 백인이 주인이 돼 그들의 가치관이 존중받아야 한다”는 쪽(우파)의 대결(對決)인 것이다.
◇미국의 ‘진짜 주인’은 흑인 또는 백인?
2024년 7월과 8월 밀워키와 시카고에서 한 달 간격으로 열린 전당대회장은 극명한 차이를 보여줬다. 공화당이 소수 인종 참가자를 찾기 힘든 백인 우월주의자 집회 같은 모습이었다면, 민주당은 이민자 출신과 소수 인종으로 가득한 인종(人種) 전시장 같았다.
양측은 연장선상에서 ‘비판적 인종 이론(Critical Race Theory‧약칭 CRT)’ 수용 여부를 놓고 격돌하고 있다. CRT는 “미국의 모든 법 체계와 역사성이 백인 우월주의를 토대로 만들어졌고 지금도 백인 우월주의가 지배적”이라는 관점에 서 있다. 2020년 5월 미네소타주에서 흑인 조지 플로이드(George Floyd)가 백인 경찰에 의해 질식사한 것을 증거로 꼽는다.
◇“미국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
“CRT는 미국을 파괴할 유독성의 프로파간다(propaganda·선전)”라고 확신하는 트럼프와 공화당은 공립학교에서 CRT 교육을 금지하는 법안들을 통과시켰다. 바이든·해리스는 “미국의 건국 역사, 법 체계가 인종 차별을 깔고 있으며 지금도 체계적인 인종 차별이 존재한다”며 CRT 교육을 옹호한다. 트럼프의 조치들도 모두 폐지했다.
하지만 트럼프와 공화당은 “백인우월주의 이념 위에 건국된 미국이 태생부터 잘못된 국가이며 모든 백인 아동과 가족은 그 공모자(共謀者)라고 가르친다”며 CRT 교육 금지를 2024 대선 공약으로 내놓았다. 민주당은 “흑인에 대한 편견·차별에 눈뜨고 깨어 있어야 한다”는 워키즘(wokism)과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PC)주의에 입각해 강행할 방침이다. PC주의는 성(性)·인종·성적 취향·종교·직업 같은 차별에 근거한 언어 사용이나 활동을 바로잡으려는 사고(思考) 체계로 진보 진영이 애용(愛用)한다. 두 진영의 역사관과 교육관에는 타협의 여지가 보이지 않는다.
◇②동성애·성전환 등 양보 없는 ‘가치관 전쟁’
양측은 젠더(gender·성) 문제에서도 전쟁 같은 대립을 불사한다. 빌 클린턴 대통령 시절 시작된 미국 좌파 진영의 ‘젠더 정치화’는 버락 오바마(Obama) 대통령 들어 본격화됐다. 그는 8년 재임기간(2009~17년) 내내 동성(同性) 결혼 합법화를 밀어붙여 2015년 6월 연방대법원의 합헌 판결을 받아냈다. 또 매년 6월을 ‘성소수자 긍지의 달(LGBTQ Pride Month)’로 기념하며 동성애와 성전환 등을 사실상 권장했다.
LGBTQ는 여성 동성애자(Lesbian), 남성 동성애자(Gay), 양성애자(Bi-sexual), 성전환자(Trans-gender), 성정체성이 불명확한 사람(Queer)의 약자로 성소수자를 통칭한다. 오바마는 연방정부가 성적(性的) 지향성이나 정체성을 이유로 고용 차별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고 2015년 4월 미국 역사상 처음 백악관 건물 안에 ‘성 중립 화장실’을 설치했다.
캘리포니아주는 2017년 모든 공공 건물에 성 중립 화장실(gender neutral restroom) 설치를 의무화했다. 바이든은 대통령 취임 직후 “학교에서 학생이 생물학적 성별과 다른 성 정체성을 선언할 경우, 교사가 이를 인정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법적 조치를 받을 수 있다”는 행정명령 ‘타이틀 나인(Title Ⅸ)’을 발동했다. 그런 점에서 바이든 정부는 ‘오바마 3기’이다.
“남성·여성 외에 제3, 제4, 제5의 성이 존재한다”는 규정을 정강정책에 못박고 있는 민주당 정부는 2021년부터 ‘트랜스젠더 가시화의 날(Transgender Day of Visibility·3월 31일)을 연방 기념일로 축하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트랜스젠더의 특별한 용기와 공헌에 존경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내 성소수자(LGBTQ) 10년 만에 두 배 늘어
좌파 진영의 관대함과 장려로 미국내 성소수자 수는 매년 급증하고 있다. 2023년 기준 “스스로 LGBTQ”라고 대답한 미국인은 미국 총인구의 7.6%에 달했다. 갤럽(Gallup)은 “2012년 첫 조사에서 3.5%였던 비율이 11년 만에 배 넘게 늘었다. 1997~2003년에 태어난 Z세대에서는 성소수자 비율이 20%를 넘었다”고 밝혔다.
청소년 성소수자가 눈에 띠게 늘자 시민들과 각 주(州) 의회가 행동에 나섰다. 2019~2022년 3년 동안 미국 총인구의 42%에 해당하는 25개 주가 ‘공립학교 저학년 학생들에게 동성애 등 성 정체성 관련 교육 금지’를 골자로 한 64개의 교육 법안을 제정했다. 학부모와 우파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동성애, 트랜스젠더에 반대하는 집회와 성소수자를 옹호·지지하는 도서를 금서(禁書)로 지정하는 캠페인이 잇따르고 있다.
캘리포니아주 같은 진보 성향 주들은 금서 지정을 막는 ‘금서 금지법’으로 반격하고 있다. 이들은 ‘신(神)’의 창조성과 “인간 사회에 남자와 여자라는 두 개의 성 정체성만 존재한다”는 보수·기독교계의 신념을 전면 부정(否定)한다. 이들의 공세로 보수 진영에는 미국 사회를 지탱해온 가족과 교회, 공동체가 해체되고 기독교적 정신이 소멸될 것이라는 위기감이 팽배해 있다.
◇가족·교회 해체와 기독교 소멸 위기감
미국 총인구 대비 교회 등록 신자(信者) 비율은 2000년 70%에서 2010년 61%, 2020년 47%로 매년 사상 최저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탈(脫)기독교화에 따른 미국의 종말을 우려하는 기독교 우파는 ‘미국을 다시 기도하는 나라(Make America Pray Again)’로 만들기 위해 트럼프의 정치적 동지(同志)가 됐다.
트럼프는 대통령 재임시절 ‘성소수자 긍지의 달’ 행사를 거부하고 백악관 홈페이지에서 ‘동성애자 권리’ 관련 내용을 삭제했다. 에이미 코니 배럿(Barrett)을 포함한 3명의 보수 성향 법조인을 연방대법원 판사로 임명한 그는 2024년 대선일(11월 5일)을 ‘기독교인의 날(Christian Day)’로 선포하며 화답하고 있다.
복음주의 기독교 단체들은 수 천만달러를 올해 대선 승부처인 경합주들(swing states)에 투입하며 트럼프의 대선 승리를 돕고 있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 등은 “보수 기독교인들은 정부(민주당)가 추구하는 성 다양성(diversity)을 훼손하는 적(敵)”이라는 입장이 확고하다. 삶을 영위하고 존재하는 방식을 둘러싼 가치관 전쟁에서 두 진영간에는 접점이 없다.
◇③현재·미래 뒤흔드는 ‘불법 입국자’ 혈투
“민주당이 아주 빠른 속도로(as fast as humanly possible) 추진하는 불법 입국자 합법화 정책으로, 이들이 20명 중 한 명 꼴로 매년 시민권을 얻게 되면 4년 뒤에는 200만 명의 새로운 합법적인 유권자가 생긴다. 이렇게 되면 2만표 이내 표차로 결과가 나오는 경합주가 사라져 민주당이 모든 것을 차지하게 된다.”
일론 머스크(Elon Musk)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2024년 9월 29일 소셜미디어 ‘X’ 계정에서 “올해 대선에서 트럼프 후보가 당선되지 않으면 민주주의 방식의 대통령 선거는 미국에서 더 이상 없을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그의 지적은 불법 입국자들이 미국의 미래를 바꾸는 시한 폭탄 같은 존재임을 시사한다. 이는 민주당 정부가 ‘소수자 인권 중시’와 열린 국경’을 명분으로 불법 입국자들을 호의적으로 다뤄온데 대한 반작용(反作用)이기도 하다.
◇바이든의 ‘열린 국경’...1초당 8명 이상 입국
오바마 정부는 2012년 불법 입국자 자녀 추방을 금지하면서 미국 체류 10년이 지난 이들에게 시민권을 주는 불법체류 청년 추방 유예(DACA) 제도를 도입했다. 바이든 정부는 임시체류 허가와 근로 허가증을 발급해 불법 입국자들의 미국 거주와 돈벌이를 허용했다.
트럼프는 정반대였다. 대통령 재임 중 멕시코와의 국경 지대에 3000㎞ 장벽 설치를 추진했고 불법 체류자에 대한 그린 카드 발급 등을 중단했다. 2017년 1월 말 이슬람권 7개국 국민을 상대로 90일 입국 금지령을 내렸다. 그는 “재집권하면 임기 첫날에 미국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불법 입국자 송환 작전을 당장 시작하겠다”고 말한다.
이런 움직임은 최근 불법 입국자들이 넘쳐나면서 지지를 받고 있다. 실제로 2019년 10월부터 2024년 6월까지 44개월 동안 미국에 들어온 불법 입국자는 1100만명으로 미국 50개주 중 10번째로 큰 미시간주 인구 보다 많다. 2023년 12월엔 하루 평균 1만 2000명, 1초당 8명 넘는 불법 입국자가 들어와 월간 기준 사상 최다(最多) 기록(37만명)을 세웠다.
아무리 미국은 이민자들이 세운 나라이다. 그러나 사회 부적응자이거나 무능력자, 범죄자 출신이 많은 불법 입국자들로 인해 살인·강도 같은 범죄가 늘고 있다. 연방·주 정부와 시·군 자치단체는 미국 시민에 쓸 돈과 행정력을 이들 쪽으로 돌리고 있다.
◇불법 입국자들 투표시, 경합주 선거 무의미
불법 입국자 증가는 첨예한 정치 이슈로 비화(飛火)했다. 미국 50개 주 중 투표장에서 얼굴사진이 부착된 신분증을 반드시 요구하는 곳은 21개주이며, 15개 주에서는 성명·주소가 적힌 서류만 있으면 된다. 2020년 대선 당시 경합주인 애리조나주(선거인단 11명)와 조지아주(선거인단 16명)에서 바이든과 트럼프의 최종 득표 격차는 1만 457표(0.4%포인트), 1만 1779표(0.3%포인트)였다.
이런 마당에 수 천명의 불법 입국자가 어느 한쪽으로 투표하면 승패는 쉽게 바뀐다. 올해 3월엔 바이든 정부가 32만명의 불법 입국자들을 비행기로 몰래 입국시켰다는 보도가 나왔다. 공화당측은 “민주당이 이들에게 투표권을 줘 대선 승부를 조작하려 한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주변부로 밀려나는 백인들의 불안과 공포
유색 인종의 증가로 미국 총유권자 중 백인 비율은 4년마다 2%포인트씩 줄고 있다. 이 추세라면 2020년 대선 당시 67%였던 미국 유권자 중 백인 비율은 2048년 또는 2052년부터 절반 밑으로 내려간다. 불법 입국자들이 대거 유입될수록, 미국 사회의 비(非)백인화 속도가 빨라진다.
많은 백인들의 트럼프 지지에는, 그들이 미국 사회의 주변부로 밀려난다는 불안과 공포감이 작동하고 있다. 이미 미국 대도시에서 새로 선출되는 시장·시의원과 검찰·법원 등 사법기관 종사자들의 주류(主流)는 흑인 또는 소수 민족이 차지하고 있다.
◇극심한 내부 분열로 미국 몰락할 수도
그런 점에서 2024년 미국 대선은 해리스 대(對) 트럼프, 민주당 대 공화당의 싸움을 넘어 흑백(黑白)간의 인종 전쟁이다. 두 진영 간에는 미국의 현재와 미래상(未來像)에 대해 좁힐 수 없는 신념과 세계관의 거대한 차이가 존재한다.
백인들은 트럼프의 ‘매가(MAGA·Make America Great Again·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구호를 중심으로, 흑인·성소수자·불법 입국자들은 “미국이 계속 열린 기회의 나라가 돼야 한다”며 오바마·해리스 등을 정점으로 뭉치고 있다. 두 진영 간에 전쟁 같은 반목(反目)이 계속 깊어지면, 미국은 진짜 내전(內戰)의 소동돌이에 빠질 수 있다.
왕후닝(王滬寧) 중국 정치협상회의 주석이 저서 <미국은 미국을 반대한다(원제목: 美国反对美国)>에서 지적한대로, ‘내부의 극심한 분열로 미국이 몰락할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다음달 6일쯤 드러날 올해 대통령 선거의 승자(勝者)는 미국을 통합과 화해·치유의 길로 이끌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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