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멸망하는 듯… 용암처럼 불길이 산에서 밀려왔다"
3일째 산불로 속타는 산청 주민들
“도깨비불처럼 불씨가 여기저기 날아다녔습니다. 마치 화산 폭발하면 흐르는 용암 같았어요.”
23일 오전 경남 산청군 전역은 희뿌연 연기로 앞이 보이질 않고, 메케한 냄새로 눈과 코가 시큰거렸다. 물을 퍼 나르는 헬기 소리가 가득 찼다.

지난 21일 산불이 시작한 곳과 인접한 시천면 외공리 외공마을. 24가구 42명이 거주하는 이 마을은 지난 22일 오후 마을 뒷산에서 몰아친 불길이 마을을 덮치면서 주택 6채가 불에 탔다. 산청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본 마을 중 하나다.
마을 곳곳 주택은 포탄을 맞은 듯 폐허가 됐다. 슬레이트 재질의 지붕은 폭삭 내려앉았고, 벽체는 검게 그을린 채 무너져 내렸다. 사람이 살았던 주택이 맞나 싶을 정도로 가재도구 등은 불에 타 형체도 알아볼 수 없었다.

마을을 덮친 불은 진화했지만, 주택 안에서는 여전히 흰 연기가 피어올랐고 뜨거운 열기도 느껴졌다. 마을에서 만난 김원중(54) 이장은 “전날(22일) 오후 1시30분쯤 마을 뒷산에서 불길이 점점 내려오는 게 눈으로 보였다”면서 “심상치 않다고 생각해 곧장 안내방송을 하고, 주민들을 차량에 태워 대피시켰다”고 했다. 마을 청년들이 거동이 어려운 노인들을 부축해 겨우 경사진 마을 도로를 내려왔다고 한다. 마을에서 가까스로 몸을 피하고 약 10분 정도 지나자 불길이 마을을 덮쳤다. 강한 바람을 탄 불씨는 짧게는 4~5m, 길게는 10~20m를 날아다녔다는 게 주민들의 목격담이다.

외공마을과 인접한 점동마을은 불길을 피해 마을을 빠져나가면서 텅 비어 있었다. 당시 대피상황이 얼마나 급박했는지, 비워진 집 곳곳에 창문이 그대로 열려 있었다. 마을 뒷산은 새까맣게 그을린 상태였다. 이 마을 주민 허정순(63)씨는 “벼락이 내려꽂히듯 산 중턱 소나무에 불이 붙더니, 순식간에 산 정상까지 불이 번졌다”며 “세상이 멸망하는 것 같았다”고 했다. 허씨는 당시 농사일을 하던 중 불을 목격했다고 한다. 허씨는 “산길이 좁아 소방차가 진입할 수도 없고, 지금 가용한 소방헬기도 없는 것 같아 너무 두렵다”며 “이 마을에 집안 어르신들, 시댁 어르신들이 다 살고 있어 걱정이 더 크다”고 했다.

산불 이재민 100여명이 머무는 단성중학교 체육관. 체육관 안에는 연신 기침하는 소리가 가득했다. 전날까지 대피소인 이곳 체육관까지 연기가 밀려 들어왔다고 한다. 이곳 이재민들은 텐트 1개당 3명씩 함께 쓰고 있다. 총 33개의 텐트가 마련됐다.
이곳에서 만난 국동마을 박영화(70)씨는 ‘도깨비불’ ‘용암’ 같은 표현을 쓰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박씨는 “지난 22일 오후 6시쯤 인근에 산불이 나기도 했고, 혹시나 해서 다들 마을회관에 모여 함께 저녁 준비를 하고 있었다”면서 “저녁을 먹다 말고 급하게 대피했다”고 말했다. 이어 “50년 전 이 마을에 시집 왔는데, 이런 불은 처음이었다”며 “도깨비불처럼 불씨가 여기저기 날아다녔고, 불은 마치 화산 폭발하면 흐르는 용암처럼 보였다”고 했다.
점동마을에서 30년째 사는 주민 배익선(71)씨는 “화재 당일 오후 6~7시쯤 대피하라는 안내가 나와서 옷만 입고 아무것도 못 챙겼다”며 “복용하던 약도 못 챙긴 어르신들이 지금 약 가지러 다시 동네에 갔는데, 불안해 죽겠다”고 했다.

경남 산청군 시천면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이 사흘째 이어지고 있다.
23일 오후 1시 기준으로 산청 산불 진화율은 65% 수준이다. 산림청 중앙사고수습본부는 헬기 31대, 인력 2243명, 진화차량 217대를 투입해 불길을 잡는 데 주력하고 있다.
현재 산불영향구역은 1362㏊다. 총 화선은 42㎞로, 27km는 진화가 완료됐고, 15㎞는 진화 중이다.
이번 산불로 창녕군 소속 산불진화대원과 공무원 등 4명이 숨지고, 6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중상자들은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산불을 피해 주민 461명이 동의보감촌 등으로 대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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