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경제

김값 55% 올랐는데, 원료 물김은 폭락… 김빠진 어민들

太兄 2025. 2. 14. 17:46

김값 55% 올랐는데, 원료 물김은 폭락… 김빠진 어민들

김 촌극이 드러낸 1차 산업 '민낯'

입력 2025.02.14. 00:33업데이트 2025.02.14. 06:49
전남 신안 앞바다에 있는 김 양식장에서 한 어민이 김을 채취하는 모습. 최근 1~2년 사이 K푸드 인기로 해외에서도 조미김 수요가 계속 늘자 국내 어민들은 앞다퉈 물김 양식에 나섰고, 이에 물김 가격은 최근 크게 폭락했다. 반면 마른김 가공 설비는 그만큼 빠르게 늘지 않아 마른김과 조미김 가격은 계속 높은 상태다. /뉴스1

우리가 먹는 마른김의 원료인 물김이 버려지고 있다. 13일 수협중앙회에 따르면 지난달 전남, 전북, 경인, 충남, 부산의 산지위판장에서 폐기된 물김은 5989t으로 집계됐다. 마른김 가격은 장당 145원에 달하며 평년보다 55.5% 비싼데, 원료인 물김은 폐기되는 이해하기 힘든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김 수출액이 역대 최고치를 찍는 등 김값이 ‘금값’이 되면서 ‘김이 돈이 된다’고 생각한 어민들이 앞다퉈 물김 양식에 뛰어들어 벌어진 일이다. 이번 김값 촌극을 통해 우리나라 1차 산업의 민낯이 또다시 드러났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동안 농어업계에선 이른바 ‘뜨는 아이템’이 있으면 우르르 몰려가 생산량을 늘리고, 이로 인해 곧 가격 폭락이 이어지는 일들이 반복돼 왔다. 전문가들은 농어민들을 탓하는 걸 넘어 정책적인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지금처럼 주먹구구식 수요 예측과 뒷북 대응을 해결하지 않으면 반복되는 과잉 생산, 가격 폭락의 사슬을 끊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픽=박상훈

◇‘검은 반도체’ 키우려 불법 양식까지

김은 ‘검은 반도체’라 불리며 지난해 수출 9억9700만달러(약 1조3000억원)로 역대 최대 기록을 썼다. 미국, 유럽에서도 김을 ‘건강한 간식’으로 즐기면서 수요가 폭증했기 때문이다.

해양수산부는 김 산업을 키우겠다며 김 양식장을 축구장 3800개 규모에 달하는 2700㏊(헥타르)만큼 늘렸다. 해수부 관계자는 “당초 지방자치단체에선 2만㏊를 늘려달라고 했지만,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예측에 기반해 2700㏊만 늘렸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1월 수온이 예상보다 따뜻해서 김이 더 빨리 자랐다고도 했다.

이에 대해 수요 예측의 실패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 김 유통업체 관계자는 “기후와 수요 변화를 정확하게 예측하는 게 어렵다는 걸 안다”면서도 “김 산업의 중요성을 감안할 때 좀 더 세밀하게 정책을 짰다면 지금 같은 상황이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해수부와 해경, 지자체 등은 이달 들어서야 뒤늦게 불법 시설 특별 단속과 철거에 나섰다. 김은 면허를 받은 구역에서만 키울 수 있는데, 김이 돈이 된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무면허 김 양식에 나서자 단속에 나섰다는 것이다. 물김 생산량이 급증해 이미 가격이 급락했는데 뒷북 대응을 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수요 예측 실패와 뒷북 대응 등으로 물김 가격은 급락했는데 마른김은 되레 값이 오르는 이상 가격 현상이 나타났다. 통상 원료 공급이 늘면 완성품 가격이 떨어지기 마련인데 김은 그 공식이 성립하지 않는 것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중소기업이 대부분인 마른김 업체들은 김 수요가 는다고 가공 설비를 빠르게 확대할 여력이 없는 게 사실”이라며 “급증한 물김 수확량이 마른김으로 이어지지 않으니 폐기되면서 가격 불균형이 나타난 것”이라고 했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 대해 해수부 관계자는 “일시적으로 수급 불균형이 나타났을 뿐 소비자 가격도 곧 안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반복되는 1차 산업 ‘사후 약방문’

이번 김값 촌극은 몇 년 사이 ‘귀한 과일’에서 지위가 확 바뀐 샤인머스캣을 연상시킨다. 샤인머스캣은 최근 5년 사이 재배 면적이 2배 이상으로 늘며 가격이 40% 가까이 떨어졌다. 공급 과잉과 조기 출하로 품질도 떨어졌다는 평가를 듣는다. 농협과 생산자협회, 지자체에선 농민 피해가 커지자 뒤늦게 조기 출하를 단속하고 새로운 수출길 확보에 나서고 있다.

전문가들은 1차 산업에서 반복되는 쏠림 현상을 줄이기 위해 정부가 좀 더 정밀한 관측에 나서야 한다고 조언한다. 해마다 예상 재배 면적과 생산량을 사전에 정확히 예측하고 그에 따라 가격이 어떻게 바뀌게 될 것인지 구체적인 정보를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임정빈 서울대 농업·자원경제학 교수는 “돈을 더 벌기 위해 뛰어든 농어민을 탓할 순 없다”며 “정부가 고도화된 가격 관측 정보를 공개해 생산량을 적극 조절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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