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부통령 "나 죽으면 마르코스 대통령 부부 암살하라고 지시했다"...격랑 치닫는 필리핀 정국

필리핀 부통령 "나 죽으면 마르코스 대통령 부부 암살하라고 지시했다"...격랑 치닫는 필리핀 정국

유재인 기자

입력 2024.11.24. 15:01

사라 두테르테 필리핀 부통령. /로이터 연합뉴스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필리핀 대통령과 로드리고 두테르테 전 필리핀 대통령의 딸 사라 두테르테 필리핀 부통령의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고 있다. 두테르테 부통령이 최근 유사시 마르코스 대통령을 암살하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는 등, 필리핀 정국이 격랑으로 치닫고 있다.

23일 AP 등에 따르면 두테르테 부통령은 이날 온라인 기자회견에서 자신을 겨냥한 암살 계획이 있다고 주장하며 “만약 내가 살해당하면 BBM(마르코스 대통령의 이니셜), 리자 아라네타(영부인), 마틴 로무알데스(하원의장)를 죽이라고 했다. 농담이 아니다”라며 “이미 내 경호팀의 1명에게 얘기했다”고 했다.

마르코스 대통령 측은 해당 발언을 국가 안보 문제로 간주한다는 성명을 발표하며 보안 조치를 강화했다. 대통령실은 성명을 내고 “대통령의 생명에 대한 모든 위협은 항상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하며, 이 위협이 명확하고 확실한 용어로 공개적으로 드러났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고 밝혔다. 대통령 경호실 또한 두테르테 부통령의 발언 이후 마르코스 대통령에 대한 보안을 강화했으며 “부통령의 위협이 대중 앞에서 뻔뻔스럽게 표현된 것을 국가 안보 문제로 간주한다”고 밝혔다. 이어 “대통령과 대통령 가족에 대한 모든 위협을 탐지, 억제하고 방어하기 위해 법 집행 기관과 협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마르코스 대통령과 두테르테 부통령은 2022년 5월 선거에 함께 출마해 국민적 통합을 강조하며 대승을 거둔 정치적 러닝메이트였다. 그러나 취임 후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에 대한 이견을 보이며 이들의 불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친중 성향인 두테르테 가문과 달리 마르코스 대통령은 취임 후 친미 노선을 걸어왔다. 지난 6월 두테르테 부통령이 교육부 장관과 반군 진압 태스크포스(TF)에서 물러나며 마르코스 내각에서 사임, 양측의 동맹이 완전히 깨졌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번 두테르테의 발언은 마르코스 대통령이 여당 의원들과 함께 부통령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며 발생했다. 최근 마르코스 대통령의 사촌인 로무알데스 의장 등 여당 의원들은 부통령실 예산을 3분의 2 이상 대폭 삭감했다. 또한 두테르테의 예산 유용 가능성에 대한 조사를 착수하며 조사 방해 혐의로 그의 수석 보좌관 줄리에카 로페즈를 구금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