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교수가 본 한국인의 이중성격
오늘은 아름다운 이야기가 아니라. 별로 아름답지 못한 이야기 한 수를 소개해야겠다. 하지만 우리가 이를 아름답게 하라는 경종으로 받아 들인다면 이는 아름다운 이야기도 될 것이다.
얼마 전 서울에서 발행되는 일간지에 유명한 외국인 초빙교수가 한국에 살면서 목격한 한국인들의 이중인격에 대한 소감이 실렸다.
이 교수는 정신의학계의 세계적인 권위자인데, 한국을 떠나면서 후임으로 부임한 교수(외국인)에게 자신의 눈에 비친 한국인의 이미지에 관해 다음과 같이 평했다고 한다.
한국인은 너무 친절하다. 그러나 그것이 그 사람의 인격이라고 판단하면 큰오해다.
권력이 있거나 유명한 사람에게는 지나칠 정도로 친절하지만, 자기보다 약하거나 힘없는 서민에게는 하대하고, 거만하기 짝이 없어서 놀랄 때가 많다.
특히, 서비스업 또는 요식업 식당 종업원에게는 마구 잡이로 무례하게 머슴대하듯이 대해 같이 간 사람이 불쾌할 정도다.
잘 나가는 엘리트일수록 이러한 이중인격을 지녀서 인간적으로 마음을 주고 깊히 사귀고 싶지가 않았다.
공감이 가는소리다. 서울에서 온 점잖은 사람이 미국의 코리아타운 식당에서 종업원에게 “야, 이봐, 너” 하면서 큰 소리로 거만을 부리는 광경을 한인들도 많이 봤을 것이다.
그 사람이 친구나 친척이라면 ‘미국에서는그러면 안돼!’ 하고 충고를 해주겠지만, 잘 알지 못하는 사이거나 그가 VIP인 경우에는 충고는 커녕 난감하기 그지 없을 뿐이다.
한국에서 엘리트 계층에 속한다면 배운 사람이다. 배운 사람일수록 겸손해야 하는데 오히려 더 거만을 떤다. 대학을 졸업해서 지식은 많은데, 별로 지혜롭지가 못한 것이 한국인이다.
말은 유식한데 행동은 무식하기 짝이 없다. 게다가 준법정신은 더욱 엉망이다. 그러니 서양문화속의 신사도 정신, 노블레스 오블리쥬 (Noblesse Oblize)를 어찌 알겠는가?
서울에서 내가 겪은 일이다. 어느 회사 중역과 저녁을 먹고 그의 차로 호텔에 돌아오게 되었는데, 한가한 길에서 빨간 신호등이 켜지자 운전기사가 차를 멈추었다. 그때 중역이 “아무 차도 없잖아? 그냥 건너가” 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그 후부터 그 사람을 다시 보게 되었다. 힘 있는 사람부터 법을 안 지키니 부정부패가 만연할 수밖에 없다.
대법관으로 임명된 인사가 청문회에서 위장전입을 인정해야 할 정도니 정부 요직에 있는 다른 인사들이야 말해서 무엇 하랴!
한국 엘리트들의 또 다른 모순은 자기 잘못을 절대 인정하지 않는 다는점이다.
회사에서도 뭐가 잘못되면 전부 윗사람 탓, 아랫사람 탓이고 자기반성은 조금도 없다. 모두가 남의 탓이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의 성격이 너무 네거티브하다.
모여 앉으면 정치 이야기인데, 완전히 흑백논리로 빨갱이 파랭이로 평가한다.
호남친구들과 만나면 이승만, 박정희, 박근혜 혹평하는 것 듣다가 시간 다 가고, 경상도 친구들과 만나면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을 얼마나 미워하는지, 조용히 식사하자고 모인 저녁 자리가 피곤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한국에는 존경받는 대통령이 없다. 10여명의 대통령이 지나 갔는데 거의 모두가 감옥살이 아니면 자살을 했다. 모두가 이래서 죽일 놈이고 저래서 죽일 놈이다.
미국역사에 46명의 대통령이 지나 갔지만 링컨과 케네디가 자객들의 총을 맞았을 뿐, 그렇게 후임 대통령이 전임 대통령을 괴롭히지 않았다. 잘 못을 탓하기 보다 자신의 도덕성과 전임자의 권위를 존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도덕성이 결핍되여 있는 이기주의 민주주의다. 한국 역사에 보복성 정치를 하는 것은 역사적 버릇이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군주주의 잔재를 씻지 못하면 자유 민주주의는 자라나지 못한다.
좋지 않은 보복성이지만, 또, 그렇게 하지 않으면 새로운 정부가 일을 할 수 없게 되어 있는 것도 문제인 것이다. 지지자들 또한 당연히 정치보복을 해야 속이 풀리는 모양새다.
벼락부자의 단점이 무엇인가? 국민소득은 30,000달러 수준인데, 국민의식은 아직도 500달러 수준(1970년대)이다. 돈만 많다고 선진국이 아니다.
경제가 눈부시게 발전했다고 자랑하지만 그것은 곧 벼락부자가 되었다는 뜻이다.
그저 남에게 내가 이만큼 가졌다고 자랑하고 싶어 하는 것이 한국인이다. 재산이 곧 사람평가의 기준인 것이다.
내가 미국에 돌아 가면 미국에 있는 한국 친구들에게 역이민을 절대 말리고 싶다.
요즘 미주 한인들 중에 한국에 가서 여생을 보내면 어떨까? 하고 역이민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돈 없이 한국에서 살면 사람취급 제대로 못 받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돈 없는 사람은 동창들 사이에서도 냉대를 받는 곳이 한국이다.
미국에서 재산 몽땅 정리해도 한국에서는 아파트 하나 사기가 힘들어진 세상이다. 성공의 의미가 너무 좁다.
몇 평짜리 아파트에 사느냐, 강남에 사느냐 강북에 사느냐가 사람평가의 또 다른 기준이다.
돈 있고 잘사는 데도 자기보다 더 잘사는 사람을 부러워하며 항상 뭔가 불만족이다.
역이민? 절대 말리고 싶다.
한국에서 삶의 불만족은 국민에게 있는것이 아니고, 그 뿌리는 정치인들에게 있다.
국민이 뽑은 대통령을 어떻게 해서든지 뒤집어 엎고, 정권을 잡아 권세를 누리려 하는 것이 정치하는 사람들의 야심이다. 특히 특정지역 사람들이 정권을 잡으면 제 식구들끼리 모두 해 먹는다.
정치인이 아니라 해도 권력을 그렇게 좋아 하는 것이 한국인이다. 한국역사를 조금 공부해 보니까 국민성이 그렇게 되어 온 것이 지난 역사였다.
당치도 않은 사회주의를 꿈꾸면서, 북을 찬양하는 종북주의자들이 권력을 잡았을 땐, 자신들이 민주화 투사라고 자칭하면서 모든 요직을 독점했다. 민주주의고 삼권분립 같은 것은 찾아보기 힘들다.
자본주의를 미워하면서, 경제인들이 벌어 온 국민의 혈세를 빨아먹으면서, 자기는 올바른 처세를 하는체하고 활개를 치는 것이 한국의 많은 정치인들이다.
참으로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세계의 빈국인 북한의 김일성 주체사상 주사파를 그렇게 추종하면서 돈 좀 있다고 하는 좌파 정치인들의 자식들은 다 미국으로 유학을 보내고 있다.
왜 러시아로 유학을 아니 보내는가?
줄기 나무에 기생을 하여 자라난 덩굴들이 본목(本木)의 진을 다 빨아 먹어 줄기나무가 누렇게 시들어 가고 있다. 민주-자본주의에 기생하여 자라난 종북-친북-간첩들이 대한민국을 한 20년쯤 빨아대니, 드디어 자유-민주주의도 시들어 말라 죽으려 하고 있다.
본목이 다시 살아 날려면 기생하는 그 엉겅퀴 덩굴의 밑둥을 자르면 될 것인데 그 근본을 자를 생각은 아니하고 가지들만 처낼려고 한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그래서 어렵다.
나라가 망해가는 것도 아랑곳 없이 나와 내 새끼만 잘 되면 그만이라 하는 것이 일반적인 한국인의 사고 개념이다. 입으로는 애국심을 떠들지마는 행동은 부족하다. 너무 이기적이고 기회주의적이 아닌가? “
국민소득은 이제 선진국 대열에 들어 섰는데, 노약자나 극빈자들을 보살피는 수준은 상당히 멀었다.
특별히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국민들이 경찰관을 우습게 여기는 풍조다. 미국에서는 경찰관에게 반항할 수가 없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국회의원이나 고관, 노동조합원까지도 경찰관을 너무 가볍게 보고 우습게 여긴다.
대한민국은 데모의 왕국이다. 데모를 많이 하면 민주주의 잘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데모의 사이즈도 몇 십명 몇 백 명이 아니다. 했다 하면 수 만명 수 백만명이다. 그렇게 데모를 하지만 정치인들은 눈 하나도 깜작을 아니 할 때가 많다.
자유 민주주의는 돈이 아니고, 억척도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악악 댄다고 해결 되는 것고 아니다. 자유 민주주의는 양심과 도덕을 먹고 사는 정치이념이다. 장치를 잘 하고 못하는 것은 이념의 선택 보다도 양심의 선택이 훨씬 더 중요하다.
두서 없는 글 읽어주시어 감사드리고, 한국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쓴 글이니 기분 나쁜 점이 있더라도, 많은 이해를 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