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北비핵화 유지할 듯… 김정은에 러브레터 띄우긴 쉽지 않아"
美 전문가 3인의 '트럼프 2기' 전망
지난 5일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세계가 ‘트럼프 2기’에 대한 본격적인 대책 마련에 들어갔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핵 개발 야욕을 버리지 않는 북한과 러시아의 밀착,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운 트럼프의 무역 압박, 중국·일본 등 한국의 안보에 중요한 아시아 국가에 대한 정책 기조 변화 등 많은 변화가 닥치리라는 경고가 많다. 이에 본지는 미국의 한반도·아시아 전문가 세 명을 인터뷰해 다가오는 트럼프 2기에 대한 전망과 한국의 대처 방안을 들었다.
◇ 시드 사일러 전략국제문제연구소 선임고문
시드 사일러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고문은 미 국가정보국(DNI) 산하 북한정보위 북한담당관, 북핵 6자 회담의 미국 측 차석 대표 등을 거친 미국의 대표적인 북핵·한반도 문제 전문가다. 북미 정상회담이 세 차례 열렸던 ‘트럼프 1기’ 와 겹치는 2016~2020년, 주한 미군 선임분석관으로 일했다. 그는 미 대선을 계기로 한 본지 인터뷰에서 “4년 사이 북한의 핵 개발이 많이 진전됐다는 점이 변수가 될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는 김정은과 대화를 다시 시도할까.
“북한 비핵화에 대한 원칙은 정권 교체와 상관없이 지속되리라고 본다. 4년 전과 비교할 때 가장 큰 변화는 북한의 핵 개발 진전도다. 핵 기술 수준이 전반적으로 크게 발달했다. 트럼프가 이런 북한에 1기 때처럼 ‘러브레터’를 보낼까. 쉽지 않으리라고 본다. 최근 북한의 한민족 부정과 ‘두 국가론’ 등 기조를 감안할 때 북한도 김정은이 판문점까지 내려왔던, 과거와 같은 수준의 북미 대화를 원하지는 않을 가능성이 크다.”
―김정은은 돌아온 트럼프에 어떻게 대응할까.
“북한은 트럼프 당선을 계기로 (조 바이든 정부 때 강화된) 한미 동맹에 균열을 내려고 시도할 것이다. 무력 도발을 하고 한국이 이에 맞서 과잉 대응을 하도록 부추겨 ‘현상 유지’를 원하는 미국과 갈등을 유발할 수 있다는 뜻이다. 북한이 북방한계선(NLL)을 더는 인정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서해에서 한국 군함을 또 침몰시킨다고 가정해보자. 한국은 무력을 사용해 북한군들을 몰아내 NLL을 지킬지, 아니면 ‘현상 유지’를 추구하며 NLL의 무력화를 지켜봐야 할지 선택해야 하는 난처한 입장에 처하게 된다. 북한의 도발에 대한 대응책을 두고 한미가 충돌하고 동맹이 벌어지는 상황이 북한이 원하는 시나리오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파견된 북한군에 대한 트럼프의 조치는 어떻게 예상하나.
“트럼프는 공언한 대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위해 신속히 움직일 것이다. 종전을 포함한 여러 거래의 일환으로, 블라디미르 푸틴(러시아 대통령)에게 북한 병사를 돌려보내라고 설득할 수도 있다고 본다. 트럼프가 과시하기 매우 좋은 성과이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주한 미군 감축 기조에 한국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트럼프가 묻게 될 질문, 즉 ‘미군은 왜 한반도에 이렇게 많이 주둔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한국이 답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더 큰 그림’ 차원에서 주한 미군의 가치를 설명하길 권한다. 점점 고조되는 양안(중국·대만) 갈등과 커지는 중국의 무력 행동 가능성 등을 감안해 주한 미군이 아시아의 핵심 전력이 될 수 있음을 강조하는 편이 트럼프와의 협상에 유리하리라고 본다.”
/워싱턴=이민석 특파원
◇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은 미 중앙정보국(CIA) 한국 지부장 및 한국 담당 부책임자를 역임한 미국 내 대표적인 지한파 전문가다. 2007년부터 미국 워싱턴 DC의 대표적인 보수 정책 연구소인 헤리티지재단에서 일하며 미 정치 지형도에 따른 미국과 동북아 국가의 관계 변화를 밀접히 연구해 왔다. 그는 최근 본지 전화 인터뷰에서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국가들은 미국과 중국이 대립할 때 모호한 입장을 취하고 싶어 하지만 (트럼프 정권 출범 후엔) 결국 어느 편을 들지 선택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한·미·일 동맹이 트럼프 때는 어떤 운명을 맞을까.
“일단 최근 총리가 바뀐 일본의 경우 그래도 최악을 피했다는 평가가 많다. 이시바 시게루 신임 총리는 (다카이치 사나에 전 경제안보담당상 등) 강경 보수 성향의 후보에 비해 미국, 그리고 한국과의 공조를 지속할 인사로 꼽힌다. (이시바가 한·미·일 관계에 주력하기엔) 일본 국내에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다는 점이 지난 정권 때와는 차이로 보인다.”
―트럼프는 한·미·일 3국 관계를 어떻게 볼까.
“트럼프는 한·일과의 관계를 중국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한 차원으로 접근할 가능성이 크다. 1기 때는 트럼프와 마이크 폼페이오 당시 국무장관이 아시아 국가들에 더 적극적으로 (중국에 대응한) 행동을 하도록 촉구했다. 2기 때도 비슷한 기조가 반복될 것이다. 아시아 지역의 국가들은 미국과 중국 중에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맞닥뜨리고 싶지 않아 하지만 더 이상 ‘(양국을 다 관리하며) 담 위를 걷는’ 일이 불가능해질 수 있다. 이제 곧 선택을 강요받게 될 것이다.”
―트럼프 2기의 대북(對北) 정책에 대한 전망은.
“트럼프 1기 취임(2017년) 때와 지금은 큰 차이가 있다. 일단 미국 국내에서 북한의 미사일 발사가 별 관심을 못 끄는 상황이다. 2017년만 하더라도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하면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요즘은 거의 언급이 안 된다. 게다가 미국이 직접 연관된 대규모 전쟁이 둘이나 생겼다. (국내 관심사를 감안할 때) 트럼프 2기의 우선순위는 양안(중국과 대만),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중동에 먼저 집중되고 북한은 그 뒤로 밀릴 것으로 본다.”
―김정은은 트럼프로부터 무언가 얻어내려 하지 않을까.
“김정은은 (트럼프 1기 때와 달리)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인 러시아로부터 많은 혜택을 받고 있다. 과거만큼 미국이나 한국으로부터 무엇인가 이익을 얻어내려는 욕구를 느끼지 않으리라고 본다. 아울러 문재인 전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이 (북한에 대해) 매우 다른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점도 큰 차이다.”
/워싱턴=김은중 특파원
◇ 스콧 스나이더 한미경제연구소장
‘트럼프 2기’ 출범은 한반도 안보나 한·미·일 공조 등 외교만큼 미 정부의 경제 정책에도 변화를 불러올 가능성이 크다. 미국 외교협회(CFR)에서 10년 이상 한미 관계를 연구했고 지난 4월부터 한미경제연구소(KEI) 소장 겸 CEO(최고경영자)로 일하고 있는 스콧 스나이더는 미 대선 결과가 나온 직후인 6일 본지 전화 인터뷰에서 “미 의회 내엔 자신의 지역구에서 한국 기업이 일자리를 많이 창출했다는 점을 성과로 내세우는 의원이 적지 않다. 이들을 잘 활용해 트럼프 2기에 대응하기를 권한다”라고 말했다.
―트럼프는 유세 중 한국 기업들에 공격적이었다. 기업들이 피해를 당하지 않을까.
“과거 사례를 분석해 보면 트럼프가 소셜미디어에 올리는 정책이나 발언이 모두 현실이 되지는 않았다. 한국 기업들은 지난해 215억달러(약 30조890억원)의 투자를 약정해 이미 대미 최대 투자국에 올라 있다. 한국 기업들이 (공장 건설 등을 통해) 지역구에서 다수의 일자리를 창출한 점을 입법자(상·하원 의원)들이 잘 알고 있고, 이들은 이런 ‘정치적 자본’을 계속해서 활용하고 싶어 한다. 의회의 이런 (친한국) 기조는 초당적이며, 따라서 정권이 바뀐다고 뒤집히지는 않을 것이다. 한국 정부와 기업에 힘이 되어줄 의원들이 의회엔 적지 않다. KEI 조사 결과, 60%가 넘는 의원이 한국과의 좋은 관계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트럼프가 반복해 주장해온 관세 인상은 한국 기업엔 부담이다.
“관세와 관련해 가장 큰 변수는 한국이 아닌 중국에 대한 관세 인상이다.(트럼프는 중국산 수입품에 60%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주장해 왔다.) 트럼프가 시진핑과 대립하면서 중국에 막대한 관세를 부과해 중국 상품의 수출이 줄어든다면 어떻게 될까. 한국 기업이 유리해질 여지도 있지 않을까. 관세 인상 기조로 한국이 수혜국이 될지 피해국이 될지 판단하기는 아직 이르다고 본다.”
―미국에 진출한 한국 첨단 기업들이 많은 보조금을 받게 한 바이든 정부의 IRA(인플레이션 감축법)에도 변화가 있을까.
“지금 미 정치권에는 (대선 캠페인 내내 트럼프를 지지해 최측근으로 부상한) ‘일론 머스크’(테슬라 창업자)라는 예기치 못한 변수가 생겼다. 그의 영향력이 어디로 튈지를 봐야 한다. 기업 활동에 영향을 미치는 기후 변화 대응 관련 정책 기조가 트럼프 1기 때와는 다른 양상으로 전개될 가능성도 있다는 뜻이다.”
트럼프는 전기차에 부정적이지만 “전기차 자체는 반대하지 않는다”고 하는 등 입장이 최근 다소 변했다. 한국 배터리 기업 등은 ‘트럼프표’ 친환경 정책이 민주당에 비해 얼마나 후퇴할지가 관심사인데, 머스크의 ‘입김’으로 변화 강도가 다소 약해질 수 있다는 의미다.
/워싱턴=김은중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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