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잘 걸리는 위암·대장암, 정복에 한 발 다가선 한국 스타트업
[스타트업 취중잡담] 타깃링크테라퓨틱스 오영선 대표
기업가 정신으로 무장한 사람들이 창업에 뛰어들며 한국 경제에 새 바람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스타트업 성장을 돕기 위해 스타트업 인터뷰 시리즈 ‘스타트업 취중잡담’을 게재합니다. 그들은 어떤 일에 취해 있을까요? 그들의 성장기와 고민을 통해 한국 경제의 미래를 탐색해 보시죠.
2022년 통계청의 사망 원인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의 위암 발병률은 세계 1위로, 미국의 10배에 달한다. 건강검진으로 조기 발견하는 경우가 많아 초기 생존율은 높지만 말기 5년 생존율은 10% 안팎이다. 대장암도 조기 발견하면 5년 생존율이 91%에 이르지만 다른 장기 등으로 전이되면 생존율이 14%로 떨어진다.
타깃링크테라퓨틱스의 오영선(47) 대표는 미국 휴스턴 엠디엔더슨 암 센터와 베일러 의과대학에서 연구 교수로 일하며 항암 신약 물질을 발굴했다. 해외에서 경력을 쌓았지만, 한국인의 목숨을 위협하는 위암·대장암 치료제의 필요성을 느껴 창업에 뛰어들었다. 그를 만나 차세대 항암제 개발기를 들었다.
◇아픈 주변 사람에 도움이 되고자 선택한 전공
2001년 대구대 생물학과를 졸업하고 성균관대 생명과학과 석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어렸을 때부터 저를 예뻐해 주셨던 할아버지가 지병으로 일찍 돌아가셨습니다. 할아버지가 아프실 때 해드릴 수 있는 게 없어 안타까웠어요. 아픈 사람들이 건강을 되찾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약을 만들고 싶어 생명과학을 전공했습니다.”
2004년부터 10년간 서울대 약대에서 제약 생명과학 연구원으로 일했다. 이후 미국에서 5년 동안 신약 후보 물질을 발굴하는 일을 했다. “텍사스주에 있는 엠디엔더슨 암 센터와 베일러 의과 대학에서 항암제를 개발하고 임상 시험을 진행했습니다. 베일러 의과 대학에서 찾은 후보 물질을 글로벌 제약사에 기술을 이전한 적도 있어요.”
보다 넓은 무대에서 연구 경력을 쌓았다. 하지만 어딘가 아쉬웠다. “텍사스 휴스턴 지역에 메디컬 센터가 밀집돼 있어 제약 세미나가 자주 열렸어요. 글로벌 항암제 시장 현황을 파악할 기회가 많았죠. 그때 항암 신약이 서양인 신체 위주로 만들어진다는 걸 알게 됐어요. 한국인의 특성에 맞춘 항암제는 거의 없더군요. 한국인을 비롯한 동양인의 신체에 초점 맞춘 항암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신약 발굴 경력이 있어 자신 있었어요.”
◇한국인 맞춤 항암제 개발 착수
2023년 차세대 항암제 항체 약물 접합체(ADC, Antibody Drug Conjugate) 개발사 타깃링크테라퓨틱스를 설립했다. 기존 ADC의 부작용을 일으키는 강한 독성에 문제의식을 느껴 약한 독성으로도 강력한 항암 효과를 보이는 ADC를 개발하기로 했다. “1세대 화학 항암제는 암 제거 효과가 뛰어나지만 정상 세포도 무차별적으로 공격해 면역 체계를 파괴합니다. 탈모, 구토 등 각종 부작용 발생 위험이 있죠. 2세대 항암제는 표적 항암제입니다. 암세포만 선택적으로 공격할 수 있어 부작용이 적지만, 내성이 생기거나 암의 재발 가능성이 높습니다.”
ADC는 1~2세대 항암제를 보완한 형태다. “ADC는 항체가 특정 세포를 표적 삼아 유도탄 방식으로 약물을 전달하는 방식을 말합니다. 암세포를 찾아 표면에 결합하는 ‘항체’와 세포를 죽이는 약물인 ‘페이로드’, 항체와 약물을 연결하는 ‘링커’로 구성돼 있는데요. 정상 세포를 피해 암세포를 잘 인지하고 선택적으로 공격해 독성으로 인한 부작용을 줄이고 항암 효과도 강력합니다. 차세대 항암제로 주목받고 있죠.”
기존의 ADC는 혈액암을 타깃으로 한다. ADC의 장점을 고형암에 적용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2021년 기준 식품의약국(FDA)에 승인된 ADC는 대부분 혈액암 치료제입니다. ADC는 주사로 주입하는 방식인데요. 상대적으로 항암 효과를 입증하기 쉬운 혈액암 치료제로 먼저 개발된 겁니다. 약물이 특정 부위까지 도달해야 하는 고형암 ADC 발굴은 그보다 까다롭습니다. 문제의 장기까지 도달하지 못하고 중간에 링커가 풀려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거든요. 그래서 항체, 페이로드, 링커 세 가지의 조합까지 연구해야 합니다. 까다롭다는 이유로 처음부터 고형암 표적으로 만들어진 ADC가 적은 게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마저 서양인 위주로 발굴돼 위암, 대장암이 잘 발병하는 한국인 맞춤 치료제가 부족했어요.”
시중의 ADC ‘허셉틴’은 위암 환자군 중 10~20%만 발현되는 타깃 ‘HER2′로 만들어져 80~90%의 환자가 사용하지 못하는 것도 문제였다. “현재 시장의 HER2 타깃으로 만들어진 허셉틴은 원래 유방암 치료제로 만들어졌지만, 위암 치료제로 확대 사용되고 있습니다. 저희는 HER2 음성 환자 80~90%가 사용할 수 있고, 처음부터 위암과 대장암 항암 목적의 치료제를 만드는 데 중점을 뒀어요.”
위암과 대장암 ADC 개발 전 전 혈액으로 암을 진단하는 혈장 단백질 ‘바이오마커’부터 발굴했다. “바이오마커는 DNA, RNA, 단백질을 분석하는 액체 생검에 쓰이는 기술입니다. 조직을 떼야 하는 조직 생검보다 고통을 줄일 수 있죠. 게다가 조직 생검은 병변이 존재하지 않는 부위를 채취하면 암세포가 제대로 검출되지 않는 허점도 있었습니다. 바이오마커는 조직 대신 정상인과 암 환자의 혈액 속 단백질을 비교 분석해 암 오진율을 줄일 수 있습니다.”
발굴한 바이오마커를 이용해 한국인을 위한 ADC를 만들기로 했다. “바이오마커 연구 결과와 오픈 데이터 소스를 결합해 위암과 대장암에서 특히 잘 발현되는 질병 원인 물질(타깃) TLT001을 발굴했어요. 새롭게 찾은 TLT001은 맵고 짠 음식을 좋아하는 한국인에게 과발현돼 위암, 대장암 발병을 야기하는 타깃입니다. TLT001가 위암에서 70%, 대장암에서 95% 이상 발현되는 것을 파악했습니다. TL001을 표적으로 하는 새로운 위장관암 치료제를 개발하기로 했습니다.”
◇신약 개발 기간 단축을 위해 자체 개발한 시스템
차세대 항암제뿐만 아니라 항암제 시장 전반에 도움이 되는 기술을 개발했다. 알고리즘으로 신규 타깃을 발굴하는 시스템을 만들어 특허도 출원했다. “돌연변이 단백질을 찾아낼 수 있는 임상 데이터를 모았어요. 자체 개발한 고속 스크리닝 시스템으로 정상인과 암 환자의 단백질을 비교 분석해 항암제를 만드는 데 사용할 수 있는 단백질을 추출합니다. 인공지능(AI)에 단백질 서열을 학습시켰어요. 이전에는 단백질 3000개 중 1000개 남짓을 규명할 수 있었는데 저희 시스템으로는 2000개 이상 규명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알아낼 수 있는 질환이 많아 다양한 항암제 개발이 가능해요.”
20~30년 이상 걸리는 신약 개발 과정을 10년으로 단축하는 게 목표다. “신약 개발은 인내심이 필요한 일입니다. 먼저 타깃을 선정하고, 어떤 약을 만들지 고민해야 합니다. 암세포를 제거하는 방식도 하나하나 분해할지, 모조리 없애버릴지 등 때 고려할 게 많습니다. 신약 개발 후에도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안전성을 검사하는 1차, 효능을 검증하는 2차, 대규모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3차 임상시험을 거쳐야 하죠. 출시 후에는 실제로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는지 검증이 필요합니다. 이 과정은 통상 20~30년이 소요되는데요. 저희가 개발한 AI 시스템으로 10년까지 단축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몸의 생체 시스템을 활용하는 식으로 차별점을 도모했다. “우리 몸에서 세포는 새롭게 만들어지고 단백질 분해 시스템인 ‘유비쿼틴’을 통해 사라지는 과정을 반복합니다. 이때 자체적으로 세포가 사라지지 않으면 암과 같은 병이 되는 거예요. 몸 안에 있는 유비퀴틴을 ADC에 접목해 약물 재사용이 가능하게 했습니다. 기존 항암제는 약물과 타깃이 일대일로 대응했는데요. 유비퀴틴을 활용한 단백질 분해제를 사용하면 다수의 암세포를 하나의 ADC로 없앨 수 있습니다. 투약 용량과 횟수를 줄일 수 있죠.”
◇지난 3월 서울바이오허브 입주, 공용 실험실 지원
작은 덩치의 스타트업이 신약 개발을 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주변에서 ‘정말 할 수 있겠냐’는 질문도 많이 받았다. “타깃링크테라퓨틱스는 20년 이상의 연구 경력이 있는 전문가로 구성된 집단입니다. 서울대, 하버드 등 국내외 병원에서 제약 연구 경력을 쌓은 전문가 6명이 의기투합하고 있죠. ‘지금까지의 경력이 아깝지 않게끔 제대로 해보자’는 마음가짐으로 임하고 있어서 목표한 바를 이룰 수 있다고 믿습니다.”
꿈을 밀어주는 든든한 조력자의 힘도 컸다. 서울바이오허브의 지원도 받았다. 서울바이오허브는 서울시가 조성하고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과 고려대가 운영하는 바이오·의료 창업 혁신 플랫폼이다. “지난 3월 서울바이오허브에 입주했어요. 사무실과 연구 장비를 지원받았습니다. 바이오 스타트업은 한 대당 3억~4억원씩 하는 연구 장비를 구축하는 게 쉽지 않은데요. 비용이 부담돼 막막했는데 공용 실험실을 지원받은 덕에 걱정을 덜었습니다. 투자 담당자와 연결해 주는 IR 피칭 프로그램도 유용했어요. 몇몇 투자사 관계자와 건설적인 논의를 하기도 했습니다.”
◇한국인 건강을 책임지는 신약 출시가 꿈
설립된 지 2년이 채 되지 않은 기업이지만 꾸준히 성과를 내고 있다. “작년 1월 중소벤처기업부(중기부) 예비창업패키지 1위로 선정돼 2023년 5월 법인을 설립했어요. 법인 설립 두 달 만에 중기부 디딤돌 과제에 채택되고 10월에 벤처기업 인증을 받았습니다. 엔젤투자로 3억원을 유치하기도 했어요. 기존에 없었던 신규 타깃을 발굴했다는 점에서 기업 가치를 인정받았다고 생각해요. 타깃 발굴을 시작으로 항암제 만드는 과정 전체를 책임지는 기업이 되는 것이 목표입니다.”
또 다른 암 치료제까지 사업을 확장할 구상이다. “저희가 찾은 타깃 TLT001은 췌장암과 담도암 환자에도 50% 이상 발현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췌장암과 담도암은 국내 생존율이 가장 낮은 암으로 꼽힙니다. 췌장암의 생존율은 10% 내외고 담도암 생존율은 췌장암 다음으로 가장 낮은 20~30% 수준입니다. 새로운 ADC가 안정성을 인정받으면 위암과 함께 한국인이 잘 걸리는 두 암의 생존율도 높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바이오 창업을 앞둔 이들에게 신약 출시 전 자본 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바이오 창업은 모든 과정이 오래 걸리는 분야입니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매출이 나오기 전까지 중간중간 기술 이전과 같은 사업화를 추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희도 기술 이전이나 공동 연구 참여를 통해 자본을 확보하는 것을 우선순위로 두고 있어요. 바이오 스타트업이 개발한 신약이 세상의 빛을 볼 때까지 오랜 시간이 소요됩니다. 그 시간을 버틸 만한 자본을 충당할 수 있도록 대안을 꼭 마련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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