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받는 곰, 사살되는 곰
자이언트 판다 ‘푸바오’가 중국 쓰촨성으로 떠났다. 6000명 팬들은 빗속에서 깃발을 흔들며 푸바오가 떠나는 걸 지켜봤다. 푸바오가 탄 전세기엔 사육사와 수의사가 함께 탑승해 20~30분마다 건강상태를 모니터링 했고, 컨디션 조절을 위해 기온과 음식이 철저히 관리됐다. 3일 밤 중국 청두국제공항에 도착한 푸바오가 카메라 플래시나 관계자들의 손짓에 놀라는 모습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번지자, 푸바오 팬들 사이에서는 “계속 지켜보겠다” “푸바오 불행하게 만들면 용서 못 한다”는 반응이 나왔다.
같은 곰인데 푸바오와는 딴판으로 사는 곰들도 있다. 영양제 대신 마취제를 맞고, 사육사 대신 도축업자를 만나는 사육곰이다. 환경부 집계에 따르면 전국 21개 농가에서 사육곰 322마리가 살고 있다고 한다. 이런 곳에서 탈출한 곰은 발견 즉시 사살된다. 포획이 어렵고 추가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이유다. 최근에는 작년 12월 충남 당진에서 탈출한 반달가슴곰 한 마리가 사살됐고, 2022년 5월 울산에서도 한 마리 사살됐다. 사육되는 곰들은 죽기 전에도 좁고 녹슨 철창에서 갇혀 산다. 생김새와 출신이 같지 않다고 해도, 판다곰 푸바오와 국내 사육 반달가슴곰의 처지가 이렇게 다르다.
몇 해 전 한 농장에서는 ‘웅담 한정 수량 70cc 할인 판매’ ‘곰고기·웅담 세트 판매’ 등의 글귀가 적힌 광고를 냈다 뭇매를 맞았다. 웅담 채취와 곰 번식을 평생의 업으로 해온 이들은 시대착오자가 되고 말았다. 1981년 농가 소득 보전을 위해 곰 사육이 허용됐다가 4년 뒤 곰 수입이 전면 금지됐다. 또 1993년에는 멸종야생동식물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CITES)을 맺게 되면서 있던 곰을 길러 다른 나라에 파는 수출길도 막혔다. 국가가 나서 곰 사육을 장려했지만 시대가 바뀌면서 점차 규제가 늘어난 것이다. 또 2026년부터는 야생생물법 개정안 통과로 45년 만에 곰 사육이 전면 금지된다.
곰 사육이 금지되기까지 2년도 채 남지 않았는데, 농장에 있는 곰들은 어디로 갈지 아직 정해진 바가 없다. 2025년 말까지는 사육된 곰의 도살과 웅담 채취가 가능하기 때문에 그사이 빠르게 도축될 가능성도 크다. ‘곰보금자리프로젝트’라는 민간 동물보호단체가 농장 주인들을 겨우 설득해 보호시설로 옮기고는 있지만, 단시간 내 전국 모든 곰들에게 새로운 집을 지어줄 수는 없다. 동물보호단체 관계자는 “현재 한국에 있는 보호시설 규모로는 남은 사육곰의 절반도 수용할 수 없고, 앞으로 구조될 곰을 누가 살 것인지, 어떤 방식으로 거래할 것인지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았다”라고 했다.
푸바오 인기 비결 중 하나는 ‘자컨’(자체 제작 콘텐츠)이었다. 아이돌 가수 일상을 소속사가 영상으로 제작해 ‘덕질’을 유도하는 것처럼, 에버랜드도 푸바오의 일거수일투족을 영상으로 편집해 유튜브에 올렸다. 팬들은 푸바오의 영상을 반복해서 보고 재생산하고 공유하면서 사랑을 키워 나갔다. 곰보금자리프로젝트는 사육 농장 출신 곰들이 새로운 집에서 생활하는 모습을 소셜미디어 등에 올리고 있다. 주로 건강 상태를 살피기 위해 달아 놓은 CCTV 영상이었다. 갓 겨울잠에서 깨어난 반달가슴곰도 푸바오 못지않게 귀여운 구석이 있다. 푸바오 떠난 빈자리가 슬프다면, 322마리 사육곰에 대한 관심으로 채워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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