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경제

김명수의 ‘우리법·인권법 코드인사’...정치편향 판사 대거 중용

太兄 2023. 8. 16. 16:59

김명수의 ‘우리법·인권법 코드인사’...정치편향 판사 대거 중용

‘정진석 실형’ 선고 뒤 커지는 논란

입력 2023.08.16. 03:34업데이트 2023.08.16. 11:22
 
김명수 대법원장이 지난 6월 14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사법행정자문회의 제28차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대법원

‘노무현 전 대통령 명예훼손’ 사건에서 정진석 국민의힘 의원에게 징역 6개월을 선고한 판결을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통상 벌금형에서 집행유예를 선고하는 명예훼손 사건에 징역형을 선고한 것을 두고 “담당 판사의 정치 성향이 반영된 판결”이라는 비판이 나왔는데, 그런 지적을 뒷받침하는 자료들이 공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사건의 판사인 박병곤(38) 서울중앙지법 형사5단독 판사는 고교, 대학 시절뿐 아니라 법관 임용 후에도 친야(親野) 성향을 강하게 드러내는 글들을 페이스북에 다수 올렸던 것으로 나타났다. 박 판사는 ‘정진석 사건’의 첫 재판이 열리기 두 달 전쯤 페이스북 글을 삭제했지만, 그 내용을 캡처한 파일이 법조계에서 이야기되고 있다. 판사의 정치 성향이 형량과 연결됐다는 비판을 뒷받침하는 박 판사의 페이스북 글에 대해, 법원 일각에선 심각하게 보는 기류가 있다고 한다. 대법원도 뒤늦게 진상 파악에 나섰다.

법조계에선 김명수 대법원장 취임 이후 법원 내부에 누적됐던 ‘정치 편향’ 판사 문제가 이번에 터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판사들이 ‘정치 편향’ 판결이나 언행으로 논란이 된 일은 ‘김명수 대법원’ 이전에도 있었다. 2011년 최은배 부장판사(현 변호사)는 당시 이명박 대통령을 향해 ‘뼛속까지 친미(親美)’라고 해 논란이 됐다.

하지만 ‘김명수 체제’가 들어선 이후 판사들이 정치적 목소리를 내는 경우가 잦아졌고, 그런 판사들은 민감한 사건을 다루는 서울중앙지법 형사부에 배치되는 등 대거 중용됐다.

그래픽=백형선

오현석 부장판사는 2017년 8월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김 대법원장을 대법원장 후보로 지명한 직후 법원 내부 통신망에 올린 ‘재판과 정치, 법관 독립’이란 제목의 글에서 “재판이 곧 정치라고 말해도 좋은 측면이 있다” “개개의 판사들 저마다 정치적 성향들이 있다는 진실을 존중해야 한다”고 해 법관의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진보 성향 판사 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 출신인 오 부장판사는 2020~2022년 전국 최대 법원인 서울중앙지법으로 옮겨 형사 재판부를 맡았다.

김미리 부장판사는 2020년 6월 서울중앙지법에서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건의 1심 재판장을 맡으면서 “이 사건은 검찰 개혁을 시도한 피고인에 대한 검찰의 반격이라 보는 일부 시각이 존재한다”고 발언해 공정성 논란에 휩싸였다. 김 부장판사는 서울중앙지법에 이례적으로 4년간 근무하면서 ‘문재인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사건 등 전 정부 관련 사건들을 심리했다. 김 부장판사도 진보 성향 판사 모임인 우리법연구회 출신이다.

최창석 부장판사(현 변호사)는 2020년 4월 법률신문에 ‘사법 농단’ 의혹으로 기소된 신광렬·성창호·조의연 부장판사에 대한 1심 무죄 선고를 비판하며 “향후 재판에서 정의와 국민의 법 감정에 부합하는 결론이 도출되길 희망한다”는 글을 올려 법원 안팎에서 논란을 일으켰다. 동료 법관의 판결을 법리가 아닌 정의 관점에서 비판한 것은 과했단 지적이 나왔다. 이 사건은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법조계에선 최한돈 부장판사(현 변호사)가 2020년 8월 “문재인은 공산주의자”라는 발언을 한 고영주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변호사)의 명예훼손 사건 2심 재판장을 맡아 1심 무죄 판결을 깨고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한 것도 판사의 정치 성향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사례로 본다. 대법원은 이후 이 사건을 무죄 취지로 파기 환송했다. 최창석·최한돈 판사 모두 인권법연구회 출신이다.

2019년 3월 당시 박정길 서울동부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을 받던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최순실 일파의 국정 농단으로 공공기관의 인사 및 감찰권이 적절히 행사되지 못했다”는 이유를 댔다. 김 전 장관의 책임을 이른바 ‘최순실 일파’에게 돌린 것이다. 김 전 장관은 결국 대법원에서 징역 2년이 확정됐다. 박 부장판사는 지난해부터 서울중앙지법 형사재판부에서 근무하고 있다.

법조인들은 “김명수 대법원장이 도입한 사무분담위원회 제도가 이런 상황을 뒷받침했다”고 지적했다. 사법의 민주화를 제고한다며 도입한 이 제도가 ‘정치 성향’ 판사들이 중용되는 통로로 활용됐다는 것이다. 사무분담위원회는 동료 판사들로 구성된다.

한 전직 법원장은 “과거에는 법원장이 축적된 동료·선후배의 ‘평가’에 기반해 중요 보직 판사를 결정하고 ‘문제 법관’을 걸러 냈는데 김 대법원장은 그 기능을 완전히 폐기시켰다”고 했다. 다른 중견 판사는 “과거로 완전히 회귀할 순 없겠지만, 포퓰리즘을 가장해 대법원장의 입김이 미칠 수 있는 지금의 법관 배치 시스템을 전면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오는 9월 취임할 새 대법원장이 가장 먼저 풀어야 할 숙제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법원 안팎에선 대법원이 박 판사에 대한 징계에 나서야 한다는 말도 나온다. 대법원은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인 2015년 노무현 전 대통령을 조롱하며 극우 성향 사이트에 익명으로 댓글 수천 개를 달았던 수원지법 부장판사에 대해 징계 절차를 밟으면서, 해당 판사를 다른 법원으로 전보시키기도 했다. 한 판사는 “법원의 윤리 감사 기능을 부활해 이 문제에 적극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변호사들 “재판 가면 판사가 인권법 출신인지부터 봅니다”

“하급심부터 대법까지 판사 정치 성향이 유·무죄 갈라”

입력 2023.08.16. 03:35업데이트 2023.08.16. 06:01

“그 판사 성향이 어떤가요?”

몇 년 전부터 변호사들은 의뢰인들로부터 이런 질문을 많이 받는다고 한다. 판사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재판 결과가 달라진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에 따라 담당 판사의 출신 지역과 학교 등은 물론 진보 성향 판사 모임인 우리법연구회나 국제인권법연구회 출신 여부까지 찾아본다. 최진녕 변호사는 “특히 집회 관련이나 명예훼손 사건 등은 어떤 재판부에 배당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고 믿기 때문에 판사 성향을 직접 알기 어려운 경우 법원 내 아는 사람을 통해 파악하기도 한다”고 했다.

판사 성향에 따라 재판 결과가 달라지는 경향은 하급심뿐 아니라 대법원도 마찬가지다. 김명수 대법원장 취임 이후 민변 회장 출신인 김선수 대법관을 비롯한 진보 성향 대법관들이 다수를 차지하면서 노동 사건은 어떤 형태로 회사에 불리한 판결이 나올지 모르는 ‘지뢰밭’으로 통한다고 한다. 진보 성향이 아닌 주심 대법관에게 배당되면 ‘로또 당첨’이라고 할 정도다. 한 노동 전문 변호사는 “일부 기업들은 김 대법관을 피하기 위해 그의 동생과 동생 배우자가 근무하는 대형 로펌 변호사를 일부러 선임하기도 한다”고 했다. 대법원 내부 방침상 특정 대법관의 2촌 이내 친인척이 재직 중인 로펌 변호사가 선임된 사건은 그 대법관이 맡을 수 없기 때문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명예훼손 사건에서 이례적인 중형 선고로 논란이 된 박병곤 판사도 정치 성향이 판결에 반영된 사례로 평가되고 있다.

이처럼 판사의 정치 성향이 그대로 판결에 반영되는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판사에 대한 정보를 더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미국 연방 항소법원 홈페이지에는 판사 출생지와 교육 과정, 가족 관계를 비롯해 지명 과정, 저서, 언론 보도 등이 모두 공개돼 있다. 반면 우리나라의 법조인 인명 정보에는 출생 연도와 출신 학교, 근무지 등만 나타나 있다. 대법원은 판사가 특정 학회 소속인지 여부도 공개하지 않는다. 한 판사는 “정보 공개 범위를 확대하면 판사가 최소한 평소 개인 성향을 판결에 그대로 반영하지 않도록 스스로 조심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