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이 증명한 마법의 '5분'...달아오르는 '양자컴' 패권 경쟁
[주간조선]
최근 새로운 기술 탓에 2024년 주식시장이 들썩이는 일이 있었다. 구글의 모회사인 알파벳 주식은 서학개미들에게 ‘재미없는 주식’으로 통한다. 엔비디아나 테슬라처럼 팍팍 오르거나 떨어지지 않는다. 오를 때도 찔끔, 떨어질 때도 찔끔, 그래서 마이크로소프트와 함께 변동성 없는 안전자산처럼 취급돼 왔다. 그런 알파벳의 주식이 지난 12월 10일(현지시간) 하루에 5%나 오르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원인은 그 전날 구글이 공개한 연구결과 때문이었다.
구글이 공개한 건 최신 양자칩 윌로(willow)다. 구글의 양자컴퓨팅 연구회사인 구글퀀텀AI의 하르트무트 네벤 창업자는 지난 12월 9일 최신 양자칩인 윌로가 거둔 성과를 공개했다. 윌로를 통해 현존하는 가장 빠른 슈퍼컴퓨터가 10자년이 걸리는 문제를 단 5분 만에 풀 수 있었다며 실험을 공개했다. ‘자’라는 단위, 너무나 생소한데 10의24제곱을 뜻한다. 10자년은 우주의 나이보다도 긴 시간이다. 구글은 여기에 더해 양자컴퓨터의 최대 난제인 오류 문제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었다고 밝혔다.
양자컴 샹들리에의 비밀
언제는 인공지능이 패권이라더니, 이제는 양자컴퓨팅(양자역할을 활용해 알고리즘 등을 만들어 양자컴퓨터를 만들거나 새로운 산업에 적용하는 일)도 패권이란다. 그런데 주식시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설레발만은 아니다. 일단 2025년은 유엔이 정한 ‘세계 양자 과학기술의 해’다. 양자역학 탄생 100주년을 맞아서 그렇게 됐다. 2025년 1월 7일부터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IT전시회인 ‘CES 2025’에 ‘양자컴퓨팅’ 프로그램이 처음으로 추가됐다. 게다가 요즘 대학생들은 양자를 배우기 시작한다. 한국에서도 처음으로 ‘양자’를 전문적으로 배우는 대학생이 생기는 게 2025년이다. 성균관대 양자정보공학과가 처음 학부생을 맞이한다.
2024년은 엔비디아와 같은 AI 주식에 돈이 몰렸던 해로 기억된다. 하지만 알짜 상승 주식은 양자컴퓨터 분야에 모여 있다. 2024년에도 ‘양자컴퓨팅’의 냄새가 묻은 주식들은 대부분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지난 12월 24일 기준으로 볼 때 최근 6개월 새 퀀텀컴퓨팅은 2613%, 디웨이브퀀텀은 629%, 리게티컴퓨팅은 1161%, 아이온큐는 576% 상승했다. 아직 초기인 이 산업은 표준모델도, 공급망도 딱히 없다. 비즈니스 모델도 불안정하다. 그래도 정부나 민간이 돈다발을 안고 투자한다. 서학개미들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물리법칙은 아주 작은 미시세계에서는 다르게 작동한다. 양자역학은 전자, 중성자, 쿼크라는 지극히 작은 미시세계에 적용되는 물리학이고, 양자(quantum)라는 작은 에너지 덩어리에 기초한 이론이다. 이 미시세계에서는 동전의 앞면이 뒷면일 수도 있고 불을 켰지만 끈 상태일 수도 있다. 여러 상태가 함께 존재하는, 그런 일들이 벌어진다.
이 양자 역학에서 핵심적인 게 ‘중첩’과 ‘얽힘’이다. 중첩은 동시에 여러 상태가 존재할 수 있음을 뜻한다. 동전의 앞면이기도 하고 뒷면이기도 한 그런 상태를 말한다. 얽힘은 두 개 이상 양자 사이의 상호작용을 설명한다. 얽힌 양자들은 서로 멀리 떨어져 있어도 상태가 연결돼 있다. 이 때문에 하나의 상태가 변하면 다른 하나의 상태도 거리와 상관없이 즉시 변하게 된다.
양자컴퓨터는 이런 양자역학 원리로 정보를 처리한다. 김갑진 카이스트 교수는 양자컴퓨터의 원리를 대중적으로 설명해주는 대표적인 학자다. 최근에도 ‘대성해강사이언스포럼’에 연사로 등장해 양자컴퓨터를 이해하는 법에 관해 설명하기도 했다. 그는 “양자컴퓨터도 컴퓨터라는 점에서 똑같다. 다만 다른 점은 중첩을 이용한다. 0과 1이 동시에 이용한다는 걸 써먹자는 거다”라고 설명한다.
‘중첩’과 ‘얽힘’이 만들어내는 연산력
우리가 흔히 쓰는 컴퓨터는 이진법으로 작동한다. 0과 1, 두 가지로만 구성된 ‘비트(Bit)’ 단위를 활용해 계산한다. 0-0. 0-1. 1-0. 1-1, 이 네 가지 경우를 모두 계산해보고 답을 하는 식이다. 반면 양자역학이 활용하는 중첩은 ‘0일 수도, 1일 수도 있다’는 점을 활용해 이 네 가지 경우의 수를 한꺼번에 연산한다. ‘0일 수도, 1일 수도 있는’ 이 단위가 ‘큐비트(Qubit)’다.
내비게이션의 사례를 떠올리면 이해가 쉬울 수 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최적의 길을 검색해보자. 고전 컴퓨터는 여러 갈래의 길을 보여준다. ‘추천 경로는 5시간, 최소 시간은 4시간30분, 무료도로는 7시간30분’이라는 식이다. 이걸 양자컴퓨터는 어떻게 보여줄까. 계산된 결과 중 여러 갈래의 길이 아닌 최적의 길 하나만 빠르게 보여준다.
양자컴퓨터가 슈퍼컴퓨터보다 빠르다는 건 적확한 말이 아니다. ‘특정한 상황에서 빠르다’가 옳은 표현이다. 특히 다양한 경우의 수를 고려해야 하거나 최적화가 필요한 경우, 양자컴퓨터는 강점이 있다. 내비게이션의 경우가 그렇다. 고전 컴퓨터와 달리 다른 경우의 수가 얼마나 걸리는지 양자컴퓨터는 보여주지 않는다. 가장 최적의 결과가 관측되는 순간, 그 하나로 결과를 도출해 낸다. 이는 계산이 빠르다기보다 중첩현상을 활용해 계산의 횟수를 줄여서 가능한 일이다.
현재의 슈퍼컴퓨터는 연산력이 좋은 컴퓨터를 병렬해 만든다. 예를 들어 한 대의 컴퓨터가 푸는 데 1분 걸리는 문제가 있다. 컴퓨터 1대로 1000문제를 푼다면 1000분이 걸리지만 100대를 병렬해 풀면 10분 만에 끝난다. 슈퍼컴퓨터는 이런 식으로 작동한다. 반면 양자컴퓨터는 한 대의 컴퓨터가 1000문제를 동시에 푸는 게 가능하다. 단 한 번 계산할 때 걸리는 시간이 중요하다. 이게 많이 걸린다면 슈퍼컴퓨터보다 성능이 뛰어나다고 말할 수 없다.
양자컴퓨터의 성능을 가늠하는 중요한 지표는 큐비트의 숫자다. 큐비트가 중첩돼 많아질수록 계산 가능한 정보의 수를 늘릴 수 있다. 보통 큐비트 1개가 추가되면 계산 용량을 2배 정도 늘릴 수 있다. 구글의 윌로는 105큐비트를 탑재했는데 이는 이전 세대보다 많은 큐비트 수로 양자컴퓨터 규모가 확장됐다는 것을 뜻한다. 문제는 큐비트의 안정성이다. 큐비트는 온도나 전파, 자기장과 같은 외부 환경에 매우 민감해 오류가 발생하기 쉽다. 과학계에서는 “먼지 한 톨만으로도 오류가 난다”고 표현한다. 이 때문에 큐비트의 숫자를 늘리기가 쉽지 않은데 윌로는 이 부분에서 개선책을 찾은 것으로 보인다.
현재 양자컴퓨터에 열을 올리고 있는 빅테크들은 초전도체를 이용해 큐비트를 제어하는 기술을 구현 중이다. 초전도체는 극저온 상태에서 전기 저항이 0이 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런 특성을 이용해 양자 컴퓨터의 기본 단위인 큐비트를 만들면 상태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 단 그 조건이 매우 까다롭다. 섭씨 영하 273도의 극저온 진공 상태를 구현해야 한다. 양자칩 자체는 스마트폰 속 칩보다도 작다. 하지만 양자컴퓨터 하면 떠오르는 샹들리에 같은 거대한 냉각기는 이 조건을 만드는 데 필요하다.
“AI, 전기가 문제”… 저전력 대안 될 수도
구글이 윌로를 발표하면서 상용화 가능성을 높였다는 전망이 나오자 민감하게 움직인 곳은 가상자산 시장이다. 가상자산에 적용된 기존 보안기술이 무력화될 수 있다는 점이 부각됐다. 1비트코인 가격이 윌로 발표 날 10%가량 추락했다. 강장묵 동국대 국제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양자컴퓨터가 상용화되면 기존의 보안이 다 죽으니 나 같은 전공자도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가상자산을 포함해 현존하는 암호화 시스템의 대부분은 RSA방식이다. RSA 암호는 매우 큰 수를 소인수분해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착안했다. 예를 들어 20장의 소수(素數)가 적힌 카드가 있고 이 중 두 장을 뽑아 곱하면 30을 만들어야 한다고 치자. 이 두 개의 카드가 암호라면 고전적인 컴퓨터는 20장의 카드를 하나씩 뒤집어 곱했을 때 30이 가능한 조합을 찾아야 한다. 만약 30이 아니라 수가 훨씬 크다면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연구에 따르면 129자리 숫자(RSA-129)를 소인수분해할 경우 고전 컴퓨터로는 1600여대의 컴퓨터를 연결했을 때 총 8개월가량이 걸린다. 하지만 양자컴퓨터는 앞서 말했듯 중첩을 활용한다. 이 때문에 한 장씩 뒤집는 게 아닌, 모든 카드를 동시에 뒤집을 수 있다. 암호를 훨씬 빠르게 풀고 정답을 구할 수 있다.
암호 해독이라고 하면 곧바로 떠오르는 게 군사적 활용 가능성이다. 기밀이 새어나가고 무기 시스템이 해킹되는 최악의 상황이 떠오를 수 있다. 이 때문에 지정학적 갈등을 겪고 있는 미국과 중국의 국가대항전은 양자컴퓨팅 분야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양자컴퓨팅 기술에서 가장 앞선 곳은 미국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2024년 6월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미국의 양자컴퓨팅 기술을 논문, 특허 등의 질을 따져 100점이라고 할 때 중국이 35점으로 2위였다. 3위 독일은 28.6점, 4위 일본은 24.5점이었다. 한국은 2.3점에 불과했다. 미국 정부는 2018년 도입한 ‘국가 양자 이니셔티브(NQI)’를 올해 재승인하는 작업을 추진 중이다. 정부 차원에서 양자 분야 연구·개발(R&D)에 30억달러(약 4조3776억원)를 투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중국은 세계 최대의 양자연구소를 갖고 있고 올해 독자적으로 72큐비트의 양자컴퓨터를 개발했다. 이미 2018년부터 약 1000억위안(약 20조원)을 양자컴퓨팅 기술 개발에 투입했다. 일본도 2030년 상용화를 목표로 나선 상황인데, 2023년 64큐비트의 양자컴퓨터 독자 개발을 완료했다.
글로벌 빅테크들이 수년 전부터 양자컴퓨터를 연구해 온 것은 여러 이유에서다. 기존 AI의 대안을 양자 AI에서 찾을 수 있다는 점도 크다. 양자 AI는 양자컴퓨터와 AI를 결합한다. 여기에는 양자컴퓨터의 연산력에 대한 기대도 작동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인공신경망 학습은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처리하고 복잡한 계산을 반복하는 과정이다. 양자컴퓨터는 이런 계산을 병렬적으로 수행하기 때문에 학습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시킬 수 있다.
현실적인 문제도 있다. 일단 반도체는 물리적 한계에 가까워지고 있다. 국내 반도체 업체의 한 관계자는 “성능 향상을 하려면 더 많은 반도체를 컴퓨터 안에 넣어야 하는데 반도체가 조각이라고 할 때 지금보다 더 작게 만들 수 있는 조각칼을 찾기가 어렵다. 시간이 갈수록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도체가 집적될수록 생기는 전력난도 문제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는 “AI 발전의 제약은 변압기 공급과 전력 확보다”라고 말한 바 있다. 현재 가장 강력한 성능을 가진 미국 오크리지 국립연구소의 슈퍼컴퓨터가 쓰는 전력은 미국 내 3만 가구의 전력 수요와 맞먹는다. 반면 같은 연산능력을 보일 때 양자컴퓨터는 최대 1000배 적은 에너지로도 가능하다.
구글의 신약 만들기가 가능한 이유
양자컴퓨터 상용화를 선점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산업적 이익도 매력적이다. 정교한 시뮬레이션을 반복하는 분야에서 더 큰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대표적인 게 신약 제조다. 지난 12월 6일 ‘양자컴퓨팅 QX 스케일업 밸리 육성사업 종합포럼’에 기조 발제자로 나섰던 이용호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초전도양자컴퓨터사업단장은 “10년 뒤 구글은 신약 회사로 달라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단장은 빅테크들의 영업 활동이 지금과는 다른 분야로 전환될 수 있다고 본다.
구글을 놓고 보자. 2024년 구글의 활동 중 두드러지는 건 두 가지다. 단백질 구조 예측 AI 모델인 알파폴드2를 개발한 구글 딥마인드 관계자들의 노벨화학상 수상, 그리고 양자컴퓨터 윌로의 등장이다. 이 두 가지를 합쳐보자. 단백질 구조는 약물과의 상호 작용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인데 알파폴드2는 신약 후보 물질을 발굴할 때 강력한 도구가 된다. 양자컴퓨터는 기존 컴퓨터로 해결하기 어려웠던 복잡한 분자 시뮬레이션을 가능하게 한다. 이 둘의 조합을 통해 신약 후보 물질의 효능과 안전성을 더욱 정확하게 예측하고, 새로운 작용 기전을 가진 약물을 개발할 수 있다. 성공과 실패를 반복해야 했던 신약 실험의 개발 초기 단계의 어려움도 상당히 줄어들지 모른다. ‘IT기업의 신약 개발’이라는 전환이 가능한 이유다.
신약 개발처럼 시뮬레이션을 통해 정확한 예측이 필요한 분야일수록 양자컴퓨터의 상용화는 더욱 혁신적으로 다가올 수 있다. 시장의 변동성을 예측하고, 포트폴리오를 최적화해야 하는 금융, 새로운 소재 개발을 위해 시뮬레이션을 수없이 돌려왔던 신소재 개발, 배송시간 단축과 비용 절감이 필수적인 물류 산업, 복잡한 기후 시스템을 예측해 대응 방안을 마련해야 하는 기후산업 등이 대표적이다.
국내에서도 양자에 대한 노력은 진행 중이다. 정부는 2023년 국가양자과학기술 원년을 선포하고 기술 개발 지원에 나서고 있다. 다만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이 과학기술정보통신부·미래양자융합포럼과 함께 펴낸 ‘2023 양자정보기술 백서(개정판)’에 담긴 내용을 보면 2023년 관련 예산은 고작 953억원에 그쳤다. 핵심 인력도 부족한 것으로 파악된다. 국내 양자기술 핵심인력(박사학위 소지자)은 총 403명 수준이었다. 지난 12월 23일 유상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우리는 양자 전문 인력이 경쟁국에 비해 적은 편이고, 양자 관련 생태계도 제대로 갖추지 못해 인재 유치와 육성에 더욱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양자 과학기술 정책의 최고 심의 기구인 양자전략위원회는 계엄·탄핵 정국으로 아직 첫발조차 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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