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 양

만 원짜리 한장

太兄 2024. 12. 26. 19:55

🌷 만 원짜리 한장


"면접(面接) 결과 아쉽지만, 불합격(不合格)했습니다"
33번째 불합격 문자를 보며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을 때 벨소리가 울렸다.
"이달까지 취직(就職) 못 하면 고향(故鄕)으로 내려와서 과수원 농사 짓거라!"

주름 사이로 성이 덜 찬 아버지의 음성(音聲)이 비문처럼 그려진 어둠 속에서 남은 날들을
저어갈 용기(勇氣)를 얻기 위해 편의점 앞에 멈춰 섰다.
나는 지갑 안에 홀로 잠들어있는 만 원짜리 한 장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꼬르륵거리는 배를
움켜 쥐고서 버스 정류장(停留場)에 멈춰섰을 때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할머니는
인기척에 나를 바라보며 울먹이고 있었다.

“할머니 무슨 일 있으세요? “
“울 아들 사골국 끓여주려 시장 보러 나왔는데 버스에서 졸다가 내리는 바람에 지갑을 놓고 내렸지 뭐유...“
그 말에 지갑에 고이 접어둔 만 원짜리를 꺼내어 할머니 손에 쥐어주며
“이걸로 택시 타고 가세요! 할머니, 할머니.. 사시는 동네가 어디예요? “

“천수동이유”
“그럼 할머니께서는 114번을 타고 오신 거네요”
먼저 가려는 어둠을 붙들어 놓고 난 어디론가 서둘러 휴대 전화기의 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거기가 오성 여객 맞죠?”

여차저차 사정 이야기를 들은 사무실 직원은 해당 버스 기사가 방금 유실물(遺失物)보관함에
넣고 갔다는 말에 고단함은 달빛에 걸어둔 채 할머니와 함께 그곳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하루 끝자락에 걸린 눈물을 지울 새도 없이...

“늙은 나 때문에 괜한 젊은이까지 집에 못 가게 하구...“
행복(幸福)과 격리된 한숨의 언어들로 도시가 잠든 길을 따라 도착한 버스 사무실에서,
“에구머니나…. 이를 어째!”
빈지갑만 들고 나온 걸. 그제야 기억을 한 할머니에게,

“혹 할머니 집 전화번호 기억나세요?“
“그럼 알다 마다.”
기대하는 일마저 지쳐버린 할머니가 가르쳐준 전화번호 너머로 들려오는 중년의 남자 목소리,
“저... 김복순 할머니...“로 시작된 그동안의 사정 이야기를 듣고 있던 아들은 달려오고 있었다.

“젊은이 고마워요. 어찌 사례를 해야할지...?“
“아닙니다!"
사례를 한다는 걸 한사코 마다하고 돌아온 나는 방에 들어온 달빛을 등불삼아 이력서(履歷書)에
적힐 나를 찾으려 밤새 뒤적였다. 새벽을 개고 일어난 아침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을 향해
편의점에 들러 컵라면 하나를 들고 계산대로 향하고 있었다.

“아... 참 죄송해요. 담에 살게요!"
남아있던 만 원짜리 한 장을 할머니에게 준 것이 그제야 기억이 났다. 나는 면접(面接)볼 회사에
갈 차비도 없었기에 아침이 열린 틈으로 뛰어가고 있었다.

“102번 김정민씨?”
“네... 면접번호 102번, 김정민입니다.”
“아니, 젊은이는?“
봄을 마중 나온 햇살처럼 나를 반기시는 그 분은 어제 만난 할머니의 아들이었다.
할머니께서 내게 꼭 돌려주라며 준 만 원짜리 한 장을 내 손에 쥐어주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 회사에선 자네와 같은 사람을 찾고 있었네!"
그 할머니의 아들은 그 회사(會社)의 CEO였다.
하룻밤의 어려운 친절(親切)을 베푼 결과는 합격(合格)의 영광(榮光)으로 고스란히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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