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내전' 빠졌던 이스라엘... 새벽 6시 하마스가 쳐들어왔다 [영상]
[노석조의 외설(ExTalk)]
하마스 기습 6개월 전
이스라엘 국방장관이 총리 공개 비난
총리, 격노하며 장관 경질
여야는 정치 내전 함몰
하마스 "절호의 찬스" 미소
'강군' 이스라엘도 기습에 허둥지둥
‘강한 군대’ 이스라엘이 지난해 말 일개 무장단체 하마스에 허를 찔려 대규모 인명 피해를 본 사건은 충격적이었습니다.
첨단 장비와 압도적 군사력으로 하마스를 철통 감시한다는 이스라엘이었지만 기습 공격을 눈치 채지도, 피격 직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아마추어적인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로인해 수많은 민간인이 살해되고 여성과 아이들이 인질로 붙잡혔습니다.
하마스의 기습 침공은 2023년 10월 7일에 벌어졌지만, 이스라엘은 이미 수개월 전부터 ‘전쟁 중’이었습니다.
무슨 말인고하니, 위정자들이 외세의 위협은 망각한 채 정쟁(政爭)을 벌이는 ‘정치 내전(內戰) 상태’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집권 연합 정당들과 야당 정치인들, 그리고 내각의 주요 인사들은 적의 총구가 향해오는 걸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서로를 향해 삿대질 하느라 바빴습니다. 하마스는 그 모습을 지켜보다 기습적으로 이스라엘의 급소에 비수를 꽂은 것입니다.
◇침략 부르는 ‘집안 싸움’
하마스가 10월 7일 기습하기 6개월 전 이스라엘에서는 이상한 일이 있었습니다.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3월 26일 자신이 임명한 국방부 장관 요아브 갈란트를 해임하겠다고 발표한 것입니다. 다들 “이게 뭔 일이야”라고 놀랄만큼 느닷없는 발표였습니다.
갈란트 경질은 2022년 12월 22일 갈란트가 장관에 임명된지 불과 석달여만이었습니다. 네타냐후는 임명 때만 해도 “갈란트는 해군 특수부대 ‘샤예텟13′ 출신 정치인”이라며 한껏 치켜세웠습니다. 그런 그를 100일도 안 돼 자른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심각한 내분 상태에 빠져 있었습니다. 네타냐후가 ‘사법 개혁’이란 걸 추진했는데 반발이 심했습니다. 네타냐후는 사법부가 과도한 권한을 휘둘려 행정부의 업무 효율성을 떨어뜨린다며 권력 균형을 바로 잡는 측면에서 추진한다는 명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야권은 물론 여권 일각에서도 ‘부적절하다’ ‘무리’라는 목소리가 잇따랐습니다. ‘사법 개혁’이 자칫 사법부의 독립성을 훼손할 수 있는데다 무엇보다 비리 의혹에 휩싸인 네타냐후 개인의 위기 모면용으로 비춰졌기 때문입니다.
그럴만도 한 것이 네타냐후는 그의 아내 사라 네타냐후와 함께 장기간에 걸쳐 거액의 뇌물을 받고 언론사와 유리한 보도 목적 등으로 뒷거래한 혐의를 받고 있었습니다.
이런 의혹으로 직전 총선에서 대패를 하고 총리에서도 물러났었는데, 다시 총리가 되더니 아예 자신의 사건을 재판하는 사법부를 압박하는 ‘사법 개혁’을 추진하겠다고 한 것입니다.
논란이 커지고 정치 진영이 양극화하면서 사회적 혼란도 심해졌습니다. 현직 국방부 장관인 갈란트까지 나서서 공개 비판 성명을 냈고, 이에 네타냐후가 바로 다음날인 3월 26일 갈란트를 경질한 것입니다.
현직 국방장관이 자기 임명권자를 공개 저격한 것은 전례 없는 일입니다. 군 내부에서도 총리의 사법 개혁에 대한 비판론이 커지고 갈란트 본인 역시 이에 공감했기에 군을 살린다는 심정으로 그런 결정을 했을 수 있습니다.
갈란트도 군 출신 의원으로 있다가 장관이 됐기 때문에 정치인으로서 소신 발언을 한 측면도 있습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갈란트가 경솔했다’ ‘오히려 분열을 조장하는 역효과만 낳았다’는 지적도 나왔습니다.
그렇다고 즉각 갈란트를 경질한 네타냐후의 결정도 신중한 처사라고 보긴 어려웠습니다. 잘잘못을 따지기를 떠나 이런 갈등 노출은 당시 이스라엘의 정부와 군이 얼마나 불안정한 상태였는지 보여줍니다.
군중들은 거리로 쏟아졌습니다. 시위는 들불처럼 번져갔습니다.
당황한 네타냐후는 ‘사법 개혁’을 일시 보류하겠다고 한발 물러났습니다. 갈란트 해임도 보름만인 4월 10일 철회했습니다.
◇정쟁으로 4년간 총선 5차례
문제는 사법 개혁, 그리고 네타냐후와 갈라트의 갈등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정정 불안은 이 사건 외에도 극우와 극좌 진영의 충돌, 경제 악화 등으로 계속됐습니다. 단기간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곪아있었습니다.
한국에선 거의 부각되지 않았지만 이스라엘 정치는 콩가루 집안 수준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2019년부터 2022년까지 약 4년간 총선이 5차례나 실시될 정도로 정치적 안정을 찾지 못했습니다. 2019년 4월, 2019년 9월, 2020년 3월, 2021년 3월, 2022년 11월 선거가 열렸습니다.
이스라엘은 다당제인데, 연립정부를 구성하지 못하고 정당간 충돌과 분열이 거듭돼 총선을 치렀다가도 연정(聯政)이 금방 깨져 선거를 다시 치르는 일이 반복됐습니다.
이로 인해 정부가 정책을 연속성 있게 추진하지 못했습니다. 군 등 안보 기관들도 제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산만해지는 어수선함을 겪었습니다. 당장 오늘 밤이라도 싸울 준비를 갖춘다는 ‘파이트 투나잇(Fight Tonight)’ 대비태세는 약해졌습니다.
개인 비리로 궁지에 몰린 네타냐후는 위기를 모면할 심산으로 소수 비주류 정치 세력에 거의 구걸하다시피 손을 내밀었습니다. 그 덕에 2022년 12월 총선에서 가까스로 연정을 구성하고 다시 총리가 될 수 있었습니다.
2009~2021년 장기 집권하다 2021년 6월 총리직에서 쫓겨난지 1년 반만의 복귀였습니다.
그는 연정의 우군이 되어주며 정치적 생명을 살려준 초정통파 유대교 정당인 샤스당, 토라유대주의연합 등 소수 정당의 숙원 사업을 해결해줘야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정착촌 건설입니다. 이는 반기문 등 역대 거의 모든 유엔 사무총장이 국제법 위반이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갈등을 고조시킬 수 있다며 반대한 것입니다. 샤스당은 종교인은 군 복무도 면제해달라고 대규모 시위를 주도하는 세력입니다.
이들은 국제법상 팔레스타인 자치 지역이라 할지라도 이런 것 상관없이 유대인이 살 마을, 즉 정착촌을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네타냐후는 죽어가던 자신의 정치 생명에 심폐소생술을 해준 샤스당의 이런 요구를 하나둘 들어줬고, 국내외 반발은 갈수록 거세졌습니다.
이스라엘 정국이 네타냐후 재집권 직후인 2023년초부터 유난히 요동치며 절뚝거린 데에는 이러한 배경이 있습니다. 무리수가 무리수를 낳고 또 낳았습니다.
◇이스라엘 정국 혼란은 하마스에 기회
하마스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바보 같이 있었을까요?
지척에 있는 이들은 이스라엘의 리더십과 이스라엘의 군대가 신뢰를 잃고 정상 궤도에서 벗어나는 광경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거리고, 쥐새끼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 꼬리라도 한번 깨물려 합니다.
하마스는 이를 갈며 기습 작전을 준비했습니다. 그 결과가 ‘2023년 10월 7일’이었던 것입니다.
최근 주한 미국 대사가 계엄 사태로 한국 총리, 외교부 장관, 여당 대표 등을 만나 극심한 정국 혼란에 우려를 표했다고 합니다.
“만약 북한이 도발하면 누구와 대화하면 되느냐”면서 현재 정쟁의 소용돌이에 빠진 한국군 통수권 문제를 꺼냈다고 합니다.
하마스는 이스라엘 리더십이 흔들리고 여야가 정치 내전을 벌이던 날 새벽 6시 가자 지구의 철조망을 뚫고 이스라엘로 침투하며 전쟁을 개시했습니다.
미 대사 질문에 다들 난처해했다고 합니다. 속히 명쾌하게, 주저 없이 답할 수 있는 상황이 어떤 방식으로든 조성돼야 합니다.
미국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의 명연설 한 구절을 인용하며 무거운 마음으로 글을 마칩니다.
“A house divided against itself cannot stand. (분열된 집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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