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김정은 북핵 '빅딜'은 불가능하다
북의 지금 구세주는 러시아… 식량·에너지·외화벌이까지 보장
트럼프 1기보다 절박하지 않아 더 많은 양보 받아내려 할 것
북, 제재 해제·미군 감축 요구 등 트럼프 부실 거래 막으려면
일본과 공조, 미국 조야 설득하고 해악 최소화 위한 스몰 딜 집중을
도널드 트럼프의 귀환은 한미 관계와 대한민국의 안보에 많은 도전을 예고한다. 그중에서도 우리의 국익에 반하는 미·북 간 거래를 막는 것이 가장 벅찬 도전이 될 것이다. 트럼프는 지난 7월 선거 유세 과정에서 “핵무기를 많이 가진 자와 잘 지내는 것은 좋은 일”이라며 김정은과의 재회에 관심을 보인 바 있고, 트럼프 1기에서 국무부 대북 특별 부대표로 미·북 정상회담에 관여한 알렉스 웡(Alex Wong)을 국가안보부보좌관에 발탁한 것도 심상치 않다.
김정은이 먼저 트럼프에게 손을 내밀 것 같지는 않다. 2018년 미국과의 정상회담에 절박하게 매달리던 시기에는 2017년 6차 핵실험과 화성-15 대륙간탄도탄(ICBM) 발사에 대응하여 채택된 유엔 안보리의 가혹한 대북 제재가 북한 경제를 질식으로 몰아가고 있는 절박한 상황이었으므로 미국과의 딜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북한은 이제 러시아라는 구세주를 만났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을 지원한 대가로 미국과의 협상을 통해 해결하려던 실존적 문제를 대부분 해결할 수 있게 되었고, 핵을 포기하지 않고도 기사회생할 길을 찾았다. 러시아가 앞장서서 대북 제재를 허물어 주고 있고, 식량과 에너지 지원과 함께 대규모 외화 벌이도 보장해주고 있다. 그럼에도 트럼프가 먼저 손을 내민다면 뿌리칠 이유는 없다. 북한의 입지가 강화된 만큼 미국으로부터 더 많은 양보를 받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으로서도 성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정상회담에 연연할 이유는 없으나, 우크라이나 전쟁이 종식 국면에 들어가면 트럼프의 공명심과 정치적 흥행에 대한 갈증이 김정은과의 회동으로 향할 가능성이 높다.
미·북 정상회담이 재개된다면 정부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저해하고 핵 보유를 정당화시켜 줄 딜을 막는 것을 현실적 목표로 삼아야 한다. 북한이 모든 핵을 일거에 내놓는 조건으로 북한이 원하는 것을 내주는 빅딜은 불가능하고, 몇 단계의 스몰딜을 통해 비핵화의 진전을 이룰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2019년 하노이 2차 미·북 정상회담이 스몰딜에도 실패한 것은 김정은이 동결 대상을 영변 단지로 한정하고, 영변 밖에 숨겨둔 비밀 농축 시설을 계속 가동하여 핵 전력을 증강해 나가는 조건으로 대북 제재의 해제를 요구하는 과욕을 부렸기 때문이다. 만약, 트럼프가 요구한 대로 김정은이 부분 동결 대신 비밀 핵시설까지 포함하는 전면 동결을 수용했거나 미국을 겨냥한 ICBM 몇 개만 내줄 각오를 했다면 딜은 성사될 수 있었고, 이런 딜의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있다.
이런 거래는 한국을 겨냥한 핵무기를 북한이 고스란히 지킬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우리에게는 재앙이지만 트럼프는 이를 거부하기 힘들 것이다. 미국 정부는 북한의 ICBM 폐기로 미국 본토에 대한 북한의 핵 위협이 사라지면 확장억제 공약을 실행하는 데 부담이 줄어들고, 그만큼 확장억제의 신뢰성이 높아지므로 한국의 안보에도 궁극적으로 도움이 된다는 논리로 우리 정부의 반발을 무마하려고 할 것이다.
북한으로서는 이미 100개 가까운 핵무기와 이의 제조에 필요한 핵 물질을 확보한 만큼 전면 동결을 수용하더라도 잃을 것이 별로 없고, 이미 확보한 ICBM 가운데 일부를 내놓고 실험을 중단하는 것도 대수가 아니다. 그러나 트럼프가 이에 부여하는 정치적 가치에 비례하여 북한은 제재 해제와 한미 연합훈련의 중단을 넘어 주한 미군 감축까지 요구할 수도 있다.
이러한 딜을 막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그 해악을 최소화하는 데 외교력을 집중해야 한다. 한가지 방법은 미·북 간에 시도될 스몰딜을 완전한 비핵화 목표의 틀 속에 묶어 1단계 비핵화 조치로 규정하고, 2단계 딜과 연결 고리를 만들어 두면서, 비핵화의 최종 상태를 정의해 두는 것이다. 이런 내용이 포함되어야 1단계 스몰딜이 설사 2단계 딜로 나가지 못하더라도 북한 핵의 불법성이 유지되고, 북한 내부에 변고가 발생할 경우 한미 연합군이 북한 핵무기의 폐기와 반출을 강행할 명분과 법적 근거가 강화된다. 트럼프가 한미 연합훈련과 주한 미군까지 협상 테이블에 올리는 것을 막지 못할 경우에는, 이를 북한의 비핵화 진도와 연계토록 하여 일단 시간을 벌고, 북한의 핵 사용을 거부할 군사적 역량 확충을 서두르는 길밖에 없다.
한국의 독자적 외교 역량만으로는 트럼프가 북한의 핵 보유를 용인하는 부실 거래를 막는 데 한계가 있으므로 우리와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일본과 공조하여 한일 양국이 수용할 수 있는 딜의 한계와 조건을 설정하여 공동으로 미국 조야를 설득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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