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석 헌재소장 퇴임..."사법의 정치화가 민주주의 질서 해친다"
“사법의 정치화를 경계하고, 재판의 독립을 이루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6년 간의 임기를 마치고 17일 물러난 이종석 헌법재판소장은 퇴임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퇴임사 말미엔 떨리는 목소리로 소회를 밝혔다. “앞으로도 헌법재판소가 우리 사회와 국민들을 지키는 튼튼한 버팀목이 될 것이라 굳게 믿습니다.”
이 소장은 이날 오전 서울 종로구 헌재에서 열린 퇴임식에서 “저는 1984년 사법연수원에 입소한 이래 41년 가까이 공직에 근무했다. 헌법재판소에서 근무한 지난 6년은 우리 사회가 보다 나은 미래로 나아가고 국민들께서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누리는데 작은 힘을 보탤 수 있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면서도 “(헌법재판소가) 지금까지의 긍정적인 평가에 안주해서는 안 되고 변화가 필요한 위기 상황에 홀로 힘들게 서 있는 형국에 있다”며 두 가지 당부를 남겼다.
이 소장은 우선 “최근 몇 년 사이 권한쟁의심판, 탄핵 심판과 같은 유형의 심판사건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며 “정치적 성격의 분쟁이 사법부에 많이 제기되는, 이른바 ‘정치의 사법화’ 현상이 나타나면 뒤이어 ‘사법의 정치화’가 나타날 우려가 있다는 것은 많은 정치학자와 법학자들이 지적하는 바”라고 설명했다.
이어 “저를 포함한 재판관들 모두가 이러한 우려를 잘 알고 있어서 오로지 헌법과 법률, 양심에 따라 재판하려고 노력해 왔고, 앞으로 구성될 재판부에서도 당연히 그렇게 하리라고 믿고 있다”면서도 “사법의 정치화 현상은 결국 헌법재판소 결정에 대한 불신을 초래해 헌법재판소의 권위가 추락할 것이며 법치주의와 삼권분립을 기반으로 하는 민주주의 질서를 해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헌법재판소 가족 모두 마음가짐과 의지를 굳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소장은 업무의 효율성과 신속성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금년 상반기에 다수의 미제사건이 감소하는 가시적 성과가 있었다”면서도 “사건 접수의 경향이나 성격, 관련 통계의 세심한 분류에 기초해 개선방안의 시행에 따른 성과와 장단점을 면밀하게 분석하는 작업이 내년 이후로 계속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아울러 “재판연구인력의 확충 및 적절한 배치, 연구업무의 효율성 제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예산의 확보와 인사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이날 함께 퇴임한 이영진 재판관도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는 법 격언과 함께 우리 재판소에 대해 신속한 사건처리를 요청하는 목소리가 점점 커져오고 있다”며 “후임 재판관이 선출되지 않은 상황이어서 사건의 심리와 처리는 더욱 정체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양적으로 접수사건의 수가 증가하는 것과 함께 질적으로도 보다 심도 있는 헌법적 연구와 검토가 필요한 사건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향후 신속한 사건처리를 위해서는 헌법연구관을 획기적으로 증원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생각된다”라고 말했다.
법복을 벗게 된 김기영 재판관도 “6년 동안 여러 사건을 접하면서, 사건들 그리고 선례와의 사이에 충돌하지 않으면서도 다른 점을 잘 드러내고 치열한 고민의 흔적을 담은 의견을 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며 “그동안 잘 한 일이 있다면 모두 재판소 구성원 여러분의 공이고,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제 탓”이라고 자세를 낮췄다.
세 재판관은 2018년 10월 18일 국회 선출 몫으로 취임해 이날 6년의 임기를 마쳤다. 이 소장은 재판관 임기 중이던 지난해 12월 헌재 소장으로 취임해 10개월간 헌재를 이끌었다.
헌법재판관은 대통령 임명 3명, 대법원장 지명 3명, 국회 선출 3명으로 구성되는데 이날 퇴임한 세 재판관의 후임은 국회가 선출해야 할 몫이다. 통상 여야(與野)가 1명씩 추천하고 나머지 1명은 여야 합의를 통해 선출해왔지만, 민주당이 관행을 깨고 “다수당이 재판관 2명을 추천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재판관 선출이 미뤄지고 있는 상황이다.
헌법재판관 인사청문회 등 임명 절차에 한 달 정도 소요되는 것을 고려하면, 재판관 공백 사태는 당분간 불가피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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