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알던 그 '삼성전자' 어디로 갔나
삼성전자의 3분기 영업이익이 약 9조1000억원으로, 2분기보다 13% 줄어들었다. 증권사들이 예상한 전망치 평균보다 16%나 밑돌았다. 세계 1위인 메모리 반도체 부문의 영업이익이 2분기 6조4500억원에서 3분기 5조원대로 감소한 탓이 컸다. 메모리 시장 점유율 2위인 SK하이닉스의 3분기 영업이익은 6조원을 웃돌 것으로 전망되고 있어, 처음으로 반도체 영업이익 1위가 바뀔 수도 있다. 2년 전 챗GPT 등장 이후 엔비디아가 이끄는 인공지능(AI) 반도체 생태계에서 소외되고, 고부가가치인 HBM(고대역폭 메모리) 시장을 하이닉스에 선점당한 결과다.
삼성전자는 반도체의 중심축이 범용 D램에서 고객별 맞춤형 시스템 반도체로 옮겨가는 시장 트렌드를 간과하고, HBM 투자를 소홀히 하는 전략적 실수를 범했다. SK하이닉스가 HBM 시장을 선점한 가운데 뒤늦게 개발 경쟁에 뛰어들었다. 삼성은 당초 올 3분기 중에 엔비디아 납품용 HBM3E 양산에 돌입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양산은커녕 아직 엔비디아의 품질 테스트조차 통과하지 못했다.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도 삼성전자는 5년 전 171조원을 투자해 2030년에는 1위로 올라서겠다는 비전을 발표했지만 빈말에 그치고 있다. 2019년엔 대만 TSMC와의 시장 점유율 격차가 50% 대 20% 수준이었지만 올해는 62% 대 12%로 더 벌어졌다.
글로벌 투자 은행들이 삼성전자의 미래에 대해 어두운 보고서를 내고 외국인 투자자들이 삼성전자 주식을 9조원 이상 투매한 것을 두고 과도하다는 비판이 있었다. 하지만 3분기 실적은 비관론에 일리가 있었음을 보여줬다. 삼성전자의 반도체 부문 사장이 “근원적인 기술 경쟁력과 회사의 앞날에 대해서까지 걱정을 끼쳐 송구하다”면서 사과문까지 발표했다. ‘초격차’를 자랑하던 기업이 ‘경쟁력 저하’를 자인하며 투자자와 고객들에게 사과하는 지경이 됐다. 낯선 풍경이어서 우리가 알던 그 삼성전자가 어디로 갔느냐는 생각이 든다.
삼성전자의 고전을 보면서 시대의 흐름을 꿰뚫는 전략적 판단 능력, 경쟁자들을 압도하던 속도, 최고와 1등이 되지 못하면 큰일이라고 여겼던 정신이 과거의 일로만 느껴진다. 삼성전자는 1994년 세계 최초 256M D램을 개발한 이후 신제품을 낼 때마다 ‘세계 최초’ 기록을 양산해왔지만 2020년부터 경쟁 기업에 최초 기록을 빼앗기고 있다. 혁신 능력을 상실한 것이다. 최고 경영진들의 실책이 크겠지만 어느 사이 기업 문화 자체가 ‘삼무원(삼성+공무원)’이란 말이 나올 만큼 나태해졌다. 경영자가 ‘열심히 하자’고 독려하면 ‘네, 열심히 하세요’라고 비아냥거리는 글이 곧바로 뜬다고 한다. 국내 최고 대우를 받는 직원들이 최근 돈 더 달라며 파업까지 했다.
삼성전자가 해이해진 것은 이재용 회장이 8년이나 사법 리스크에 시달린 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문제들도 적지 않다. 대만 TSMC가 최고의 반도체 전문가들로 이사회를 구성했는데, 삼성전자는 관료·금융인·교수 등 기술 문외한들이 사외이사로 포진해 있는 점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이들이 어떻게 경영진에게 비상벨을 울리고 혁신적 의사 결정을 하겠나. 삼성전자가 ‘초격차’ 경쟁력을 회복하려면 ‘기술만이 살길’이라는 명백한 진리에 충실하게 의사 결정 시스템과 경영 체제를 바꿀 필요가 있다.
특급 기술 인재들을 확보하는 데 사활을 걸어야 하고, 이 회장을 비롯한 최고 경영진들은 수비 위주의 소극적 자세를 버려야 한다. 불량품을 모조리 불태워버렸던 ‘애니콜 화형식’ 같은 정신을 되찾지 않으면 삼성전자의 부활은 어렵다. 삼성전자의 미래는 한국 경제의 미래와 직결돼 있기 때문에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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