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매스터 "文, 김정은 말만 믿고 美에 왜곡된 정보 전달"
前 안보보좌관 맥매스터 인터뷰
"6·25 이후 모든 공격은 北 소행
핵은 방어용? 文발언 말 안돼"
“김정은이 (공격이 아닌) 방어를 위해 핵을 보유할 수밖에 없었다는 문재인 전 대통령의 발언은 말이 안 됩니다. 6·25 전쟁 이후 한반도에서 일어난 모든 공격은 북한에서 시작됐습니다. 저는 문 대통령이 김정은의 주장을 믿어주기로 했고, 따라서 왜곡된 정보를 미국에 전달했다고 봅니다.”
허버트 R 맥매스터(62) 전 국가안보보좌관은 4일 본지 화상 인터뷰에서 상기된 표정으로 이같이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두 번째 안보보좌관을 지낸(2017년 2월~2018년 3월) 3성 장군 출신의 맥매스터가 지난달 27일 출간한 회고록 ‘우리 자신과의 전쟁: 트럼프 백악관에서의 나의 임무 수행’은 한국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는 책에서 트럼프 집권 5개월 뒤인 2017년 6월 첫 한·미 정상회담을 위해 방미한 문 대통령이 “(북한 김정은은) 방어를 위해 핵이 필요하다고 믿고 있을 뿐”이라고 해 마이크 펜스 당시 부통령과 언쟁을 벌였다고 폭로했다. 한·미 안보 당국이 북학의 도발 대응 및 비핵화 방향을 두고 지속적으로 이견(異見)을 보였다고도 했다.
맥매스터는 본지에 “문 정부는 북한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북한에 전하고, (동시에) 트럼프와 미 행정부가 듣고 싶어하는 말을 우리에게 전하면서 중매자(matchmaker) 역할을 하려 했다”며 “그러나 결론적으로 (김정은이 핵을 포기할 수 있다는) 그가 전달한 메시지는 지나친 낙관에 기반한 왜곡에 가까웠다”고 했다.
맥매스터는 안보보좌관 시절 북한에 대한 제재 등 압박을 강화해 비핵화 목표를 달성한다는 ‘대북 최대 압박(maximum pressure)’ 정책을 입안해 트럼프를 설득시킨 인물이다. 그는 러시아 등 미국의 적성 국가에 대한 대응 문제를 두고 트럼프에게 직언하다가 2018년 3월 경질됐다. 이후 강경파 존 볼턴이 후임에 임명됐다. 맥매스터는 11월 미 대통령 선거에서 트럼프가 재선될 경우 한반도에 미칠 영향을 묻자 얼굴이 굳어졌다. 그는 “트럼프가 재선될 경우 김정은과 다시 정상회담을 하려고 할 것이다. 나는 그가 또 한 차례 회담을 통해 달성하려는 목표가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이길 바란다”고 했다.
육군 중장 출신의 맥매스터는 뛰어난 전쟁 지략가(war thinker)로 평가받는다. 트럼프와 김정은이 임기 초기 ‘화염과 분노’ ‘핵 버튼’ 등 설전을 주고받을 당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내 균형추 역할을 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본지에 “북한과의 협상을 위한 한미 연합훈련 축소는 트럼프의 크나큰 실수”였다면서도 “트럼프가 항상 무모한 결정을 내렸다고는 보지 않는다. 그의 파괴적인 성격이 (북한이 한 치 앞을 예상할 수 없도록) 대북 압박 전략을 실행하는 데 어느 정도 도움도 됐다”고 했다. 회고록에 따르면 트럼프는 집권 초기 참모들에게 강력한 대북 압박을 주문했지만, 이후 기조를 바꿔 김정은과 대화를 추진했다.
-트럼프 대북 정책의 방향이 전환된 이유는 무엇인가.
“트럼프 스스로가 생각을 바꿨다. 그만큼 트럼프는 기존 정책을 파괴하는 성향(disruptive)이 강한 사람이다. ‘전략적 인내’를 원칙으로 한 전임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 정책이 (북한 핵 억제에) 효과가 없다는 게 분명해졌던 만큼 취임 초기엔 (인내하지 않는 트럼프의 성격이)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실제 대북 압박에 도움이 됐다. 문제는 자신의 협상 능력에 대한, 트럼프의 과도한 자신감이었다. 트럼프는 김정은과 (섣부른) 정상회담을 갖고 유화적인 말을 내뱉음으로써 대북 압박이 완화되고 대북 제재 이행이 저해될 수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했다.”
-트럼프가 재선하면 김정은과 다시 만나려 할까.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달성하려고 하는 목표가 CVID이길 바란다. 전 세계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간절히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임기 초기 트럼프에게 대북 관계에 대한 세 가지 원칙을 보고했다. 북한과 성급하게 대화 테이블에 앉지 말고, 외교와 군사적 옵션을 별개의 방안으로 분리해서 고려하지 말고, 단순히 대화 테이블에 나왔다는 이유로 성급하게 북한에 대한 제재를 해제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트럼프는 이를 받아들였고 한동안 지켰다고 생각한다. 이 원칙은 지금도 유효하다. 혹시 ‘2기’가 온다면 그가 이 원칙을 지키길 나는 바란다.”
-김정은도 트럼프의 재집권을 기다리고 있지 않겠나.
“동의한다. 김정은이 그에게 바라는 건 ‘약한 합의(weak agreement)’다. 장거리 미사일 일부는 포기하더라도 기존 핵무기와 (대남용) 단거리 미사일은 계속 보유하려고 버틸 가능성이 크다. 그런 다음 트럼프가 해외에 미군을 주둔시키는 데 대해 회의적이라는 점을 이용해 미군을 한반도에서 철수시키려고 노력할 것이다. 이런 모든 김정은의 노력은 결국은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트럼프가 재집권하면 김정은에게 (첫 임기 때처럼) 다시 속아 넘어가지는 않으리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김정은은 계속해서 이런 목표를 밀고 나갈 것이다. 그가 최근 ‘반(反)통일’ 선언을 하고 미사일 도발 수위를 높이는 이유도 결국은 트럼프와의 ‘회담 무대’를 마련하기 위한 초석일 수 있다.”
-회고록엔 문재인 전 대통령이 펜스 부통령에게 ‘김정은은 방어를 위해 핵이 필요하다고 믿는다’고 말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문 전 대통령의 발언은 어떻게 평가하나.
“1950년 6월(6·25 전쟁) 이후 한반도에서 일어난 무력 도발의 역사를 보라. 전부 북한이 일으켰다. 북한은 (핵뿐만 아니라) 서울을 사정권에 두고 있는 재래식 무기 체계를 보유하고 있다. 북한이 방어만을 목적으로 핵을 갖고 있다는 (문 대통령) 발언은 말이 안 된다. 당시 우리끼리는 문재인 정권에 대해 ‘(김대중 정부의) 햇볕 정책이 돌아온 것 같다’고 농담을 할 정도였다. 문 전 대통령의 이런 믿음은 미국의 트럼프, 그리고 당시 일본 총리였던 아베 신조와 매우 달랐기 때문에 난감했다. 우리(미국·한국·일본) 사이에 분열이 생기면 그로 인해 이득을 보는 것은 북한과 중국뿐이기 때문이다.”
-문 전 대통령은 왜 그렇게 평가했을까.
“문 정부는 미·북 사이에서 중매인 역할을 하고자 했다. 김정은에겐 ‘트럼프가 당신과 정상회담을 하고 싶어 한다’고 했고, 트럼프에겐 ‘김정은이 정말 당신과 정상회담을 통해 (비핵화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 한다’고 했을 것이다. 양측이 듣고 싶어 하는 얘기를 한 셈이다. 중매인을 자처하는 문 대통령의 동기는 좋았다. 일종의 (외교적) 돌파구를 찾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그는 (북한의 의도에 대해) 지나치게 낙관적이었다. 문 대통령의 이런 태도는 김정은 정권으로 하여금 한때 집권했던, 친북·반미 기조의 극좌(far-left) 정부가 다시 들어설지 모른다는 희망을 갖게 만들었다. 친북·반미 극좌파는 한국의 소수이지만, 김정은은 이들을 보고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
트럼프는 임기 중 김정은과 세 차례 회담을 했다. 2018년 6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첫 회담이 끝난 후 트럼프는 한미 연합훈련을 일방적으로 취소하는 등 김정은에게 다소 호의적인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김정은에 대한 트럼프의 불신이 커졌고, 결국 북미 정상회담은 어떤 성과로도 이어지지 못했다.
-한·미 연합훈련 취소는 김정은에게 어떤 신호를 줬을까.
“너무나 큰 실수였다. 내가 만약 그때도 안보보좌관이었다면 트럼프를 뜯어말렸을 것이다. 김정은은 한미 연합훈련이 도발적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훈련은 전혀 도발적이지 않다. 배를 침몰시키고, 항공기를 격추하고, 게릴라 기습을 하고, 청와대(대통령실)를 공격한 적국(敵國·북한)을 방어할 준비가 돼 있는지 확인하는 훈련일 뿐이다.”
-트럼프 2기가 오면 당신처럼 트럼프의 충동적 행동을 막으려는 관료를 배제하리라는 전망도 있는데.
“나는 트럼프가 무모한 결정만 내렸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도 참모들의 보고에 입각해 결정을 내렸다고 본다. 2기 트럼프 행정부가 온다면 그를 잘 보좌할 인물들이 입각하고 외교 정책에 대해 일부 강력한 목소리가 나올 것이라고 전망한다. 마이크 폼페이오 전 국무장관이 다시 발탁된다면 중심을 잘 잡을 수 있을 것이고, 트럼프 행정부에서 일본 주재 대사를 지냈던 빌 해거티 상원의원은 북한의 위협에 대해 잘 아는 인사다. (입각 가능성이 있는) 톰 코튼, 댄 설리번 상원의원 등도 북한의 위협에 대해 강경 목소리를 냈던 사람이다. 공화당 내에도 트럼프의 신뢰를 받는 동시에 김정은 정권에 대해 환상을 갖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맥매스터는 책에서 북핵 위협 때문에 “한·일이 미국의 ‘핵우산’에 대해 불신을 갖고 독자 핵무장을 추구할 수 있다”며 우려했었다. 실제로 한국 국민들 사이에서 ‘독자 핵무장’ 여론이 커지고 있는 데 대해 그는 “북핵 문제가 더욱 심각해진 건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한국의 핵무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한국이 핵무장까지 하지 않고도, (미국이) 한국을 안심시킬 방법이 있다고 생각한다. 우선 북한이 핵무기를 사용한다면 자살 행위라는 걸 분명히 북한에 알리고 한·미·일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처럼 미국의 핵을 (나토 동맹국들이) 공유하거나, 한반도에 장거리 미사일(핵미사일)을 재배치하는 방법 등도 고려할 수 있다. 우선 해야 할 일은 북한에 대한 억지력을 확보하는 것이다.”
-트럼프가 재집권할 경우 한국엔 어떤 영향이 있을까.
“트럼프가 중요하게 여기는 두 단어가 있다. ‘호혜성(reciprocity)’과 ‘비용 분담(burden sharing)’이다. 트럼프는 때때로 일관성이 없지만 이 두 가지에 대해선 한결같은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한국이 해야 할 일은 한국 기업과 정부가 지금까지 해온 대미 투자 규모가 얼마나 거대한지, 한미 간 경제 관계가 얼마나 긴밀한지, 지정학적으로 한미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설득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한미 관계가 서로에게 이득이 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트럼프가 이를 이미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허버트 R 맥매스터
1962년생. 도널드 트럼프 1기 행정부 초기인 2017~ 2018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냈다. 퇴역 미 육군 중장으로 타임지가 “21세기 미 육군의 학구 전사”라고 평가했다. 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노스캐롤라이나대 채플힐에서 베트남전 연구 등으로 군사역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박사 논문을 기반으로 쓴 책 ‘직무유기’는 베트남전의 실패 원인을 분석한 역작으로 미군의 필독서로 꼽힌다. 걸프전·이라크전·아프가니스탄전에 참전했다. 트럼프와 대북, 대러 문제 등으로 갈등을 빚다가 경질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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