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균 칼럼] "한동훈 때문에 총선 졌다" 변명이 심판받았다
명품 백·대사 임명·의정 갈등
대통령 부부 책임 다 아는데 용산만 '韓 책임론'에 집착
재보선, 총선 이어 전대까지 남 탓 타령 반복하다 혼쭐
민심 회초리에 고개 숙여야
지난 총선 때 여당 선거 사령탑은 한동훈 비대위원장이었다. 그 선거에서 탄핵 저지선을 간신히 넘기는 참패를 했으니 패장으로서 책임을 면할 수 없다. 그래 놓고 석 달 만에 여당 대표가 되겠다고 나선 것은 대선 패배 직후 야당 전당대회에 나선 이재명 대표만큼이나 명분이 없었다.
자신이 직접 선수로 나선 한동훈 후보의 퍼포먼스 역시 박수받기는 어려웠다. 기대에 못 미쳤다는 게 솔직한 평가다. 선두 주자를 끌어내리려는 경쟁자들의 네거티브 공세에 같은 수준의 말싸움으로 일일이 맞섰다. 내 답안지에서 1점도 깎이지 않겠다는 앞뒤 꽉 막힌 범생이의 조급증을 보는 듯했다. 특히 선거전 막판 나경원 후보와 주고받은 공소 취소 공방은 큰 정치인에게 요구되는 공감 능력과 포용력에 대한 의문 부호를 남겼다. 한 후보의 명석함에 매료됐던 사람들도 “성품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며 찜찜해했다. 그럼에도 여당 대표 선출은 한 후보의 압도적인 과반 득표로 싱겁게 마무리됐다. 여당 지지층은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국민의힘 당권 주자 라디오 토론에서 “총선 때로 돌아간다면 어떤 순간을 바꾸고 싶은가”라는 질문이 나왔다. 자신이 생각하는 총선 패배 핵심 원인을 말해 달라는 주문이었다. 한동훈 후보는 “이종섭 호주대사의 출국”, 원희룡 후보는 “영부인이 사과 못한 것”, 나경원 후보는 “일방적 의사 증원”, 윤상현 후보는 “대통령의 의정 갈등 국민 담화”를 각각 꼽았다. 여당 패배를 부른 3종 종합세트로 지목됐던 김건희 여사의 명품 백 의혹, 이종섭 호주대사 임명, 의대 정원 2000명 대통령 담화와 정확히 일치했다. 당권 주자들의 전문가적 분석도 일반 국민 상식에서 벗어나지 않았다는 뜻이다.
용산 대통령실의 생각은 달랐다. 여당 패색이 짙어진 순간부터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선거를 망쳤다”고 했다. 윤석열 정부의 정책 이슈로 승부했어야 했는데 운동권 심판론이라는 정쟁으로 몰고 간 것이 실착이라고 했다. 총선 백서 설문조사에 “이재명·조국 심판론이 옳았나”라는 조항을 넣으려 했던 것도 총선 패배 책임을 한 위원장에게 돌리려는 친윤 진영 의도로 해석됐다.
지난 대선 경선 때 선두를 다투면서 티격태격했던 윤석열 대통령과 홍준표 대구시장은 총선 직후부터 살가운 사이로 변했다. 홍 시장이 “총선 패배는 한동훈 탓”이라고 공개적으로 비난한 것이 두 사람을 한데 묶어준 촉매 역할을 했다.
전당대회 초반을 달군 김건희 여사의 문자 파동 역시 “한동훈 때문에 총선 졌다”는 메시지에 초점이 맞춰졌다. “김 여사가 사과하겠다는 뜻을 거듭 전달했는데도 한 위원장이 묵살했다”, “총선 최대 악재였던 명품 백 의혹을 해소할 기회를 스스로 걷어찼다”는 공격이었다. 한 위원장이 자신을 아끼고 키워준 윤 대통령과 형수에게 무례했다는 이미지 타격도 덤으로 노렸을 것이다. 이 무렵 만났던 용산 쪽 인사는 “한 후보가 치명상을 입었다”, “한동훈 대세론은 무너졌다”고 고무된 표정이었다.
결과는 딴판이었다. 여론조사에서 한 후보 독주 태세가 더 공고해졌다. 당시 인터넷 댓글만 봐도 이런 여론 흐름을 짐작할 수 있었다. “김건희 사과에 왜 한동훈 허락이 필요하냐”는 반응이 대다수였다. 대통령 부부가 사과를 거부해 놓고 한 후보에게 책임을 뒤집어씌운다고 국민은 행간을 읽고 있었다.
국회의원 3선과 제주지사 재선을 거친 차기 대선 주자, 원내대표를 지낸 서울 지역 5선 의원, 인천에서 내리 5선에 성공한 의원 등 당내 중진 3명이 얻은 득표 합계가 초보 정치인의 절반 수준이었다. ‘총선 패배는 한동훈 탓’이라는 용산 프레임 속에 갇혀 졸전을 벌인 결과다.
성난 민심은 권력을 심판한다. 회초리를 맞은 권력이 고개를 숙이면 국민의 분노는 서서히 누그러진다. 반대로 심판받은 권력이 남 탓을 하면서 책임 회피를 하면 더 매서운 채찍질을 부르는 법이다.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경고를 받고도 정신을 못 차린 결과가 4월 총선 참패였다. 그 총선 민심을 한동훈 탓으로 돌리려는 변명과 핑계가 이번 전당대회 승부를 갈랐다. 대통령실 주문대로 집권당 대표가 선출되면 지난 2년여 국민을 화나게 만든 국정 운영이 그대로 되풀이될 것이라고 걱정한 지지층이 한 대표에게 몰표를 던졌다. 권력의 오만과 잔꾀는 결코 국민의 선택을 받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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