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운 따르라"는 영월 쌀가게 대운상회...'오성이네'에서 '장관님 댁'으로
20여년 전 없어졌지만 시장 상인들은 아직도 기억
부모 높은 교육열... 산골마을→읍내 이사→서울 유학
“탤런트 오성이네?”
유상임 서울대 교수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다음 날인 19일 오후 강원 영월군 영월중앙시장의 한 분식 가게에서 주인에게 ‘대운상회’를 아느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옆 테이블에 있던 이가 말을 거들었다. “의원님 부모가 하시던 그 쌀가게 말하는 거 아니여.” 손님으로 와 막걸리를 들이켜던 노인도 말을 보탰다. “TV도 안 봤어? 인젠 장관님 댁이지.” 이미 20여년전 시장에서 사라진 쌀가게였지만 아직도 기억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대운상회’는 유 교수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됐다는 전해진 뒤 주목을 받았다. 먼저 유 후보자의 가계(家系)에 이목이 쏠렸는데 국민의힘 유상범 의원과 배우 유오성씨가 그의 동생이라는 사실이 재조명됐기 때문이다. 한 집안에서 서울 법대·검찰 출신 재선 의원, 정상급 배우에 이어 서울대 교수 출신 장관 후보자가 나왔다는 것이다. 여기에 이들 형제를 키운 부모가 쌀가게 대운상회로 돈을 벌어 공부시켰다는 점도 주목을 받았다. 한학(漢學)을 배운 아버지, 자식들을 서울로 ‘유학’을 보낸 어머니가 운영하던 쌀가게 ‘대운상회’ 이야기를 듣기 위해 직접 영월을 찾았다.
“제가 태어난 곳은 아주 깊은 산골 집성촌(集姓村)입니다. 어머니가 그곳으로 시집와 5남매를 낳고 농사지으며 사시다가, 계속 거기서 자식 키우면 좋은 교육을 못 시킬 것 같은 거예요. 처음엔 영월 읍내로 이사를 갔어요. 거기서 둘째 형을 중2 때 서울로 전학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형이 서울대를 들어간 거죠. 그때 어머니가 나머지 아이들도 다 서울로 보내야겠다고 생각하신 겁니다.”(유상범 의원, 월간조선 )
지금은 영월중앙시장에서 사라진 대운상회는 유 후보자 선친인 고(故) 유영호씨와 그의 아내 김옥선씨가 운영한 쌀가게다. 유영호씨 부부는 슬하에 4남 1녀를 뒀다. 장남, 유 후보자, 유 의원, 유오성씨까지 줄줄이 아들을 보고 막내로 딸을 낳았다. 부부는 처음에는 영월 남면에서 밭농사를 지었는데, 1960년대 중반 읍내로 나와 쌀가게를 꾸렸다. ‘큰[大] 운(運)’이 따르라는 뜻에서 가게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영월 곳곳을 돌며 쌀과 잡곡을 사고 모아 인근 충북 제천과 충주로 싣고 나르는 것이 부부의 일이었다. 당시 지역 상권 중심지였던 중앙시장에 터를 잡았다. 방 두 칸, 부엌까지 딸린 20평 남짓 가게에 친모를 모시고 식구 여덟이 한 데 살았다.
대성방앗간을 운영하는 박점수(73)씨는 유씨를 ‘글 잘 쓰는 점잖은 형님’으로 기억했다. 그는 “옛날에는 글 좀 배우는 어른들이 드물었다. 그런데 유씨는 글이 좋으셨다”며 “아버지가 머리가 좋아서 (자식들도) 공부를 잘했던 것 같다”고 했다. 유씨는 밭일을 업으로 삼던 시절에도 한학(漢學)을 공부했다고 한다. 그런 품성과 공부 머리를 자녀들이 대물림한 것이라고 박씨는 말했다.
풍채가 컸던 김옥선씨는 교육열이 높았다. 읍내에서 쌀가게를 열게 된 계기도 더 나은 곳에서 자식 교육을 시키려는 마음에서였다고 한다. 자식들이 바쁜 부모 일을 도울라치면 성을 내며 ‘공부나 해라’라며 꾸짖는 모습을 기억한다는 이들도 있었다. 대운상회가 있던 곳 바로 건너 편에서 쌀장사를 했다는 상인 오양선(77)씨는 이런 말을 했다. “엄마가 욕심이 많았어. 장사부터 해서 애들 교육까지.” 대운상회가 가정집과 가게가 한 데 꾸려진 곳이어서 자녀들이 따로 공부할 만한 방이 없었는데, 김씨가 다락방을 만들어 자녀들을 공부하게 했다고도 한다.
일찍이 자식들의 공부 머리를 눈여겨 본 김옥선씨는 쌀장사로 어느 정도 밑천을 마련하자 둘째 아들부터는 서울에서 공부시키기로 마음먹었다. 남면에서 읍내로, 읍내에서 서울로의 두 번째 유학이었다.
종로구 효자동에 방 한 칸을 얻어 친할머니와 둘째(유상임)가 지냈다. 일대가 청와대 분수대 부지에 포함되면서 송파구(당시 강동구) 풍납동으로 거처를 옮겼다. 지하 1층, 지상 1층 규모 단독주택을 지어 살았다. 셋째(유상범)와 넷째(유오성), 막내딸도 영월에서 초등학교를 마친 뒤 차례차례 풍납동으로 갔다.
유 의원은 과거 월간조선 인터뷰에서 ‘서울 유학’ 시절에 대해 “친할머니께서 돌봐주셨다. 어머니도 매주 밤 기차 타고 올라와 먹을 것과 생활비를 챙겨주셨다. 다음 날 다시 밤 기차 타고 내려가시고 하는 생활을 막내가 클 동안 반복하셨다”라고 했다. 자식들을 서울로 보내 공부시킬 동안, 부부는 영월중앙시장에서 매일 같이 쌀과 잡곡을 사고팔았다. 새벽 다섯 시에 대운상회로 출근했다. 대운상회 문은 밤 아홉 시가 넘어서야 닫혔다.
맏아들은 영월에 남았다. 미처 가세가 펴지 않았을 때라 꿈을 접고 부모 일을 거들었다. 유씨 5남매와 오랜 시간 가까이 지내오고 있는 고주서(69)씨는 “맏형으로서 네 동생들을 위한 거름이 돼 준 것”이라고 했다. 맏이는 군(軍) 제대 후 결혼해 풍납동 집에서 동생들과 살았다. 아내와 함께 동생들 밥을 지어 먹이며 뒷바라지를 했다.
부모와 맏형, 형수의 희생은 값을 했다. 유 후보자는 서울대 무기재료공학과에 들어가 연구원 등을 거쳐 서울대 교수가 됐다. 유 의원은 서울대 법대에 들어가 사법시험에 합격, 검사로 임용됐다. 유오성씨는 곽경택 감독이 연출한 영화 ‘친구(2001)’ 주연으로 정상급 배우로 부상했다. 대운상회 자식들의 낭보가 전해지는 날엔 시장에선 잔치가 열렸다.
1992년 유상범 의원 표현대로 ‘손자들을 잘 돌보시는 것에 모든 걸 다 바친’ 친할머니가 작고했다. 1995년엔 대운상회를 집안 사람에게 넘겼다. 이듬해 67세 나이로 유영호씨가 별세했다. 2008년엔 중앙시장 일대가 47년 만에 헐렸다. 2016년 김옥선씨가 89세 나이로 고인이 됐다. 2017년 헐린 부지에 136세대 임대아파트와 주차장, 2층 상가 건물이 들어섰다. 대운상회가 있던 자리에는 이곳이 새로운 중앙시장임을 알리는 안내판이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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