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간 동포 234명 정착...'지역소멸 위기' 제천, 고려인 이주 프로젝트
지난달 31일, 충북 제천 대원대에선 고려인 이주민을 대상으로 한 한국어 수업이 진행 중이었다. 10~40대 고려인 7명이 한국어 강사 김봄비(33)씨에게 “금방은 무슨 뜻이냐” “‘붙이다’의 과거형은 ‘붙였다’인데, ‘바르다’는 왜 ‘발랐다’가 되느냐” 같은 질문을 쏟아냈다. 이날 수업은 법무부가 마련한 ‘사회 통합 프로그램’ 일환이었다. 이주 외국인이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배워 한국 사회 구성원으로 갖춰야 할 기초 소양을 갖추게 하려는 목적이다.
저출생과 인구 감소로 ‘지역 소멸 위기’에 직면한 제천시가 고려인 동포 이주 사업으로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최근 제천시 인구는 10년간 유지해온 13만명대가 붕괴될 위기에 놓인 상태다. 제천시는 지난해 10월부터 고려인 이주를 개시, 현재까지 47가구 111명이 이주해 취업 등 정착을 완료했다. 48가구 123명도 제천시 지원을 받아 취업을 알선 중이다. 제천시는 이들에게 최장 4개월간 머무를 수 있는 단기 체류 시설도 제공한다.
러시아 크라스노다르 출신의 고려인 3세 코치트코바 옐레나(37)씨는 “어릴 때부터 조상들의 고향인 한국에 대한 동경을 가지고 있었고, 한국에서 일하는 게 꿈”이었다며 “제천에 일자리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작년 12월 남편과 네 살 딸과 함께 제천으로 이주했다”고 했다. 코치트코바씨는 제천에 있는 세제 공장에서 일하고, 남편은 차량 수리 일을 한다.
우즈베키스탄 출신 김 마리아(46)씨는 남편과 13세 아들과 함께 지난해 11월 제천에 정착했다. 그는 “한국에서 아들을 한국어로 교육시키는 게 오랜 시간 꿈이었다”고 했다. 김씨는 제천 인근 공장에서 옻나무 제품을 만들고, 남편은 식품 공장에서 일한다.
제천시 재외동포지원센터에서 통역사로 일하는 김 야나(48)씨는 러시아 사할린 유즈노사할린스크 출신이다. 그는 “조부모 세대가 언제나 나에게 네 고향은 한국이라는 걸 잊지 말라고 입버릇처럼 당부했다”며 “모국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어 너무 기쁘고 감격스럽다”고 했다.
현재까지 제천시 내 29곳 기업에 상당수 고려인이 취업했다고 한다. 시 관계자는 “고려인들은 한국을 ‘고향’으로 생각하며 지역에 융화되려는 모습을 보이고, 한국인이 꺼리는 현장에 취업해 구인난이 해소되고 있다”고 했다. 고려인들이 지역 경제에 활력을 불러일으키자 인근 충북 단양 등에서도 ‘고려인을 공장에 고용하고 싶다’는 요청이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제천시는 관내 리조트나 도서관 등에도 고려인 채용을 알선하고 있다.
제천에 정착한 고려인들은 최소 2년간 제천에 살아야 한다. 이들은 법무부로부터 ‘지역 특화형’ 비자를 받았다. 인구 감소 지역 이주민에게 발급해주는 이 비자는 기본 1년간 체류 가능하고 이후 특별한 법적 문제 등을 일으키지 않으면 3년마다 갱신된다. 4년 이상 거주하면 대한민국 영주권 취득 자격이 부여된다. 사회 통합 프로그램 3단계 이상 이수와 소득 요건 등을 충족시키면 영주권을 얻을 수 있다.
제천시는 향후 대한고려인협회 등을 통해 이주 사업을 지원, 3년간 고려인 1000명을 받아들여 정착시키는 것이 목표다. 근로 능력이 있는 성인뿐 아니라 어린이와 청년들도 가족 이민 형태로 정착시킨다. 현재까지 이주한 234명 중 20세 미만도 56명이나 된다. 시 관계자는 “가족 단위로 이주하면 이주 안정성이 높을 뿐 아니라 향후 국내 출생률 증가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인구 감소 지역을 대상으로 한 법무부의 지역 특화형 비자 사업엔 2022년부터 제천시 등 67곳 지자체가 참여 중이다. 현재까지 1500여명이 이주가 완료됐고 올해는 3300명가량을 더 정착시킨다는 계획이다.
지자체들은 주로 중국(조선족)·동남아 등에서 이민을 받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제천시는 ‘한민족 정체성’이 조선족보다 강하다고 평가받는 고려인의 국내 융화 가능성에 주목했다. 제천 시민들도 “고려인들이 친절하고 근면 성실하다” “일부는 독립 운동가 후손 아니냐”며 이주 정책에 호의적이라고 한다.
☞고려인
구 소련 붕괴 후 러시아·중앙아시아 지역에서 사는 50만명가량 한민족 동포를 이르는 명칭. 19세기부터 러시아 연해주로 이주한 조선인이 기원이다. 연해주는 독립운동 거점이 되기도 했다. 1937년 소련 내 조선인 결집을 경계한 스탈린이 명령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당했다. 이 과정에서 많은 희생이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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