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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위스키 탄생 100년, 500년 역사 종주국을 위협하다

太兄 2024. 6. 2. 15:05

日 위스키 탄생 100년, 500년 역사 종주국을 위협하다

[WEEKLY BIZ] [Cover Story] 전성기 누리는 일본 위스키 대해부

입력 2024.05.30. 18:37업데이트 2024.06.02. 0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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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욕의 인기 야키토리(일본식 닭구이) 식당 ‘코노’의 숨겨진 뒷문을 지나면 예약한 손님만 입장이 허락되는 9.3㎡(약 3평) 크기의 비밀스러운 위스키 바가 나온다. 2~4명 규모의 소그룹 예약자에게 파는 술은 일본산(産) 위스키. 블룸버그에 따르면, 이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바에 앉아 야마자키 셰리 캐스크 2온스(60㎖) 한 잔을 음미하는 가격은 1300달러(약 180만원)에 이른다. 일본 위스키 하쿠슈 25년이나 히비키 30년 한 잔도 1000달러 넘는 가격에 팔린다고 한다.

일본 장인이 섬세하게 빚어낸 금빛 액체란 찬사를 받은 일본산 위스키가 전 세계적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이미 약 10년 전부터 각종 술 품평회 1등은 일본 위스키가 휩쓸고 있다. 지난해 영국에서 열린 세계적인 술 품평회 ‘인터내셔널 스피리츠 챌린지(ISC)’에서 전 부문 최고상(Supreme Champion Spirit)을 거머쥔 것 역시 일본 산토리의 ‘야마자키 25년 싱글몰트 위스키’였다. 위스키·보드카·코냑·럼 등 각종 증류주를 평가하는 이 대회에서 2300여 경쟁 제품을 제치고 최고의 술로 인정받은 것이다. 같은 해 영국 ‘월드 위스키 어워즈(WWA)’에서도 일본 닛카 ‘다케쓰루 퓨어몰트 위스키’가 블렌디드 몰트 위스키 부문 최고상을 받았다.

1924년 최초의 위스키 공장을 세우고 딱 100년을 맞은 일본은, 500년 위스키 역사를 자랑하는 원조 스코틀랜드는 물론 아일랜드, 미국, 캐나다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세계 5대 위스키 강국’ 반열에 올랐다는 평가를 받는다. WEEKLY BIZ는 쾌속 성장을 이룬 일본 위스키의 성공 비결을 해부했다.

◇'야마자키’의 정체는

오늘날 일본 증류소에서 생산되는 위스키는 가장 희귀하고, 가장 비싸며, 가장 수요가 많은 위스키 중 하나로 손꼽힌다. 고급스러운 맛과 향에 일본 위스키를 찾는 술꾼은 갈수록 늘지만, 숙성 기간 때문에 공급이 수요를 못 따라가자 가격은 천정부지로 오르는 추세다. 일본산 위스키 중 가장 숙성 연수가 긴 ‘야마자키 55년’은 홍콩의 한 경매에서 한 병에 79만5000달러(약 11억원)에 낙찰되기도 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이처럼 사실상 ‘액체 금’ 수준에 이른 일본 위스키의 태동지는 주류 회사 산토리의 싱글몰트 위스키 제품 이름으로도 자주 등장하는 야마자키다.

산이란 뜻의 ‘야마(山)’, 산부리란 뜻의 ‘자키(崎)’가 합쳐져 산기슭이란 의미를 품은 일본 교토 남부 야마자키 지역. 가쓰라·요도·기즈 세 강이 만나 맑은 물이 풍부한 이 땅에, 1924년 일본 최초의 위스키 공장인 야마자키 증류소가 완공됐다. 100년 전 이곳에 증류소를 세운 이는 일본 위스키의 아버지라 통하는 두 사람, 도리이 신지로(1879~1962)와 다케쓰루 마사타카(1894~1979)였다. 이들은 현재 일본 위스키 업계의 양대 산맥인 주류 회사 ‘산토리’ ‘닛카’를 각각 창업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래픽=김의균

미 경제지 포브스는 일본 위스키의 한 세기 역사를 “두 사람과 두 회사가 만든 역사”라 정의했다.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은 일본 위스키의 태동은 도리이와 다케쓰루라는 두 거장이 합심해 이뤄냈다는 뜻이다. 1900년대 초 오사카에서 주류 사업을 하던 도리이는 1907년 발매한 ‘아카다마(赤玉) 스위트 와인’의 성공을 바탕으로 와인에서 위스키까지 주류 사업 확장을 노렸다. 이때 도리이는 연봉 4000엔이라는 당시로선 파격적인 대우로 스코틀랜드에 위스키 유학을 다녀온 사케 양조장집 아들 다케쓰루를 발탁해 초대 공장장에 앉힌다.

다케쓰루가 스코틀랜드 증류소에서 만년필로 꼼꼼히 적어 온 위스키 제조 비법은, 일본에선 ‘위스키의 성경’과 같은 역할을 했다. 이 비법이 결국 ‘야마자키’ ‘하쿠슈’ 등 지금의 유명 일본 위스키가 탄생할 수 있는 바탕이 됐다는 얘기다. “일본 위스키 역사 대부분은 다케쓰루에게 빚지고 있다”(미 마켓워치매거진)는 평가가 나오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두 회사의 치열한 경쟁으로

하지만 힘을 합쳐 일본 위스키를 탄생시킨 두 주역의 취향은 엇갈린 모양이다. 포브스는 “(도리이와 다케쓰루) 두 사람의 비전은 상당히 달랐다. 다케쓰루는 스코틀랜드에서 생산된 것과 같은 강렬한 위스키를 만들고 싶어 한 반면, 도리이는 일본인 입맛에 맞는 부드럽고 우아한 제품을 원했다”고 전했다. 결국 다케쓰루는 계약 기간 10년을 끝내고 도리이와 헤어져 스코틀랜드 환경과 보다 유사한 홋카이도에 1934년 ‘요이치 증류소’를 차렸다. 일본 위스키 계보에서 ‘산토리’의 경쟁자 ‘닛카’ 위스키가 탄생한 배경이다. 이후 이 두 주류업체는 한 회사가 신제품을 출시하면, 또 다른 회사가 곧 비슷한 제품을 출시하는 식으로 치열하게 경쟁하면서 일본 위스키 발전을 견인했다.

하지만 일본 위스키 시장에 부침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80년대 초 일본 위스키는 국내 소비량이 4억L에 육박할 정도로 전성기를 맞이했다. 그러나 이후 버블 경제가 붕괴하고, 경기가 침체하자 서민들은 고가의 위스키에서 자연스레 시선을 떼게 된다. 이후 약 20년 만에 위스키 소비량은 80%가량 급감했다.

하지만 일본 위스키 역사의 새옹지마는 이때 펼쳐졌다. 당시 20~30년 동안 팔리지 않아 재고로 남겨졌던 위스키들 숙성도가 되레 높아졌다. ‘일본 위스키, 100년의 여행’을 쓴 김대영 작가는 “당시 블렌더(위스키 제조자)들은 쌓여있는 위스키를 실험적으로 블렌딩(혼합)하며 새 상품을 만들기도 했는데, 이때 나온 위스키가 최근에 ‘최고급 위스키’로 평가받기도 한다”고 했다.

그래픽=김성규

◇일본 위스키의 한 수, 미즈나라

일본 위스키는 기본적으로 종주국인 스코틀랜드의 제조법을 따른다. 몰트(싹튼 보리를 건조한 것)를 분쇄해 뜨거운 물에 담그고 효모를 더해 발효시켜 증류한다. 그렇게 분리돼 나온 주정(酒精)을 오크통에 숙성해 위스키가 만들어진다. 하지만 위스키 전문가들은 이러한 과정에 ‘일본만의 비결’이 더해져 그 매력이 배가된다고 분석한다. 가장 많이 거론되는 비결은 바로 주정 숙성에 쓰이는 ‘미즈나라(물참나무)’다.

일본 최북단 홋카이도에서 나는 미즈나라는 당초 일반 참나무보다 내부 구멍이 많아 위스키 숙성을 위한 오크 통 재료로 적합하지 않다고 평가됐다고 한다. 담겨있는 액체가 밖으로 새기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영국 등에서 오크 통 수입이 막힌 일본엔 선택지가 많지 않았다. 김대영 작가는 “일본은 오크 통 수입이 막힌 위기를 타개하는 동시에 일본 위스키만의 매력을 살릴 방법으로 미즈나라 오크 통을 연구해 낸 것”이라고 했다.

위스키 숙성에 단점이라 여겼던 미즈나라의 다공성(多孔性)은 역으로 나무에서 나는 백단 향 등 향기를 위스키에 더 잘 배어들게 하는 장점으로도 작용했다. 영국 주류 전문 매체 디캔터는 “일본이 독자적으로 개발한 미즈나라 숙성 통은 이제 (위스키) 라벨에 ‘미즈나라’란 이름이 적혀 있는 것만으로도 가격이 오를 만큼 품질을 보증하는 존재가 됐다”고 했다.

미즈나라 외에도 일본 위스키엔 일본만의 자연환경이 잘 녹아들어 독특한 풍미를 자아낸다는 평이 나온다. 흔히 위스키는 서늘한 기후에서 숙성돼야 맛이 더욱 깊어진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일본 특유의 습하고 온화한 날씨가 위스키 숙성을 촉진하고, 이 과정에서 서양 위스키에선 맛볼 수 없는 독특한 풍미가 가미된다고 본다. 여기에 이른바 ‘모노즈쿠리’라고 불리는, 최고의 제품을 위해 심혈을 기울이는 일본 특유의 ‘장인 정신’도 명품 위스키를 완성한 주요인이 됐다는 게 위스키 전문가들 분석이다.

◇日 위스키 부활의 주역, 하이볼

한때 침체를 겪던 일본 위스키를 부활시킨 주역 중 하나는 바로 ‘하이볼’이었다. ‘버블 붕괴(일본 경제 침체)’가 닥친 2000년 무렵 소비자들은 고가의 위스키보다 주하이(소주와 탄산수를 섞은 술) 등 염가에 마실 수 있는 술을 많이 찾곤 했다. 이때 무너지는 위스키 실적을 만회하고자 산토리는 2008년 하이볼 광고에 집중하며 ‘하이볼 붐’을 이끌었다. 당대 최고 인기 연예인이던 고유키(48)와 간노 미호(47), 이가와 하루카(48) 등을 광고에 기용하고, 직장 회식에선 하이볼을 마시는 식의 광고를 집중 송출했다. 특히 당시 산토리가 광고 전면에 내세운 블렌디드 위스키 ‘가쿠빈’은 야마자키·하쿠슈 등 싱글몰트 위스키보다 값이 싸 서민에게 친근하게 다가가기 적합했다고 분석된다. 맥아만을 써서 단일 증류소에서 만든 위스키를 뜻하는 싱글몰트는, 여러 원액을 배합한 블렌디드에 비해 상대적으로 비싼 편이다.

그래픽=김성규

2013년엔 한국의 ‘치맥(치킨과 맥주)’과 유사한 ‘하이카라(하이볼과 가라아게)’ 마케팅 캠페인이 위스키 수요를 끌어올렸다. 이에 일본 위스키 소비량은 2008년 7400만L에서 2011년 9430만L, 2016년 1억4500만L로 상승세를 탔다.

일본 위스키가 성장하며 이제 일본을 대표하는 술 타이틀도 일본 전통주(니혼슈)에서 위스키로 무게중심이 옮겨 가는 모양새다. 지난해 일본의 위스키 수출액은 501억엔(약 4400억원)으로 일본 전통주 수출액(411억엔)을 뛰어넘었다.

◇크래프트 증류소가 이끄는 혁신

최근 일본 위스키 업계에는 괄목할 만한 수출 실적과 더불어 또 다른 변화의 기류도 감지된다. 산토리·닛카 등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 규모 중심의 이른바 ‘크래프트(수제) 증류소’들이 우후죽순 설립되는 것이다. 일본 위스키 문화 연구소 등에 따르면, 현재 일본 전국 위스키 증류소 수는 10년 전의 10배 이상인 약 110곳에 이른다. 상당수 증류소가 세워진 지 10년이 안 된 신생 크래프트 증류소란 얘기다.

이렇게 몸집이 작은 크래프트 증류소는 대기업 증류소보다 실험적인 제조법을 쓰며 일본 위스키의 지평을 넓히고 있다. 도쿄 메구로구에 있는 ‘이름 없는 증류소’는 미즈나라뿐 아니라 ‘벚나무 숙성 통’에서 만든 위스키를 판매한다. 도야마현 사부로마루 증류소는 구리가 아닌 청동(구리와 주석의 합금)으로 증류기를 자체 제작해 주정을 뽑고 있다. 일본 시즈오카현에 2016년 세워진 ‘시즈오카 증류소’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삼나무를 직화(直火)해 위스키를 증류한다”고 자랑한다. 이곳의 나카무라 다이코 대표는 본지에 “임업이 번성한 시즈오카 지역 특성을 살리려 여러 실험을 거쳐 개발해 낸 증류법”이라고 했다. 그는 “크래프트 증류소가 늘어나면서 일본 위스키 종류도 다양해지고, 소비자의 선택지도 넓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수제 증류소가 늘면서 유럽식 원주(原酒) 교류 문화가 없던 일본에서도 원주 교환·매매 풍토가 생기는 중이다. 음식 전문 저널리스트 나카야마 히데아키는 “크래프트 증류소들이 서로 컬래버(협업)한 제품을 내놓으면서 일본 위스키에 ‘모험심’이란 매력이 더해지고 있다”고 했다.

그래픽=김성규

◇일본産 아닌 일본 위스키?

100년 만에 위스키 종주국과 어깨를 나란히 한 일본 위스키도 해결해야 할 과제가 없는 건 아니다. 세계적인 품귀 현상이 빚어질 만큼 일본 위스키가 인기를 끌자, 국내외 주류 판매점에서 일본산(産)이 아닌 위스키를 일본 위스키라고 둔갑해 파는 사례가 수차례 발견됐다. 미 뉴욕타임스는 “대부분의 위스키 생산국과 달리 일본은 ‘일본산 위스키’라는 브랜드에 대한 (국가 차원의) 규정이 없었다”며 “저렴하게 수입한 스카치위스키에 ‘일본 위스키’란 라벨만 붙여 파는 등 허점이 발견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에 일본 양주 제조업체 모임 ‘양주 주조 조합’은 지난달 칼을 빼 들고, 일본 위스키에 대한 인증 기준을 도입했다. 조합이 제시한 조건은 ‘일본에서 채취한 물 사용’ ‘일본에서 당화·발효·증류·숙성·병입을 진행’ ‘700L 이하 나무통에 담아 일본에서 3년 이상 저장’ 등이다.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조합은 조건을 지키지 못한 가맹업체 위스키는 ‘일본 위스키’란 상표를 달지 못하게 막고 해외에서의 가품 판매 사례도 면밀히 감시하겠단 방침이다. 모리모토 마사키 일본 양주 주조 조합 이사장은 “일본 위스키에 대한 보다 명확한 정의를 통해 선조들이 갈고닦은 품질을 지켜나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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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성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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