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축의 터널’ 21개월 만에 끝 보인다
美연준 “금리 인하 논의 시작”
코로나 팬데믹 이후 높은 물가와 싸우기 위해 기준 금리를 올려온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가 내년에 금리 인하를 시작하겠다는 방침을 13일 시사했다. 정부의 코로나 부양책 등이 초래한 극심한 인플레이션이 다소 진정돼, 연준이 강한 긴축(금리 인상)에 돌입한 지 21개월 만에 처음으로 통화정책의 축을 완화로 전환하기 위한 논의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내려가는 물가가 반등하지 않고 실업률도 지금과 같은 낮은 수준이 유지되는 상태로 금리 인하가 시작된다면 미 경제는 많은 전문가가 우려한 경제의 경착륙(硬着陸·심각한 경기 침체) 없이 긴축을 끝내게 된다.
미 연준은 이날 올해 마지막 기준 금리 결정 회의(연방공개시장위원회 정례 회의)를 열고 기준 금리를 연 5.25~5.50%로 동결한다고 밝혔다. 지난 7월 기준 금리를 0.25%포인트 올린 뒤 9월부터 이번 회의까지 3연속 동결이다. 연준 위원들은 이날 함께 발표한 점도표(금리 전망을 점으로 표시한 도표)를 통해 내년 말 기준 금리가 4.6%로 내려갈 것으로 예상했다. 지난 9월 전망치였던 5.1%보다 0.5%포인트 낮췄다. 통상적인 0.25%포인트씩 금리를 내린다면 내년 세 차례 금리를 내릴 전망이라는 뜻이다. 제롬 파월 의장은 아울러 기자회견에서 “오늘 회의에서 금리 인하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기준 금리 인하를 연준 의장이 직접 언급하자 긴축의 긴 ‘터널’이 끝나간다는 기대감에 주요국 증시는 상승했다. 이날 미국 다우평균은 전일보다 1.4% 올라 처음으로 3만7000선을 넘어섰다. S&P500 및 나스닥 지수도 각각 1.4% 상승했다. 이어 열린 한국 증시도 코스피와 코스닥이 각각 1.3%, 1.4% 올라 거래를 마쳤다. 과거 미국이 기준 금리를 올리다 내리면 소비와 투자가 살아나면서 글로벌 경기도 반등하는 경우가 많았다. 가계 부채가 사상 최대로 불어나 있는 한국은 금리가 미국을 따라 내려갈 경우 높은 대출 이자율이 낮아지면서 가계의 부담이 줄고 소비가 살아날 수 있다. 한편으론 저금리로 빚내기가 쉬워져 증가세가 간신히 진정된 가계 부채가 다시 빠르게 늘어날 위험도 있다.
이날 오전 연준 회의를 기다리며 잠잠하던 미 증시는 오후 2시쯤 기준 금리 결정 결과 및 내년 금리 예상치가 나오자 빠르게 오르기 시작했다. 특히 “인플레이션은 잡히지 않았다”며 강경한 입장을 고수해 온 파월 의장이 기자회견에서 긴축을 곧 끝내겠다는 뜻을 비교적 명확하게 밝히자 증시는 상승하고 채권 금리는 급락(채권 가격 급등)했다.
연준은 코로나 기간 ‘제로(0%)’로 낮췄던 기준 금리를 약 1년 반에 걸쳐 5% 수준으로 가파르게 끌어올렸다. 1970년대 말 석유 파동으로 인한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한 기준 금리 인상기 이후 가장 강력한 긴축이었다. 2021년부터 조짐이 보이던 인플레이션을 제때 잡지 못했다는 비난을 받아온 파월 의장은 이날 회견에서 전과는 확실히 달라진 어조로 자신감을 드러냈다. 그는 “금리 인상 주기의 정점에 도달했거나 근접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또 긴축적 통화정책이 유발할 가능성이 큰 불황을 피했다고 확신하는지 묻는 질문에 “경제가 불황에 빠졌다는 증거는 매우 적다”고 밝혔다. “처음부터 대규모 일자리 손실 없이 인플레이션을 낮추는 등 경제를 진정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현재까지는 (경제가) 그런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도 했다.
파월은 기준 금리 인하 논의를 시작할 수 있게 된 배경에 대해선 “인플레이션 하락이 진전을 보이고 있다”며 “물가 안정 목표만이 아니라 ‘양대 목표’ 모두 중요해지고 두 목표 간 균형도 개선되는 쪽으로 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가 말한 ‘양대 목표’는 연준 통화정책의 공식 목표인 물가 안정과 완전 고용을 의미한다. 코로나 이후 일자리에 비해 구직자가 부족해 임금이 오르고 물가가 따라 상승하는 악순환이 발생했다면, 이제 고용 시장이 정상화될 조짐이 보이고 물가도 진정되는 식으로 경제에 균형이 돌아오고 있다는 뜻이다. 지난해 6월 전년 대비 9%를 넘어설 정도로 치솟았던 미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달 3.1%로 하락한 상태다. 연준의 목표치(’상당 기간 2%’)보다는 약간 높지만, 상승률이 계속 낮아지고 있어 ‘급한 불’은 꺼졌다는 평가가 많다. 인플레이션을 악화시켰던 구인난 역시 “균형을 찾아가고 있다”고 파월은 평가했다.
지난해 3월 이후 연준이 금리를 급격히 올릴 때만 해도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한 경기 침체가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많았다. 하지만 코로나 때 고용 시장을 떠났던 이들이 점차 돌아오고, 팬데믹 종료 이후 소비가 활발하게 유지되면서 경제 연착륙이 가능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아울러 초유의 팬데믹 사태 이후 닥친 물가 상승의 원인이 과거 다른 사례와는 달라 침체 없는 물가 진정이 가능했다는 분석도 있다. 파월은 이날 경기 침체 없이 물가 상승이 둔화한 이유에 대해 “이번 인플레이션은 수요 증가에 의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코로나라는 일시적 요인으로 인해 공장이 문을 닫고 물류가 막히는 등 공급망이 갑자기 무너지면서 물가가 올라간 측면이 있었다는 점을 부각했다. 역으로 팬데믹 상황이 끝나며 공급망이 차츰 정상화된 것이 침체 없는 인플레이션 완화를 가능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연준은 올해 미국의 경제성장률(국내총생산 증가율) 전망치를 9월에 예상했던 2.1%에서 2.6%로 상향 조정했다.
시장 전문가들은 연준의 기준 금리 인하가 이르면 내년 봄, 늦어도 여름쯤엔 시작될 수 있다고 전망한다. 연준 기준 금리 결정 회의는 한 해 여덟 번 열린다. 시티는 “파월은 회견 때 ‘필요할 경우 추가 긴축 준비가 되어 있다’고 언급하긴 했지만 아무도 믿지 않을 듯하다”며 “내년 7월 금리 인하를 시작해 연말까지 1%포인트까지도 금리를 내릴 수 있다고 예상한다”고 분석했다. 미국 대형 은행 웰스파고는 “거의 2년간 이어진 급속한 통화 긴축 이후 내년엔 금리 인하로 전환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내년 6월 첫 금리 인하를 시작할 것으로 전망한다”고 했다. 채권 시장 금리의 움직임을 통해 기준 금리 동향을 예측하는 시카고상품거래소 ‘페드워치툴’에 따르면, 내년 3월에 기준 금리 인하가 시작될 확률이 73%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점도표(點圖表·dot plot)
미국 연방준비제도 위원 19명이 익명으로 자신이 전망한 향후 금리 수준을 점으로 표시한 도표다. 연준은 매년 3·6·9·12월 기준 금리를 결정하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직후 점도표를 공개한다. 특히 매년 12월 나오는 점도표는 이듬해 기준 금리를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참고 자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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