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계 후배의 탄식 “박영수형이 너무 많이 해먹었어”
[주간조선]
최순실 국정농단을 진두지휘하며 ‘국민 특검’으로 명성을 얻었던 박영수 전 특별검사가 검찰의 재수사 끝에 지난 8월 3일 구속됐다. 검찰은 박 전 특검을 구속 나흘 만에 불러 조사하며 대장동 50억 클럽 의혹에 대한 수사의 고삐를 죄고 있다. 박 전 특검이 받고 있는 주요 혐의는 수천억원이 오가는 민간 부동산 사업의 뒤를 봐주며 수백억원 상당의 대가를 요구하거나 일부 수수했다는 내용이다. 집안 대대로 주요 관직을 겸한 지역 유지 집안에서 태어난 박 전 특검은 유년 시절부터 다복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조직에서도 유례없는 출셋길을 걸으며 검찰계 맏형으로 통하던 그는 국민 영웅에서 피의자로 전락했다.
2016년 11월, 박 전 특검은 현직 대통령의 탄핵과 구속까지 이어지는 국가 비상사태를 초래했던 ‘최순실 국정농단’ 수사를 총지휘하는 특별검사로 임명되며 국민 영웅으로 등극한다. 박 전 특검의 개인 명예 역시 이때 정점을 찍는다. 국내 톱 대기업들에 대한 강도 높은 수사로 검찰 내외에서 강직한 검사라는 높은 평가를 받고 있었던 그가 국가적 사안을 맡아 국보급 검사로서 명성을 떨치게 된 것이다. 당시 사건에 연루됐던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김기춘 비서실장, 삼성 이재용 부회장 등을 구속하며 박 전 특검의 입지는 더 확실해졌다.
그가 특별검사 자리까지 간 경위는 어떻게 될까. 많은 사람들은 박 전 특검의 ‘출세 가도’에 박지원 전 국정원장의 이름을 거론한다. 박 전 특검이 2001년 6월 김대중 정부 청와대 민정수석실 사정비서관으로 발탁됐을 때부터 박 전 국정원장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후문이 파다했다.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원장을 지낸 박 전 특검의 부친 박창택 판사와 박 전 국정원장의 친분이 작용했다는 것이다. 박 전 특검을 잘 안다는 주변인들에 따르면 실제 그는 술자리에서 박 전 국정원장에게 전화가 오면 “예 선생님”이라고 하며 조용한 곳으로 이동해 통화를 하곤 했다고 한다.
한 때 ‘국민 영웅’ 박영수 특검
이어지는 노무현 정부에서 박 전 특검은 검찰의 꽃이라 불리는 대검 중수부장에 올랐고 이후 서울고검장을 지내는 등 검찰의 핵심 요직을 두루 거치며 승승장구했다. 특히 노무현 정부가 추진하던 재벌개혁에 앞장서 당시 SK 최태원 회장, 현대차 정몽구 회장, 삼성 이재용 부회장, 롯데 신동빈 회장 등 재벌 총수들에 대한 구속수사를 벌이며 ‘재계의 저승자사’로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수산물 업자로부터 고급 외제차를 무상으로 대여받아 사용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며 도덕성에 금이 가기 시작한 박 전 특검은 최근 변호사 시절 불법적·비윤리적 행적들이 하나둘씩 드러나며 한순간에 몰락했다.
앞서 주간조선이 보도한 박 전 특검 후배 변호사의 녹취록 내용에 따르면 박 전 특검이 대장동 사건에 개입된 시점은 2015년 즈음으로 보인다. 녹취록에서 K변호사는 박 전 특검이 특검 임명 6개월 전 대장동 프로젝트에 가담하고 있었다는 내용을 언급한다.(주간조선 2767호 ‘박영수는 왜 대장동을 물었나?’ 참조) 박 전 특검이 ‘20곳의 거래처가 다 떨어지고 끈 떨어졌을 때 (대장동을) 만들고 있었다’는 구체적 정황도 나온다. 변호사가 된 박 전 특검에게 고정 자문료를 내던 업체들이 거래를 중단한 시점으로, 전관예우 기간이 끝난 상태라는 설명이다.
대장동 프로젝트가 설계된 시점인 2014년 정영학 회계사와 우리은행 관계자 등이 박 전 특검이 대표변호사로 있던 법무법인 강남 사무실에서 2~3차례 컨소시엄 구성 관련 논의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진 바도 있다. 박 전 특검의 딸이 2016년부터 화천대유에서 일하며 대장동 일당으로부터 대출 11억원, 퇴직금 5억원, 아파트 분양 등을 통해 총 25억원 상당의 이익을 얻은 혐의를 받고 있는데, 이는 박 전 특검이 그전부터 개입돼 있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2014년 우리은행 통합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던 박 전 특검은 우리은행에 대장동 PF에 참여하겠다는 1500억원의 여신의향서를 요청하는 대가로 대장동 일당으로부터 200억원 상당의 지분이나 건물을 약속받은 혐의도 받고 있다. 말 한마디로 수백억원을 손쉽게 챙길 수 있는 거래를 한 것이다.
이와 관련 박 전 특검은 혐의를 부인하고 있지만, 검찰은 대장동 관계자들로부터 “양재식 변호사가 박 전 특검과 200억원가량의 지분·건물이나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약속받았다”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한 상태다. 한 언론보도에 따르면 검찰은 보강수사 과정에서 정영학 회계사로부터 “2015년 3월 20일쯤 박영수가 화천대유에 (투자금 격으로) 계약 체결 보증금(5억원)을 낼 거라는 얘기를 김만배에게서 듣고 하나은행에 전달했다”는 진술을 받아낸 것으로도 알려졌다.박 전 특검이 받고 있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수재 혐의는 ‘금융회사 임직원’일 때 적용되는데, 박 전 특검의 등기상 퇴임일인 2015년 4월 7일보다 앞선 시점에 모사가 이뤄진 정황이 드러난 셈이다.
검찰은 박 전 특검의 주요 혐의 중 하나인 남욱 변호사로부터 받은 대한변호사협회장 선거 자금의 구체적 정황도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1년 박 전 특검은 이미 자신이 만든 법무법인 산호의 대표 변호사로서 강남 ‘바로세움3차’ 사건에서 부당한 수익을 위해 애쓰고 있었다. 당시 시행사 시선RDI와 시공사 두산에너빌리티(두산중공업) 간 민·형사 소송에서 박 전 특검은 시행사 측 변호를 맡으며 수임료 외 1층 상가 1호실과 50억원 이상의 성공보수를 요구했다. 김대근 시선RDI 대표의 주장에 따르면, 박 전 특검은 김 대표에게 고가의 강남 술집 술값을 선불로 대신 지불하게 해 1억원가량의 향응을 제공받은 것으로도 드러났다.
성공한 검사가 왜 이렇게까지 부정한 돈을 탐했을지 그의 집안을 보면 쉽게 이해하기가 힘들다. 박 전 특검의 부친은 목포 향판이었고, 조부 박명효씨는 초대 북제주군수와 제주읍장도 역임한 거물급 정치인이다. 광복 직후 제주도 내 우익진영의 대표적 인물로, 당시 도내 가장 영향력 있는 4명의 박씨를 일컫는 사박(4朴) 중 한 명이기도 했다. 이 박씨 가문이 살았던 제주도 원도심의 한 초가집은 지금까지도 ‘박 판사네’로 통하며, 현재는 꽤나 유명한 관광 명소로 언급되기도 한다. 박 전 특검은 ‘박 판사네’ 막내아들이다. 덕분에 그는 어렸을 때부터 ‘도련님’으로 최고의 대우를 받았고, 검찰 역사에서도 유례없는 성공한 삶을 살았다.
“막내아들이라 욕심 많았다”
하지만 그는 끝없는 고공행진 뒤 추락 중이다. 박 전 특검을 잘 아는 주변인들은 “박 전 특검이 막내아들이라 욕심이 많다”고 입을 모으곤 했다. 대장동 사태를 본 박 전 특검의 한 후배 변호사는 “(영수형이) 너무 많이 해먹었다”고 질타하기도 했다. 국내 대기업 총수들을 줄줄이 수사하며 한때 별명이 ‘재계의 저승사자’였던 그는 검은 뒷돈에 눈이 멀어 결국 나락의 길을 걷게 됐다. 집안 대대로 주요 관직을 지낸 지역 유지 집안에서 태어나 부족함 없이 자랐다는 박 전 특검의 욕심은 국가적 오명으로 기록되고 있다. 한편 검찰은 박 전 특검의 구속 기간인 오는 8월 22일까지 수사를 마치고 재판에 넘길 예정이다. 다음 타깃으로 권순일 전 대법관이 지목되고 있는 가운데 법조계 출신 인사가 대거 거론된 ‘50억 클럽’ 수사가 본격화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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