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종교
2019-06-29 22:22:10
♥대종교 못다한 이야기
대종교는 단군의 이름으로 국권을 회복하기 위하여 일어섰고, 항일 무장 투쟁으로 전성기를 누렸지만 또 그것으로 인하여 모든 것을 잃었다.
수 많은 애국 지사와 독립 투사를 길러내어 만주와 상해 그리고 블라디보스톡, 구미와 미국까지 그 영향력은 실로 지대하였다. 또한 국내에도 여러 개의 비밀 결사 조직을 만들어 일제의 관청과 경찰서를 폭파하였고, 매국노를 처단하였으며, 독립자금 조달도 하였다.
광복된 조국에서 다시 시작한 대종교는 들판의 이름 모를 풀처럼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다. 임오교변으로 교적과 경전 그리고 신도까지 잃은 대종교는 종단의 기금은 물론 사옥도 없어 시교와 경배도 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남과 북으로 갈린 대종교의 원로들 또한 서로의 안부를 전하며 하나가 되려고 노력하였지만 국내 정치 상황이 이를 용납하지 않아 남과 북에서 주요 시찰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대종교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지대한 공헌을 하여 행정부에 부통령 이시영을 비롯하여 명제세 심계원장, 이범석 국방부 장관, 지정천 무임소 장관, 이인 법무부 장관, 안호상 문교부 장관을 배출하였을 뿐 아니라 제헌국회에 조성환 국방위원 등 8명의 의원이 참여하기도 하였다.
대한 체육회의 전신 대한 소년 체육회도 대종교인 초대 심계위원장 명제세와 홍익대 초대 이사장 이흥수가 주도하여 창설하였다.
대한민국 정부 대학령 제1호 대학인 홍익대도 대종교인이 세웠으며, 광복 후 최초로 인가받은 종합 대학교 단국대학교의 주인도 대종교 인이다. 홍익대는 홍익인간 정신을 이은 대학이며, 단국 대학교는 "단군(檀君)과 애국(愛國)"에서 "단국(檀國)"으로 하고 단군의 "홍익인간(弘益人間)" 정신을 바탕으로 하는 대학이다.
대한민국 제 1호 종교 재단도 대종교이며, 종교 재단에 대한 비과세도 민족종교의 보호와 육성을 하기 위하여 대종교의 노력으로 제정된 것이다.
개천절의 국경일 제정과 단기연호 사용도 대종교에 의해 확정되어 시행하였으나, 단기 연호는 박정희에 의해 폐지되었다.
조선은 선교사가 들어오기 전 이미 기독교가 성행했으며 초기 선교사들은 설교가 아닌 세례를 주는 일이 주요 업무였다.
단군 왕검의 도읍 평양은 동방의 예루살렘이었으며 평양의 장대현 교회는 세계 기독교 역사에 유례가 없는 부흥성회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이 부흥성회의 주인공은 선교사가 아닌 仙敎에서 개종한 우리 나라 최초의 파견 목사 길선주라는 장로이다. 그는 새벽 기도를 만든 장본인이다.
새벽 기도는 정한 수를 떠 놓고 기도하던 우리 고유의 신앙에서 비롯되었다.
하느님 또한 언더우드의 고백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 민족 고유의 신이다.
기독교가 오늘날 한국의 주요 종교가 된 이유 중 하나는 우리 민족의 심성 속에 살아 숨 쉬는 하느님을 섬기는 데 있다.
대종교의 최고 유일신은 삼신 하느님이다.
- 대종교 시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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