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항습지 쓰레기 수백톤 쌓여도… "北 지뢰 있다" 손 못대
람사르 습지인데도 4년째 방치

지난 1일 오후 경기 고양시 한강 하구의 장항습지. 습지에서 서식 중인 동식물을 기록한 생태관을 지나 보호구역으로 향하는 입구에 들어서니 철책으로 막혀 있었다. 탐방객에게 문을 열어줬던 곳이지만 2021년 지뢰 사고가 발생한 후로는 출입이 통제됐다. 철책에는 ‘출입자는 지뢰로 인한 사고 발생 위험이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본지가 6일 드론을 띄워 이 일대를 촬영해 보니, 플라스틱과 스티로폼, 잔가지 등 부유물로 한강과 연결된 물길이 꽉 막혀 있었다. 한강유역청 관계자는 “한강 하구로 밀려드는 도시 쓰레기가 습지에 쌓이고 있지만 지뢰 위험 때문에 관리를 못 하고 있다”고 했다.

한강 물줄기를 따라 형성된 5.96㎢(약 180만평) 크기의 장항습지는 대륙 사이를 이동하는 철새의 중간 경유지이자 서식지다. 서해안의 높은 조수 간만의 차로 인해 형성된 자연 하구(河口)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생태적 중요도가 높아 ‘람사르 습지’에 지정되며 국제적으로 관리 필요성을 인정받은 곳이다. 하구 특성상 도시 쓰레기와 해양 쓰레기가 물가로 모이는데 환경부는 2021년 이후 손을 대지 못하고 있다. 이곳으로 흘러든 ‘북한 지뢰’ 때문이다.
장항습지는 군사시설보호구역이었다가 지난 2018년 해제된 뒤 출입을 승인받은 농민, 환경 정화 작업자, 생태 탐방객 등에게 개방됐다. 일반인의 접근이 아예 불가능했던 과거에는 하구에 쓰레기가 쌓여도 치울 방법이 없었으나, 개방된 이후에는 정화 작업이 이뤄졌다. 환경부는 매년 2억원의 정화 작업 예산을 편성해 장항습지 일대에 쌓인 쓰레기를 치워 왔으나 2021년 사고 이후로는 청소가 중단됐다.
지뢰 폭발 사고는 2021년 람사르 습지 지정 다음 달에 발생했다. 그해 6월 한 환경 단체가 습지 환경 정화 활동을 위해 들어갔다가 대인 지뢰가 폭발해 발목이 절단되는 사고가 있었다. 한강청 관계자는 “지뢰 사고 이후에도 플라스틱으로 만든 나뭇잎 모양의 지뢰가 일대에 깔려 있는 것으로 판단돼 더 이상 환경 정화 작업을 못 하고 있다”고 했다. 현재는 허가받은 농민만 일부 출입하고 있다.

우리 군은 주기적으로 지뢰를 탐지·제거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에서 계속 지뢰가 내려오면서 안전상의 이유로 출입은 여전히 어려운 상황이다. 목함 지뢰, 나뭇잎 지뢰 등 장항습지에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지뢰는 모두 지뢰탐지기로 탐지가 어려워 군에서도 얼마나 많은 유실 지뢰가 한강 하구 습지에 있는지 파악하기 어렵다. 제거된 지뢰 수도 군에서 비공개로 하고 있다. 환경부 관계자는 “현재 장항습지에는 쓰레기 수백t이 쌓여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이곳에서 수거되지 못한 쓰레기로 습지 생태계가 파괴되고, 오염 물질이 한강으로 흘러들 수 있다.
장항습지는 멸종 위기 야생 생물 1급인 저어새의 서식지이기도 하다. 환경부의 2022년 ‘한강 하구 습지보호지역 생태계 모니터링’에서 2005~2021년 장항습지에 출현한 누적 생물종은 식물 455종, 조류 192종, 포유류 16종 등 총 1092종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관찰된 생물 가운데에는 저어새, 개리, 큰기러기, 재두루미, 흰꼬리수리, 금개구리, 삵 등 멸종 위기 보호종도 다수 포함돼 있었다.

람사르 습지로 지정되면 환경부가 보전 계획을, 각 지자체가 실천 계획을 각각 수립한다. 장항습지의 경우 고양·김포·파주시가 정화 작업 등에 대한 계획을 세워야 한다. 환경부는 이달 중 제4차 한강하구 습지 보전 계획을 발표하고 쓰레기를 치우는 작업도 시작한다는 입장이지만, 지뢰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상 실행은 어려운 상황이다. 한강청 관계자는 “관리 필요성은 인지하고 있으나 지뢰 사고 등의 우려 때문에 손을 댈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람사르 습지로 지정만 됐을 뿐 대책 마련 없이 오염이 방치되고 있는 것이다.
☞람사르 습지
1971년 이란 람사르에서 체결된 ‘습지 협약’에 따라 생태적 중요도를 인정받은 습지. 국내엔 강원 인제 대암산용늪, 경남 창녕 우포늪, 전남 순천만·보성갯벌 등 총 26곳, 203.189㎢가 지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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