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경제

이러고도 선관위의 '정직 선거'를 믿으라고?

太兄 2025. 3. 12. 18:07

[강경희 칼럼] 이러고도 선관위의 '정직 선거'를 믿으라고?

서류 조작해 가족 채용, 선거 다가오면 대거 휴직
이런 곳 일 처리 믿으라는 건 위생 불량 주방에서 안전한 음식 만든다는 격
조직·지배구조·선거망 다 개선해야

입력 2025.03.12. 00:10업데이트 2025.03.12. 07:50
 
경기 과천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정원에 '공명선거'라고 쓴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뉴스1

최근 발표된 감사원의 선거관리위원회 감사 보고서는 충격적이었다. 어느 조직에나 있는 소수의 일탈로 보기 어려웠다. 최고위직인 전직 사무총장과 사무차장이 자녀를 특혜 채용한 것 때문에 수사에 넘겨졌다. 2013~2023년 경력 경쟁 채용에서 드러난 규정 위반만 878건이다. 채용 공고를 안 내거나, 내부 사람으로만 서류·면접위원을 구성하고 면접 점수를 위·변조해 직원 자녀를 채용하는 등 온갖 채용 비리가 다 동원됐다. 정원 대비 1급 비율(0.71%)이 전체 중앙행정기관(0.03%)의 24배다. 외부 사람을 위촉할 수 있는 1급 직위도 몽땅 내부 승진으로 채우고, 법정 임기를 무시한 채 임기 쪼개기로 1급 자리를 나눠 가졌다. 평균 승진 기간이 다른 중앙행정기관보다 급수별로 3~4년씩 빠르니 악착같이 대물려 아들딸을 선관위로 끌어들이려 한 것이다. 윗물도, 아랫물도 다 썩었다. 8년간 124회 출국해 817일을 해외 체류한 직원, 근무지를 무단 이탈해 로스쿨 다닌 직원 등 별별 행태가 다 있다. 선거철만 바쁜데 선거철에 휴직률이 급증했다. 결원을 메우려고 경력 경쟁 채용을 실시하는데 그게 채용 비리 통로였다.

권력의 입김에서 벗어나 선거를 엄정히 치르라고 헌법에 못 박은 독립 기구인데 아무에게도 간섭받지 않다 보니 조직이 심각하게 부패했다. 크게 세 가지를 고쳐야 한다고 본다. 첫째, 선관위 조직의 투명성을 높이도록 감시 체제를 도입하고 3000명에 달하는 방만한 인원을 축소해야 한다. 감사원 직무 감찰도 안 받겠다고 헌법재판소로 달려갔는데 헌재가 선관위 편을 들어줘 감사원 직무 감찰마저 위헌이라 한다. 합법적 견제 장치가 없으니 국민 감시단이라도 만들어야 할 판이다.

둘째, 헌재의 이상한 편들기에서 드러났듯, 판사·대법관 등 현직 법관이 선관위원장을 겸직하는 지배 구조도 개선이 필요하다. 선거소송은 대법원 단심제다. 그런데 선거소송의 피고인 선관위 책임자(선관위원장)가 현직 판사다. 피고와 재판관이 한집안이다. 2020년 총선 직후 선거 무효 소송이 120여 건 쏟아졌는데 최초 판결은 820일 걸렸고 5건만 재검표했으며 나머지는 다 기각됐다. 부정선거론 확산에는 이 이상한 지배 구조에서 비롯된 대법원의 선거소송 처리도 한몫했다.

셋째, 선거 관리 제도도 고쳐야 한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선거 관리 시스템이 잘 확립돼 있고 개표 과정에 부정이 개입하기 어렵다며 부정선거론에 선을 긋지만 선뜻 동의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주방 상태가 불량하고 미덥잖은데 음식 위생 걱정 말라는 격이기 때문이다. 어느 제도든 허점이나 오류는 있게 마련이고 수정 보완하면 되는데 선관위가 그럴 장치도, 의지도 없어 논란을 키웠다.

 

일각에서는 대만식 투표제를 도입해야 한다고까지 주장한다. 대만은 부정선거 논란을 원천 봉쇄하고 중국의 선거 개입을 차단하기 위해 사전 투표, 부재자 투표 등을 허용하지 않는다. 유권자가 직접 현장 투표해야 한다. 재외 국민들도 귀국해 투표한다. 투표함을 움직이지 않으려고 모든 투표소를 투표 종료 직후 개표소로 바꾸어 그 자리에서 수개표한다.

대만만큼은 아니어도 우리 선거 관리도 엄격함을 보강해야 한다. 느슨한 사전 투표제는 개선해야 한다. 사이버 보안 점검도 강화해야 한다. 2023년 국정원과 한국인터넷진흥원, 중앙선관위 합동 조사에서 선관위의 사이버 관리는 100점 만점에 31.5점에 불과했다. 선관위가 문제점을 고쳤다지만 충분치 않아 보인다.

정보 시스템 전문가인 문송천 박사(카이스트 명예교수)에 따르면, 선관위가 자체 구성한 자문위원단에 망 보안 전문가, OS(운영체제) 보안 전문가는 있는데 DB(데이터베이스) 보안 전문가는 포함돼 있지 않아 DB 설계 및 관리 점검이 제대로 이루어졌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사이버 보안은 망 보안, OS 보안, DB 보안의 3층 구조로 설계·운용된다. 망 보안은 건물로 치면 외벽·출입문을 지키는 것이다. OS 보안은 건물 내로 침투했어도 내부 문서인 파일을 함부로 보지 못하게 막는 기술이다. DB 보안은 침입자가 파일에 접근해 속속들이 봐도 특정 페이지의 특정 라인을 읽어내지 못하게 보안하는 것이다. 부정선거론 주장에는 선거인 명부의 부정확성 등이 제기되는데 문 교수는 DB 설계가 부실하거나, 무늬만 DB이고 실상은 일반 파일 처리 기술로 작동하면 데이터 오류가 발생할 여지가 상존한다고 했다. 선관위 DB 설계의 품질과 DB 보안 수준을 판별할 수 있는 전문가까지 포함시킨 합동 점검팀을 구성해서 선거망을 진단하고 개선해야 한다. 과학적으로 접근해 불신을 씻어내야 한다.

선거는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기둥이다. 이번에 드러난 선관위 조직 및 선거 관리 문제는 필요하다면 헌법을 바꿔서라도 싹 고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