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경제

썩은 선비들 혀가 나라를 시궁창으로… 승패 초월해 진검승부하라

太兄 2025. 3. 10. 19:36

썩은 선비들 혀가 나라를 시궁창으로… 승패 초월해 진검승부하라

[김윤덕이 만난 사람]
'칼 이야기' 펴낸 최명 서울대 명예교수

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자택에서 '칼 이야기' 펴낸 최명 서울대 정치학과 명예교수가 본지와 인터뷰를 가졌다. /고운호 기자
입력 2025.03.10. 00:02업데이트 2025.03.10. 11:03
 
'칼 이야기'를 펴낸 최명 서울대 정치학과 명예교수가 헹켈, 슌, 스위스아미 등 크고 작은 칼들을 한데 모았다. 살림 용도다. 설거지도 '이순신 전법'을 해치운다는 주방이 보인다. / 고운호 기자

‘술의 노래’는 정치학자 최명이 썼다. 양주동의 ‘문주반생기’, 변영로의 ‘명정사십년’과 함께 두주불사 호주가(豪酒家)들이 꼽는 3대 명저다.

‘빈 잔도 못 참고 찬 잔도 못 참는다’던 그가 8년 전 단주(斷酒)를 선언하더니, 얼마 전 ‘칼 이야기’를 냈다. 오랜 벗 김대중(본지 고문)이 ‘칼에 꽂히셨나, 베이셨나. 칼 하나에 그리 긴 이야기가 있을 줄이야’라 찬(讚)했다.

책의 마지막 대목이 서늘하다. “가슴속 잗단 불평쯤이야 술로 씻어낼 수 있지만, 세상의 큰 불평은 칼이 아니고는 씻어낼 길이 없다.”

시국에 대해 묻자, 노학자가 아름드리 술통을 꺼내 왔다. 스무 해 전 김동길 박사와 중국 장강을 여행하다 사 온 구기자 열매에 소주를 부어 담근 술이랬다. “칼 이야기만 합시다.”

◇칼의 역사가 인간의 역사

-술은 끊으셨다더니.

“가끔 파계(破戒)도 한다.”

-낮술은 쉽게 취하고 속도 불편하실 텐데.

“대한민국에 살면서 속 편한 사람 있는지.”

-어쩌다 칼에 꽂히셨나?

“내가 한글을 배울 땐 연필을 썼다. 자주 깎아야 했고, 칼이 필수였다.”

-난세에 칼에 관한 책을 쓴 이유가 궁금하다.

“말년에 내놓을 책이 칼이어도 좋다는 생각에.”

-정치학자가 쓴 칼 이야기라 의미심장하다.

“칼의 역사가 인간의 역사. 제멋에 겨워 썼을 뿐, 정치와는 상관없다.”

-조자룡의 청강검, 관우의 청룡언월도, 미야모토 무사시의 목검에 이르기까지 칼들의 사연이 무궁무진 펼쳐진다.

“동서양을 막론해 명검·보검으로 불려온 별의별 칼들과 거기 얽힌 이야기를 한번 정리해 보고 싶었다.”

-명검(名劍)이라 함은 머리카락 한 올이 공중에서 떨어지다가 날에 닿는 순간 두 쪽이 나는 칼인가?”

“‘무딘 칼날의 명검’이란 말이 있듯, 날카로움이 오히려 화를 부를 때도 많다. 또, 제아무리 명검이어도 흐르는 물을 자를 수는 없다.”

-칼도 수집하시나?

“과도, 식칼, 군용 나이프 등 필요한 용도로만 몇 개.”

-날과 손잡이를 관리하는 법, 영국군·독일군이 쓰던 칼의 종류까지 상세히 소개했던데.

“오래전 사두었던 고든 가드너의 ‘밀리터리 컬렉터블’을 참조한 것이다.”

국보로 지정된 '이순신 장도'(李舜臣 長刀). 길이가 약 2m에 이르는 칼로 각각 칼집을 갖췄다. 한 장검의 칼날 위쪽에는 '삼척서천산하동색(三尺誓天山河動色, 석자 칼로 하늘에 맹세하니 산하가 떨고)'이, 다른 장검에는 '일휘소탕혈염산하(一揮掃蕩血染山河, 한 번 휘둘러 쓸어버리니 피가 산하를 물들인다)'가 새겨져 있다. /문화재청

◇바다에 맹서하니 어룡이 움직이고

-일본도에만 한 챕터를 할애했더라.

“일본 칼은 가장 훌륭한 동양의 무기 가운데 하나다. ‘칼은 사무라이의 영혼’이라는 말처럼 봉건, 막부 시대를 거치는 근세 1000년 동안 전쟁을 치르면서 칼을 숭배하는 문화가 형성됐다. 칼에 종교적 관념도 부여해, 칼 만드는 장인은 금욕의 삶을 살기도 했다.”

-여자 사무라이도 있었다고.

“언제고 여자들이 더 무섭게 싸운다.”

-이순신이 사랑한 칼 이야기도 나온다.

“검명(劍銘)이 새겨진 두 자루의 칼이었다. 한 칼엔 ‘바다에 맹서하니 어룡이 움직이고, 산에 맹서하니 초목이 안다(誓海魚龍動 盟山草木知)’, 다른 한 칼엔 ‘한번 휘둘러 소탕하니 피가 산하를 물들인다(一揮掃蕩 血染山河)’가 적혀 있다.

-이순신 장군을 경외하나?

“무기를 등한시한 조선조는 문약한 나라였다. 이순신은 무기를 숭상했다. 활과 칼을 귀히 여겼고, 왜적에 대비해 화승총 같은 대포도 개발했다. 결국 백척간두의 나라를 구했다. 지금 우리에게 그런 군인이 있나?”

-설거지도 ‘이순신 전법’으로 하신다기에.

“어릴 적 ‘먼 남쪽 바다로 침노하는 왜군을 오는 대로 물리치신 우리 장군 이순신’으로 시작하는 노래가 있었다. ‘오는 대로 물리친다’는 가사가 좋아 설거지할 때도 그릇을 쌓아두지 않고 바로바로 씻어 엎는다.”

-무(武)의 세계를 동경하시나?

“문무겸전(文武兼全). 문식과 무략을 다 갖춘 이가 나라를 살린다.”

원로 정치학자 최명 서울대 명예교수가 펴낸 '칼 이야기'.

◇삼국지 영웅들의 칼

-책에 삼국지 영웅들의 칼 얘기가 유독 많다.

“교과서보다 삼국지를 많이 읽은 학생이었다.”

-중학 시절 김용환의 ‘코주부 삼국지’를 읽고 매료됐다고.

“정음사의 10권짜리 삼국지를 비롯해 여러 판본, 여러 언어의 삼국지를 밤을 지새우며 읽었다.”

-삼국지를 세 번 읽은 사람과 겨루면 본전도 못 건진다던데.

“영웅의 기개, 모사(謀士)의 지혜, 장수의 용기를 터득하기 때문이다. 권모술수의 세계를 훤히 뚫기 때문이다.”

-‘소설이 아닌 삼국지’란 제목의 평전도 쓰셨더라.

“반복해 읽다 보니 삼국지 영웅들에 대한 내 나름의 견해가 생겼다.”

-유비는 왜 ‘쪼다’인가.

“소심하고 진취력이 부족해 역사를 복잡하게 만든 위인이다. 비겁하다고 할까, 우유부단하다고 할까. 그가 영웅으로 불리게 된 건, 난세의 간웅이었던 조조가 범한 단 한 번의 실수를 기회로 잡아챈 덕이다.”

-장비는 호걸이었으나, 술로 일을 그르친 경우일까.

“유비가 장비에게 술은 한 방울도 마시지 말고 서주를 잘 지켜달라 부탁했으나, ‘참는 데도 한도가 있다’며 기어이 마셨다가 서주를 빼앗기고 만다.”

-예형이 조조에게 ‘현우(賢愚)를 알아보지 못하니 눈이 탁한 것이요, 충언(忠言)을 용납지 않으니 귀가 탁한 것’이라 꾸짖는 대목도 인상 깊었다.

“진리는 동서고금을 가리지 않는다. 쓴소리에 귀를 닫으면 비극의 문이 열린다.”

서예가 석전 황욱 선생이 왼손으로 운필하는 모습. '좌수악필' '우수악필'로 명성을 떨쳤다. /고창군

◇웅필의 힘, 리더의 힘

-계엄에서 비롯된 난국이 지속되고 있다.

“대통령 팔자고, 나라의 팔자다.”

-지난 3·1절 광장은 반탄·찬탄의 목소리로 분열됐다.

“나는 기미독립선언서를 한 자도 빠뜨리지 않고 외운다. 29세 청년 최남선이 쓴 피 끓는 명문(名文)을 다시 읽어보기 바란다. 최남선 같은 이를 친일로 매도하고 짓밟는 것이 우리의 좁은 마음이다.”

-오죽하면 계엄을 했겠냐는 사람들이 있다.

“이건희는 정치가 4류라고 했지만 5류, 6류라 해도 틀리지 않는다.”

-국회의 입법 폭주도 심판하라고 한다.

“특권을 없애야 한다. 나라 생각은 요만큼도 하지 않고 표(票)만 낚는 자들은 옷만 걸친 밥주머니(衣架飯囊)요, 술통에 고기주머니(酒桶肉袋)일 뿐이다.”

-헌재, 검찰, 공수처 등 헌법기관의 행태도 논란이 됐다.

“법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칼이 제 본분을 잃으면 억울한 죽음을 부른다.”

-나라는 통합의 길로 갈까.

“기성 정치인들이 물러나야 한다. 개헌으로 새판을 짜야 한다.”

-지도자의 힘은 어디서 나올까.

“석전 황욱의 글씨를 좋아한다. 수전증으로 오른손을 못 쓰게 되자 손바닥으로 붓을 잡고 엄지로 붓 꼭지를 눌러 쓰는 악필법(握筆法)으로 명성을 떨쳤다. 그의 글씨엔 기교가 없고 오로지 웅필의 힘만 있다. 기본에 충실하고 욕심이 없는 정자(正字)에서만 나오는 힘이다.”

-‘설검(舌劍)’의 고사도 섬뜩했다.

“썩은 선비[腐儒]의 혀가 제 목을 친다. 스파르타 왕 데마라투스는 ‘바보는 입을 다물 줄 모른다’고 했다.”

-도처에 설검을 휘두르는 이가 넘쳐 난다.

“침묵은 금(金), 웅변은 은(銀). 승패를 초월한 진검승부의 정치를 내 생에 볼 수 있을지.”

작고한 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 최명 교수는 김동길 교수의 권유로 '이 생각 저 생각'이란 제목의 에세이를 블로그에 연재한 뒤 한 권의 책으로 냈다. /뉴스1

◇김동길 박사의 선물

-첫술의 경험은 언제이신가?

“열 살 때. 어른들이 집을 비웠던 어느 날.”

-무애 양주동은 다섯 살에 첫술을 마시고, 열 살에 대취해 사흘 만에 깨어나서는 주선(酒仙)의 길로 들어섰다 한다.

“무애의 허풍이자 과장이라고 본다.”

-당나라 시인 이백은 ‘취하여 빈 산에 누우니 하늘과 땅이 이불과 베개로다’라고 노래했던데.

“이백 또한 뻥이 심한 사람이었다. 시는 그저 시일 뿐.”

-‘술의 노래’에 유신 독재 시절 억압된 기분을 해소하려 술을 마셨다고 썼더라.

“글이란 위선적이어서 진실하지 않을 때가 많다. 술과 유신은 아무 상관이 없다. 술 좋아하던 아버지의 유전자를 물려받았을 뿐. 젊어서는 박정희를 싫어했지만 그만한 지도자도 없었다.”

-김동길 박사와는 어떻게 만나셨나?

“내가 ‘건국 대통령 이승만’에 관해 쓴 글을 읽고 연락해 오셨다.”

-술 끊었다는 소식에 김동길 박사가 몇 줄의 시구와 함께 원두 커피를 갈아 끓이는 기구를 선물했다던데.

“‘칼을 뽑아 물을 베어도 물은 다시 흐르고, 술잔 들어 근심을 씻으려 하나 근심은 다시 솟는다(抽刀斷水水更流, 擧杯鎖愁愁更愁)‘, 해마다 꽃은 비슷하게 피지만, 해마다 사람들은 달라진다(年年歲歲花相似, 歲歲年年人不同)‘는 시구였다. 내가 술을 마시지 않는다 하니 그만큼 벌게 된 시간에 촌음을 아껴 더욱 공부하라는 당부였다.”

-노년에 무슨 공부를 더?

“사람이 매해 달라 보이는 건, 늙어서가 아니라 학문과 인격이 발전했기 때문이어야 한다. 오나라 손권이 여몽에게 ‘중책을 맡았으니 마땅히 공부를 열심히 하라’ 권한다. 여몽이 ‘군무가 바빠 공부할 틈이 없다’ 하니, 손권 왈 ‘내가 어찌 경에게 경서를 익혀 박사가 되길 바라겠는가. 다만 여러 책을 섭렵하여 지나간 일들을 돌아보게 할 따름’이라고 한다. 덕분에 무략과 학식이 크게 발전한 여몽이 훗날 말한다. ‘선비가 이별한 후 사흘 지나 만나면 눈을 비비고 서로를 대한다(士別三日卽當刮目相對).’ 괄목상대(刮目相對)‘라는 말이 여기서 나왔다.”

-그나저나 술은 왜 끊으셨나.

“어느 날 자고 일어나니 마시기가 싫어졌다.”

-술 얘기를 더 듣고 싶지만 날이 샐 것 같다.

“술꾼은 새벽이 오는 것을 싫어한다.”

-즐겁고 유쾌했다.

“옛날에 ‘변변치 않다’는 말을 달고 사는 사람이 있었다. 집에 손님이 오자 ‘변변치 않은 집에 와줘서 고맙다’ 하더니, 아내를 가리키며 ‘변변치 않은 마누라’라고 소개한다. 술상이 나오자 ‘변변치 않은 음식이지만 드시라’ 하니 손님이 머쓱한데, 마침 둥근 달이 떠올라 ‘달이 참 밝군요’ 하자, 주인 왈 ‘변변치 않은 달인데요’ 하더란다. 내 변변치 않은 책을 읽고, 변변치 않은 얘기를 들어주어 고마울 따름이다.”

술 석 잔을 마시면 도(道)에 통하고, 한 말을 마시면 자연과 하나가 된다던가. 구기자주 석 잔에 취한 노장이 만면에 미소를 지었다.

☞최명

1940년 경기 시흥 출생. 경기고, 서울대 법대를 나와 미국 일리노이 주립대에서 중국 정치 사상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로 30년 넘게 재직하며, ‘현대 중국의 정치’, ‘미국 정치론’, ‘비교 정치학 서설’, ‘춘추 전국의 정치 사상’ 등을 썼다. 음주 편력을 담은 수필집 ‘술의 노래’를 비롯해 ‘술의 반란’, ‘이 생각 저 생각’ 등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