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中 일대일로 투자금 1900억원 송금하자마자 떼여… 지금도 행방 몰라
감사원 산업은행 감사서 확인돼

산업은행이 중국 일대일로(一帶一路, 육·해상 신실크로드) 사업에 투자하겠다며 2017년 7월 13~14일 중국 HNA그룹에 1억3350만달러(약 1900억원)를 송금했다가 그대로 떼인 것으로 감사원 감사 결과 드러났다. 산은은 2021년 HNA그룹이 파산하자 투자금을 회계상 전액 손상 처리했지만, 실제로는 2017년 투자금 전액을 한 번에 송금하고서 곧바로 투자금에 대한 통제권을 잃었고, 현재는 투자금이 어디에 있는지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7일 감사원에 따르면, 산은은 2016년 7월 HNA그룹과 특수관계라고 주장하는 IAP라는 회사로부터 HNA그룹이 추진하는 하이난성 하이커우시 메이란 국제공항 확장 프로젝트에 함께 참여하자는 제안을 받았다. 산은은 그해 10월 법률 자문사, 회계법인과 함께 현장 실사를 하고, 프로젝트 참여 여부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산은 관계자들과 함께 실사를 다녀온 회계법인은 이듬해 1월 메이란 국제공항을 운영하는 메이란국제공항공사가 HNA그룹에 빌려준 돈만 12억8000만 위안(약 2600억원)에 달하는 등 메이란국제공항공사의 익스포저(위험 노출액)가 67억9000만 위안(약 1조3600억원)이라는 내용의 재무 실사 보고서를 산은에 제출했다.
그럼에도 산은은 IAP와 함께 프로젝트에 참여하기 위한 준비를 했다. 산은은 ‘KDB-IAP 일대일로 사모투자합작회사’라는 이름으로 8900만 달러(약 1300억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하고, 이 ‘일대일로 사모펀드’는 투자금을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설립하는 특수목적법인(SPC)에 출자하기로 했다. 산은은 출자와 별도로 SPC에 4450만 달러(약 600억원)도 대출해주기로 했다. 그러면 SPC는 일대일로 사모펀드 돈과 산은 대출금을 합한 1억3350만 달러(약 1900억원)를 다시 ‘HNA 파이낸스 II’라는 펀드에 출자하고, HNA그룹의 중간 지주회사도 같은 펀드에 1억3350만 달러를 출자하면, 펀드가 이를 메이란국제공항공사에 대출해주는 방식으로 프로젝트 투자가 이뤄질 것이었다. 즉 산은과 국내 투자자의 자금은 ‘일대일로 사모펀드’와 버진아일랜드 SPC, ‘HNA 파이낸스 II 펀드’라는 세 단계를 거쳐서 프로젝트에 들어가게 돼 있었다.
문제는 투자금이 프로젝트에 들어가기 직전 단계인 HNA 파이낸스 II 펀드에서 의결권 전부가 HNA그룹의 중간 지주회사에 주어지기로 돼 있었다는 점이다. 산은과 국내 투자자들은 이 펀드에 대해 아무 권한이 없었다. 펀드 운용사도 HNA그룹이 만든 ‘HNA 일대일로 에쿼티 투자 펀드’라는 회사로 지정돼 있었다. 애초에 산은과 IAP가 함께 조성한 ‘일대일로 사모펀드’에 IAP가 댄 돈도 50만 달러(약 7억원)에 불과했다. 한국 측 투자금이 중국 측으로 한번 넘어가면 한국 측이 아무 통제를 할 수 없는 구조였다.
2017년 6월에는 한국의 금융감독원 격인 중국 은행감독관리위원회가 HNA그룹의 부채 상황을 조사하고 결과를 보고하라고 중국 은행들에 지시했고, 이 사실이 외국과 한국 언론을 통해 보도됐다. HNA그룹의 부채가 과도해 신용 등급이 강등될 가능성이 있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감사원은 “HNA그룹은 해외 M&A(인수·합병) 및 부채 증가로 인한 재무적 리스크에 노출돼 있었고, 메이란 프로젝트의 차주사인 메이란국제공항공사는 HNA그룹과 지분 구조 및 채무 관계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HNA그룹의 리스크로부터 독립된 회사로 보기 어려웠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산은은 프로젝트 상황에 대한 심층 조사 없이, ‘중국 금융 감독 당국의 조사는 HNA그룹 등의 해외 M&A를 견제하려는 것으로서 리스크에 대한 사전적 점검에 불과하고, HNA그룹의 신용 등급에는 문제가 없으며, 메이란국제공항 프로젝트는 HNA그룹의 리스크와 연결돼 있지 않다’는 내용의 내부 보고서를 만들었다. 이를 바탕으로 산은은 2017년 7월 3일 투자심의위원회에서 메이란 프로젝트에 계획대로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산은은 7월 13~14일 투자금 1억3350만 달러를 일대일로 사모펀드 계좌에 입금했다. 이 돈은 SPC를 거쳐서 HNA 파이낸스 II 펀드로 가야 했지만, 중국 측은 돈을 곧바로 홍콩에 있는 HNA 파이낸스 II 펀드 계좌로 보낼 것을 요구했고, 7월 14일 해당 계좌로의 이체가 이뤄졌다.
중국 측 펀드로 들어간 돈은 그 뒤로 한 번도 메이란프로젝트에 투입되지 않았다. 산은 측이 중국 측에 여러 차례 투자금 집행을 요구했지만 요구는 사실상 무시됐다고 한다.
산은이 투자금을 송금한 직후인 2017년 7월 24일부터 미국 은행들이 HNA그룹의 높은 부채 수준과 불투명한 지배 구조를 이유로 HNA그룹과 거래를 중단했고, 중국 은행 3곳은 이보다 앞서 2017년 초부터 HNA그룹의 담보 능력을 우려해 HNA그룹에 대한 신규 대출을 중단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기 시작했다.
HNA그룹은 2021년 1월 파산했고, 중국 법원은 HNA그룹은 물론 메이란국제공항공사까지 병합해 회생하도록 결정했다. 한국 측 투자금은 HNA그룹과 관계사 자산 매각으로 확보한 수익에서 0.3%를 배당받게 됐고, 산은은 2021년 3월 투자금을 전액 손상 처리했다. 감사원은 산은이 현재 HNA 파이낸스 II 펀드 계좌에 접근하지 못하고 있고, 투자금의 행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감사원은 산은 검사부가 2021년 7~9월 이 프로젝트 투자에 문제가 없었는지 감사했으나, 투자 의사 결정 과정과 약정 체결의 문제점은 점검조차 하지 않은 채 “코로나19에 따른 메이란국제공항의 영업 부진과 HNA그룹의 회생 절차가 부실 발생의 사유”라며 사안을 불문에 부쳤다고 지적했다.
당시 프로젝트 투자를 결정한 산은 임직원들은 감사원 감사 시점에는 모두 산은을 퇴직한 상태였다. 이 때문에 감사원은 산은 임직원들이 이 프로젝트 투자를 강행한 구체적인 이유는 무엇인지, HNA그룹 측과 유착한 것은 아닌지 등을 밝혀내지 못했다.
감사원은 산은에 이 프로젝트 투자 경위와 사후 대응 실태 전반을 재조사해 해외 투자 관리 방안을 마련하고, 앞으로 해외 투자 시 리스크 검토를 부실하게 해 대규모 손실이 재발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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