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경제

헌재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다

太兄 2025. 3. 6. 18:39

[김창균 칼럼] 헌재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다

탄핵소추안 접수된 지 80일… 매일 평의 갖고 논점 토론
재판관끼린 입장 다 알아 몇 대 몇 결론 정해진 셈
거리 압박 헌재 못 움직여… 民心에 부정 영향만 줄 뿐

입력 2025.03.06. 00:15업데이트 2025.03.06. 09:48
5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정문에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바리케이드가 설치돼 있다./뉴시스

한동안 뜸했던 지인들 전화가 걸려오는 일이 부쩍 잦아졌다. 인사치레 안부를 주고받고 나면 어김없이 묻는다. “헌재 결정이 어떻게 날 것 같냐”고 . 심지어 법조계 인사들도 같은 질문을 하길래 “내가 거꾸로 묻고 싶다”고 했다. 언론사에 취합되는 정보를 곁눈질할 수 있는 위치에 있으니 헌재 돌아가는 사정을 알지 않을까 짐작하는 모양이다.

30년 전 워싱턴 특파원 시절 미국 국무부 관리에게 뭔가를 물었는데 “그 정보는 비밀(confidential)로 분류됐다”는 답이 돌아왔다. 힌트라도 얻고 싶어서 추가 질문을 했더니 “비밀이라고 하지 않았느냐”고 정색했다. ‘어떻게 보안 사항에 대해 묻느냐’는 질책처럼 느껴져 얼굴이 화끈거렸다.

솔직히 한국에선 언론과 취재원이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비밀 정보를 주고받는 풍토였다. 지금도 크게 달라진 것 같지 않다. 얼마 전 계엄 사태 국정조사에선 민주당 의원들이 안보 태세를 허물 수 있는 정보를 거침없이 캐묻거나 폭로하는 장면이 TV 생중계로 보도됐다. 이런 불감증 속에서도 판사에게 판결 내용을 미리 묻는 취재만은 금기시된다. 그런 질문을 던졌다가는 기본도 안 돼있는 몰상식한 언론인으로 취급당할 것이다. 대통령 탄핵심판에 대해 헌재 재판관 8명 중 몇 명이 기각, 인용으로 나뉘어 있는지를 파악하고 있는 조선일보 사람은 없다. 다른 언론사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헌재 재판관 스스로는 동료 재판관들의 입장을 파악하고 있을까. 아니면 언제쯤 알게 되는 것일까.

2017년 3월 10일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선고를 내린 헌재 모습을 당시 조선일보는 이렇게 전하고 있다. “재판관들은 재판 시작 30분 전 미리 마련한 탄핵 인용(대통령 파면)과 탄핵 기각(대통령 복귀) 결정문을 놓고 표결을 진행했다. 주심이 제일 먼저 의견을 제시한 뒤 가장 최근에 임명된 재판관부터 차례로 제일 선임인 헌재 소장 대행이 마지막으로 발언하는 순서로 이어졌다. 전원 일치로 대통령 파면 결론이 내려졌다.”

당시 재판관 8명 중 한 명에게 “헌재 재판관들도 재판 직전에야 표결 결과를 알게 됐느냐”고 물었다. 재판관은 그 질문에는 즉답을 피하면서 당시 탄핵심판이 어떻게 진행됐는지를 설명했다.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접수된 직후부터 재판관들은 매일 평의를 가졌다. 쟁점별로 개별 재판관들이 자신들의 논점을 제시했다. 헌재는 대부분의 의사 결정을 재판부 입장으로 정한다. 변론을 어떤 순서로 진행할지 같은 절차까지도 개별 재판관 입장을 묻게 된다. 이 때문에 재판관들은 서로 생각과 입장을 다 알게 될 수밖에 없다.” 형식적으로는 심판 선고를 내리는 날 개별 재판관 입장이 공식 확인되는 것이지만 변론 절차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재판관들은 결과가 몇 대 몇으로 나올지 판단이 끝난다는 설명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헌재에 넘어간 지 80일이 지났다. 그 사이 재판관들은 수십 차례 머리를 맞대고 심판 논점을 토론했을 것이다. 탄핵 찬반에 대한 일반 국민 여론도 등락 과정을 거쳐 안정화 단계에 접어들었다. 그동안 이 문제만을 심사숙고해 온 재판관들의 입장은 진작에 결정됐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지금은 인용 또는 기각 시나리오에 대해 어떤 논리로 결정문을 구성해야 좋을지 다듬는 과정일 것이다.

지난 주말 대통령 탄핵에 반대하는 시위가 서울 광화문과 여의도에서 열렸다. 보수 진영 집회로는 조국 사태 때 이후 최대 규모였다. 대통령은 이 소식을 듣고 “한없는 감사의 표정을 지었다”고 변호인단이 전했다. 범야권도 헌법재판소 인근에서 “윤석열 파면”을 외치며 맞불 집회를 가졌다. 부산 해운대에서 올라왔다는 시민은 “탄핵 반대 세력이 세몰이를 한다고 해서 내리는 비를 무릅쓰고 달려왔다”고 했다. 양측 모두 거리의 열기로 헌재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믿는 분위기다.

대통령 운명을 결정지을 헌재의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다. 대학 입학 시험으로 치자면 채점이 끝나고 본부에서 합격자 명단을 추리는 과정이고, 신문에 빗대면 최종판 마감을 마치고 윤전기가 돌면서 배달 차량이 대기하고 있는 상태다. 인용, 기각 어느 한쪽에 온몸의 무게를 싣고 있다가 반대쪽 결론이 나오면 방향 전환을 하지 못하고 뒤뚱거리며 균형을 잃게 된다. 게다가 과열된 거리 분위기는 거부감을 일으켜 민심(民心)에 부정적인 영향만 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