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영상 요약본 판쳐도..저작권 위반 눈감고 배불리는 플랫폼
['범죄 방조자' 거대 플랫폼] [2] 저작권 침해 어디까지 왔나
2022년 말 아크미디어 등 국내 제작사가 만든 드라마 ‘카지노’가 한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를 통해 공개됐다. 제작비만 200억원이 들어간 대작이었다. 유명 배우의 출연과 작품성으로 소문을 탔지만, 실제 드라마가 공개된 OTT에선 크게 흥행하지 못했다. 하지만 유튜브에선 완전히 다른 상황이 벌어졌다. ‘카지노’ 전편을 압축해 보여주는 한 시간짜리 동영상의 조회 수는 320만회를 기록했고, 100만 조회 수를 넘긴 다른 동영상도 10개가 넘었다. 대부분 드라마 저작권을 침해한 불법 콘텐츠였다. 한 OTT 업체 관계자는 “유튜브에서 이 드라마 전편을 요약한 ‘패스트무비’ 콘텐츠가 인기를 끄는 바람에 사람들이 막상 돈을 내고 OTT에서 시청을 하지 않은 게 문제였다”며 “‘카지노’뿐 아니라 플랫폼에 올라온 불법 콘텐츠 때문에 영화·드라마 업계 전체가 큰 타격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유튜브를 중심으로 플랫폼에서 뉴스를 무단으로 활용해 수익을 거두는 채널도 늘어나고 있다. 방송 뉴스 영상을 내보내거나 신문 기사를 읽는 방식으로 손쉽게 콘텐츠를 제작하는 것이다. 구독자 1만명을 보유한 한 시사 채널은 최근 두 달간 숏폼(1분 내외 짧은 콘텐츠) 영상 150여 개를 올렸다. 국내 방송 뉴스와 라디오 인터뷰 영상을 짜깁기해 그대로 올린 것이 대부분이었다.
플랫폼 기업들은 “피해 당사자가 저작권 침해를 신고하고, 사실로 확인되면 삭제해준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저작권을 침해당한 피해자가 신고할 때까지 사전에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 이런 불법 콘텐츠가 정기적으로 돈을 내는 충성 구독자를 확보하는 중요한 채널이 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전문가들이 시장 점유율과 광고 개수 등을 근거로 분석한 결과, 유튜브는 지난해 구독 멤버십으로만 한국에서 최대 8억5300만달러(약 1조1400억원)를 벌어들인 것으로 추산된다.
유튜브에서 ‘결말 포함’이라고 검색을 하면 ‘1억 조회 수 돌파, 떡상 중인 미쳐버린 존잼 영화(결말 포함)’ ‘넷플릭스에서 백지수표까지 제시했다는 베스트셀러 원작 추천 영드(결말 포함)’라는 제목의 동영상을 상단에서 볼 수 있다. 전자는 영화를 시작부터 결말까지 축약해 보여주는 18분짜리, 후자는 드라마 전편을 몰아보는 52분짜리 ‘패스트무비’ 콘텐츠다. 패스트 무비 콘텐츠는 짧은 시간에 영화나 드라마 한 편을 다 감상한 것 같은 체험을 하게 한다. 올라온 지 1년도 안 된 두 동영상의 조회 수는 각각 138만, 92만. 높은 조회 수를 기록한 이 영상들은 모두 저작권을 어긴 불법 콘텐츠다. 여기서 발생한 수익은 제작사와 유튜브가 절반씩 나눈다.
저작권을 침해한 불법 콘텐츠는 제작자와 플랫폼의 배만 불리는 것이 아니다. 돈과 시간을 들여 콘텐츠를 제작·유통하는 영상 사업자나 미디어 등 관련 산업을 황폐화시키고 있다. 영화 배급사 관계자는 “요즘 대부분의 영화들이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하는 와중에 플랫폼에 영화 요약 영상이 올라오는 걸 보면 피가 마른다”며 “100억을 넘게 들여 만든 작품이 불법 콘텐츠 제작자와 플랫폼의 돈벌이 수단으로 사용되는 게 현실”이라고 했다.
플랫폼들은 저작권자들의 신고가 들어오지 않는 한 선제적으로 조치를 취하는 경우는 없다. 특히 국내에서는 창작자들이 저작권 침해에 대한 손해 배상을 청구하려고 해도 플랫폼에서 영상 제작자의 신원을 밝히지 않아 법적 조치를 취할 수가 없다.
◇저작권 침해 불법 콘텐츠로 돈벌이
구독자 45만2000명을 보유한 한 유튜브 영화·드라마 소개 채널엔 161개의 영상이 올라와 있다. 모든 영상엔 영화나 드라마 제목이 없는 대신에 ‘결말 포함’이란 단어가 들어있다. 제목을 없애 제작자들의 추적을 피하는 것이다. 이 채널의 총 조회 수는 1억7000만회에 육박한다. 영상 한 편당 평균 조회 수는 100만회, 영상 한 편으로 얻는 수익은 400만~500만원으로 추산된다. 영화제작사 대표는 “100만 관객으로 영화배급사가 벌어들일 수 있는 돈은 40억원에 달한다”며 “유튜브에서 결말 포함 영상을 본 사람이 100만명일 경우, 그중 100분의 1인 1만명만 극장에 왔어도 4000만원을 벌 수 있었을 것이다”라고 했다. 유튜버들이 저작권 침해 콘텐츠로 쉽게 돈을 버는 동안 창작자들은 그보다 훨씬 막대한 규모의 손해를 보고 있는 것이다.
창작자들은 피해를 입고도 손해 배상을 받을 방법을 찾을 수 없다. 이들이 저작권을 침해한 가해자를 대상으로 소송을 하기 위해선 플랫폼들의 도움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대부분 해외에 본사를 두고 있는 플랫폼들은 협조를 하지 않는다. 저작권법 소송 전문 이수지 변호사는 “플랫폼 본사가 있는 해외 법원을 통해서 소송을 하는 방법도 있지만 시간과 비용이 너무 많이 들기 때문에 국내에선 아직 소송 사례를 찾아볼 수 없다”고 했다.
◇뉴스 그대로 읽으며 수익 창출
뉴스 콘텐츠도 플랫폼에선 마구잡이로 복제되고 있다. 뉴스를 그대로 읽거나, 방송 클립을 짜깁기해 수익을 올리는 경우다. 특히 최근 몇 년간 유튜브를 중심으로 온라인 플랫폼에서 뉴스를 무단으로 활용해 수익을 거두는 채널이 늘어나고 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이재명 민주당 대표 등 여야 정치인 관련 뉴스를 주로 올리는 유튜브의 한 시사채널은 국내 방송 뉴스와 라디오 인터뷰 영상을 짜깁기한다. 이같이 방송사 뉴스 화면을 그대로 녹화해 콘텐츠를 만드는 것은 저작권법에 위배된다. 이 채널 외에도 종편 방송사가 찍은 정치인들의 행보를 재편집한 방송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경제 관련 뉴스도 마찬가지다. 구독자 104만명을 보유한 한 주식 정보 채널에서는 아예 온라인 기사를 띄워놓고 이를 밑줄 쳐가며 읽는 모습이 나온다. 엄연한 불법이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발간한 뉴스저작권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뉴스는 인사·부고, 주식 시세 등 육하원칙이 명백한 사실만 전달할 때 간단히 사용할 수 있다. 기자가 취재해 작성했거나, 의견이 들어간 기사를 캡처해 띄워놓거나 방송 클립을 사용하는 것은 저작권법 위반 사항이다. 출처를 달아놓아도 마찬가지다.
뉴스저작권을 위탁 관리하는 언론재단은 모니터링 팀을 운영해 저작권 침해 소지가 있는 영상 콘텐츠를 유튜브 등 플랫폼 사업자에 삭제 요청을 하고 있다. 언론재단 뉴스저작권팀 관계자는 “점점 뉴스를 무단으로 활용한 콘텐츠가 우후죽순 늘어나고 있어 모니터링에 애를 먹고 있다”고 했다.
☞패스트무비(fast movie)
장편 영화나 드라마 시리즈를 요약한 콘텐츠. 보통 상영시간이 2시간 이상인 영화는 30분 이내로, 10회 내외 드라마는 2시간 정도로 요약해 보여준다. 원래 영화나 드라마의 결말을 말하지 않고 주요 요소를 간략히 설명하는 방식이었지만, 최근 결말을 보여주거나 저작권 협의 없이 주요 장면만 짧은 영상으로 제작해 플랫폼에 게재해 수익을 올리는 경우가 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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