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피격, 피 부르는 극단의 증오 정치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펜실베이니아주 유세 도중 총격을 받아 오른쪽 귀를 관통당하는 아찔한 일이 벌어졌다. 총성과 거의 동시에 단상으로 뛰어오른 경호원들의 다급한 “엎드려” 외침과 청중들의 비명이 뒤섞이며 유세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생명엔 지장이 없었지만 끔찍한 정치 테러 장면을 전 세계가 생중계로 지켜봤다.
법치국가에서 폭력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유권자들과 활발히 접촉해야 하는 정치인에 대한 테러는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악랄한 범죄다. 하지만 이런 일이 국경을 초월해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다. 2년 전 일본에선 아베 전 총리가 지원 유세 도중 총격을 받아 사망했고, 9개월 뒤 기시다 총리는 사제 폭탄 투척 사건으로 화를 당할 뻔했다. 한국에서도 지난 1월 민주당 이재명 당시 대표가 부산에서 흉기 습격을 받았다. 20여 일 뒤엔 국민의힘 배현진 의원이 중학생이 휘두른 돌에 머리를 10여 차례 가격당했다.
이 사건들의 동기는 제각각이지만 주요 선거가 임박한 상황에서 벌어졌다는 공통점이 있다. 수사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범행 동기를 예단해 온갖 억측과 가짜 뉴스가 난무한 것도 비슷하다. 트럼프 암살 미수 사건 역시 대선을 넉 달 앞두고 벌어졌다. 공화당에선 이번 사건을 바이든 탓으로 돌리는 목소리가 거세다. 바이든이 “트럼프는 어떻게든 막아야 할 파시스트” “이제 트럼프를 겨냥할 때” 같은 언사로 공격한 것이 암살 시도로 이어졌다는 주장이다. 이런 가운데 현장에서 사살된 용의자가 공화당원이라는 미확인 보도도 나오고 있다. 범행 동기가 아직 밝혀지지 않았는데도 무책임한 정치 공세가 분출하고 있다.
이번 사건은 정치 양극화와 극렬 팬덤 현상이 일상이 된 우리 정치 풍토를 되돌아보게 한다. 지금과 같은 분위기에서는 여야의 주요 정치인 누구든 공격 대상이 될 수 있다. 당장 큰 선거가 없다고 안심할 수 없다. 극단적 증오를 싹틔운 정치 토양을 갈아엎지 못하면 불행한 일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 정치권은 양극화 해소는커녕 극단적 대립을 이용해 상대방을 악마화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갈수록 극성 팬덤에 휘둘리는 악순환이다. 양극화가 계속되면 정치 테러의 안전지대도 사라질 것이다. 정치권뿐 아니라 국민 모두에게 불행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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