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2기가 하늘이 한국에 내려준 '큰 기회'일 수 있는 이유 [송의달 LIVE]
이용준 세종연구소 이사장 인터뷰
“한국인들은 한반도 안보와 북한 핵 문제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라 생각하면서 대만 문제, 중국 인권, 남중국해 영토 분쟁 같은 ‘남의 나라’ 문제에는 놀라울 정도로 무관심하다.”
“한국 정부는 중국 진영으로 기울었던 대외 정책 기조를 전환하여 자유민주주의적 세계관과 가치관을 과감하게 실천에 옮겨야 한다. 이를 위한 정부 당국의 용기(勇氣)있는 행동이 필요하다.”
우리나라 최대 민간 외교안보 싱크탱크인 세종연구소를 이끌고 있는 이용준(67) 이사장의 진단이다. 올해 창립 41주년을 맞은 세종연구소 이사장직은 동주(東洲) 이용희 국토통일원 장관, 강영훈 국무총리, 공로명 외무부 장관, 임동원 통일부 장관 같은 당대의 재사(才士)들이 맡아왔다. 2023년 6월 취임한 이 이사장은 북핵 담당 대사, 외교부 차관보 등을 지낸 정통 외교관 출신으로 5권의 북핵·외교 관련 전문서적을 냈다. 필자는 2024년 7월 서울 광화문으로 옮긴 연구소에서 그를 만났다.
◇‘신냉전’이란 돌아갈 수 없는 강 건넌 세계
- 최근 5~6년 만에 세계 정세, 국제 질서가 확 바뀐 것 같다. 예전과 무엇이 다른가?
“2017년 미국과 중국간의 패권 경쟁으로 시작된 신냉전이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세계로 확산됐다. 자유민주 국제 진영과 중국·러시아·이란·북한 등 권위주의 진영으로 양분된 신냉전은 세계화 시대와 본질적으로 다르다. 최근 북한과 러시아간의 준(準)군사동맹 부활도 신냉전 체제의 한 부산물이다. 세계는 이미 ‘신냉전(New Cold War)’이라는 돌아갈 수 없는 강(江)을 건넜다고 본다.”
그는 “작금의 미·중 대결이 미국의 승리로 끝나더라도 과거와 같은 세계화(世界化) 시대는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미국의 대(對)중국 압박과 견제는, 중국이 다시는 도전을 꿈도 꾸지 못할 정도로 완전 몰락할 때까지 지속될 전망이다. 따라서 우리도 이젠 중국에 대한 미련과 환상(幻想)을 버리고 역사의 흐름을 직시(直視)해야 한다”고 했다.
- 1990년대부터 30여년 지속된 세계화 시대와 지금의 신냉전 시대를 비교한다면?
“두 시대의 근본적 차이점은 개별 국가 간 관계가 아니라 진영(陣營) 대 진영의 관계로 국제 질서가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또 국제정치가 합리적 논리나 개별 국가의 이익이 아닌 진영의 공동 이념과 이익에 좌우되며, 진영의 안보와 이익이 개별 국가의 안보와 이익에 우선한다는 점도 특징적이다. 이런 현상은 이미 미·중 대결과 우크라이나 전쟁 과정에서 수없이 발생하고 있다.”
◇자유민주 진영에도 진정 속하지 않는 한국
- 급변하는 국제 질서에 한국은 잘 대응하고 있는가?
“한국은 세계 10위권 경제국이자 세계 6위 군사 강국이지만 국력에 걸맞는 주장을 하지 못하고 ‘외교적 모호성’ 뒤에 숨어 상황에 순응(順應)하는 선택을 해 왔다. 그 결과 중국은 한국에 일방적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제재를 강행했고, 트럼프 전 대통령은 과거에 주한미군 철수를 가볍게 추진하려 했다. 최근엔 러시아가 멋대로 북·러 동맹조약을 부활했다.”
-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나?
“가장 큰 이유는 신냉전이란 험난한 세계가 펼쳐지는데, 한국 정부는 확고한 가치관(價値觀)도 원칙(原則)도 계획(計劃)도 없이 과거의 세계화 시대가 다시 돌아올 날을 막연히 기다리면서 자유민주 진영과 중국·러시아 진영 어디에도 진정 속하지 않는 모호(模糊)한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신냉전으로 진영간 대립이 굳어지고 북·러 동맹조약까지 부활했는데, 한국은 중국, 러시아에 대한 애착에서 못 벗어나고 과거의 기억과 미련 속에 살고 있다.”
- 2023년 5월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의에서 한국 정부는 한미일 3자 안보협력 체제를 결성하지 않았나.
“3자 안보협력체 결성은 중국 진영으로 기울었던 한국 외교의 큰 변화였다. 그러나 그것이 아직 실천적 행동으로 연결되지는 않고 있다. 미국, 일본 등은 국내 정치 지형 변화에 따라 언제든 한국이 과거처럼 중국·북한 쏠림으로 되돌아가는 사태를 우려하고 있다. 두 나라는 정상회의 후 1년 넘게 한국 정부의 태도를 지켜보면서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 쿼드에 빠진 건 ‘중국의 첨병’ 노릇 때문”
이용준 이사장의 이어지는 말이다.
“작년 봄에 한국의 G8 가입 얘기가 나왔었는데, 만일 내가 G7 국가 외교 책임자라면 한국의 가입에 선뜻 동의하기 어려울 것이다. 한국은 모호한 이념적, 외교적 정체성(正體性) 때문에 세계 자유민주주의 진영의 최고 수뇌부인 G7으로부터 아직 확실한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 2020년 8월 출범한 미국·일본·인도·호주 등 4개국 안보동맹체인 쿼드(Quad)에 한국이 빠진 것은 당시에 한국이 ‘중국 진영의 첨병(尖兵)’ 노릇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 한국 외교의 급소(急所)가 미·중 사이에서 양다리 걸치기라는 말인가?
“그런 셈이다.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을 통해 해결한다는 이른바 ‘안미경중’에 사로잡혀 있는 한국 정부 관료들이 아직도 많다. 그러나 중국의 미국 추월 가능성은 이미 사실상 물 건너갔다. 더욱이 현재 한국 입장에서 미국은 우리의 최대 무역 흑자국이지만, 중국은 최대 무역 적자를 안겨주는 나라이다. 우리와의 무역 규모도 미국이 중국 보다 많다. 중국에 곁눈질하면서 환상과 미련에 사로잡힐 때가 아니다.”
- 하지만 한국의 지식인·엘리트·정치인들은 중국에 저자세이다. 왜 그런가?
“한국인의 대(對)중국 비호감도는 80%가 넘어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런데도 한국 지도층이 중국에 저자세인 이면에는 친(親)중국화 공작용으로 중국이 쳐놓은 ‘이익(利益)의 사슬’과 ‘위협(威脅)의 사슬’에 발목 잡힌 한국 지식인·엘리트·고위 인사들이 많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中의 ‘이익과 위협 사슬’에 발목잡힌 한국 인사들
그는 “우리는 그동안 중국의 고압적이고 비우호적인 태도에 제대로 항의도 못했고 상호주의적 대응도 하지 못했다. 경제 관계의 중요성을 구실로 침묵하고 굴종하면서 중국의 환심을 사는 데 급급했다. 그 결과 한국은 중국이 만만하게 취급해도 되는 나라가 돼 버렸다”며 이렇게 밝혔다.
“왜곡된 한중(韓中) 관계를 정상화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한국 스스로가 가치관과 원칙이 확고한 나라, 위협이나 경제적 이익에 굴복하지 않는 나라, 자유민주 국제 진영에서 확고한 지분과 발언권을 갖고 있는 나라가 되는 것이다. 그리되면 한국을 대하는 중국, 러시아의 태도도 많이 달라질 것이다.”
- 일부 국내 전문가들은 한국이 미·중 사이에서 프랑스, 독일처럼 전략적 자율성을 가진 외교를 주문한다.
“신냉전 체제 이전에 독일, 프랑스 등이 시행한 대(對)중국 독자 외교는 경제, 무역 등 일부 측면에서 미국보다 유화적이었다. 그러나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그들은 중국과의 밀월 관계에도 불구하고 본연(本然)의 원칙과 가치관을 포기하지 않았다. 중국 인권(人權) 문제와 남중국해 불법 점유를 앞장서 비판했고, 미국의 남중국해 ‘항행의 자유 작전’에 함대를 파견해 중국 함대와 대치(對峙·서로 맞서서 버팀)하기도 했고, 중국 반(反)체제 인사를 초청하기도 하고, 대만에 무기를 판매하기도 했다.”
◇“중국에 순종하면 중국 예속화 앞당겨져”
그는 “만일 한국의 대중(對中) 독자외교가 그런 수준의 선진국형 대(對)중국 관계 설정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미국도 반대하지 않을 것이며, 중국도 한국을 쉽사리 대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중국에게 해야 할 말도 못 한 채 순종하고 환심을 사서 경제적 이익을 취하려는 게 목적이라면, 이는 한국의 안보 약화와 대(對)중국 예속화를 앞당길 뿐”이라고 했다.
- 전기차, 우주, AI(인공지능), 반도체, 조선 등 산업 전 분야에서 중국이 도약하고 있는데.
“이는 중국 정부가 막대한 보조금 지급과 공산당의 애국(愛國) 소비 조장, 한국·서방 등의 경쟁 기업에 대한 노골적인 차별 대우로 만든 억지 성과이다. 중국의 출생 인구 감소와 폐쇄적인 경제 시스템은 필연적으로 성장 한계를 초래하며 이로인해 미·중 패권 경쟁은 중국의 패배로 귀결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중국의 패권 도전 가능성이 완전 소멸될 때까지 중국 견제의 고삐를 늦추지 않을 것으로 본다.”
- 올해 11월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당선된다면 한국은 곤욕을 치를까?
“많은 이들이 재앙이 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트럼프의 복귀가 한국을 부흥시킬 큰 기회라고 본다. 1960년대 베트남 파병, 1970년대 중동 특수(特需), 1990년대 한중(韓中) 수교에 이은 네 번째 놓칠 수 없는 기회이다. 신냉전 체제가 심화되는 가운데, 한국은 중국이 없는 자유민주 국제 진영의 공급망에서 중국을 대체하는 핵심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방위비 분담금 5배 인상 요구는 협상용 카드”
- 트럼프는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대폭 인상을 요구하고 주한미군 철수론까지 내놓았는데.
“트럼프 1기에서 제기된 방위비 분담금 5배 인상 요구는 협상용 카드일 뿐이다. 5배 요구를 해놓고 실제로는 지금의 두 배(倍) 정도로 높여줘도 트럼프가 만족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두 배 정도로 분담금을 올리면, 한국은 일본처럼 주한미군의 현지 주둔비용, 즉 국내 미군시설 건설비, 한국인 노동자 임금, 국내 수송비용 등 3개 항목을 거의 전액 부담하게 된다. 이 3개 항목의 돈은 모두 한국인에게 돌아간다. 이보다 규모가 큰 주한미군 봉급, 무장비용, 훈련비, 운영비 등은 방위비 분담 대상이 아니므로 마땅히 미국이 부담해야 한다.”
- 방위비 분담금 대폭 인상에 거부감을 갖는 한국인들이 제법 많은 것 같다.
“트럼프의 이런 요구는, 미국이 부강(富强)할 때 한국에 조건 없이 군사·경제 원조를 제공하던 것과 비교하면 치졸한 요구처럼 보인다. 하지만 미국은 지난 수 십년간 국력이 크게 위축됐다. 제한적인 경제력과 군사력으로 세계의 경찰 역할을 수행하려면 역할·비용 분담이 불가피하다. 한국 여론주도층은 우리의 경제력에 상응하는 부담 쪽으로 발상을 전환해야 한다. 한국이 미국의 안보 지원에 상응하는 비용 지불을 원하지 않는다면, 주한미군 없이 자주국방을 이루면 된다. 선택은 전적으로 한국의 몫이다.”
- 트럼프의 재선이 어떤 이유에서 한국에 큰 기회인가?
“한국과 중국은 전통 제조업과 첨단 업종을 막론하고 가장 많은 분야에서 경쟁하며 충돌하고 있다. 한국이 세계 1위이던 디스플레이, 조선 등에서 중국은 한국을 이미 떠밀어냈다. 도널드 트럼프 후보는 중국 경제를 가장 확실하고 강하게 제압할 미국 정치인이다. 트럼프가 중국 제압에 앞장선다면, 그는 한국 경제와 산업을 중국의 추격으로부터 구원해주는 구세주(救世主)가 될 수 있다.”
◇“몰락하는 중국 시장 매달리다간 ‘중국의 속방’ 될 것”
이어지는 그의 말이다.
“트럼프 1기 시절 미국 정부가 중국 IT기업인 화웨이, ZTE 등을 퇴출시키는 바람에 한국 기업은 기술 초격차를 위한 시간을 벌고 시장 판매의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당시 미국의 대중국 견제가 없었다면 아마도 삼성전자는 세계 휴대폰 시장에서 이미 도태(淘汰)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때 보다 더 강력하고 전면적인 중국과의 디커플링(decoupling·단절)을 공약으로 내건 트럼프의 재림(再臨)은 하늘이 한국에 내려준 기회일 수 있다. 중국을 제외한 자유민주 진영에서 한국은 제조업 분야의 패권을 장악할 수 있다. 자유민주 진영에서 제조업 경쟁력을 갖춘 나라 가운데 한국은 독일, 일본, 대만 보다 앞서 있다.”
이용준 이사장은 “한국은 몰락하는 중국 시장에 계속 매달리다가 선진자본주의 시장을 모두 잃고 중국의 속방(屬邦·법적으로만 독립국이고 정치·경제·군사 면에서 다른 나라에 지배당하는 나라)으로 전락할 수 있다. 반대로 한국은 중국 시장을 포기하는 대신, 중국 상품이 추방된 선진자본주의 시장에서 블루오션(blue ocean)을 만끽할 수도 있다. 지금 선택에 따라 대한민국의 운명이 하늘과 땅 만큼 달라진다”고 했다.
- 트럼프 후보가 재집권할 경우, 한국의 독자적인 핵무장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는데.
“미국이 한국의 독자핵무장을 용인할지도 모른다는 국내 일각의 생각은 비현실적이고 자기중심적인 가정(假定)이다. 미국이 한국의 핵무장을 묵인하면 이란, 튀르키예, 사우디, 우크라이나, 독일, 일본, 대만, 브라질 등의 핵무장을 저지할 명분이 없어진다. 세계적 핵무장 도미노가 발생할 개연성도 크다. 미국이 그런 선택을 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한국의 핵무장은 현실과 동떨어진 우리만의 소박한 희망일 뿐이다.”
그는 “설사 트럼프가 재집권해도 미국의 입장이 달라질 가능성은 희박하다. 더욱이 미국이 한미동맹과 주한미군을 통해 한국에 대한 방위 지원을 지속하는 상황에서 한국의 독자 핵무장을 용인하거나 묵인하는 시나리오는 상상도 하기 어렵다”고 했다.
◇한국만 중요하다고 믿는 ‘한반도 천동설’
- 한국이 제일 중요하다는 착각 아래 다른 나라 일엔 극도로 무관심한 ‘한반도 천동설’이 요즘 유행한다.
“세계 어느 나라를 가더라도 그 나라 주요 신문의 종합1면 뉴스는 대부분 국제적 주요 관심사들이 장식한다. 한국처럼 일간지 1면을 온통 국내뉴스로 도배하는 나라는 찾기 힘들다. 그 때문인지 많은 한국인은 미국과 국제사회가 한국 안보나 북핵 해결을 위해 지원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면서도 국제사회의 더 중요한 문제에 관여하고 기여하는데 매우 소극적이다. 이는 한국인들이 개발도상국 시대의 이익(利益)지향적 타성에 갇혀 가치(價値)지향적 선진국 세계관으로 전환하지 못한 때문이다.”
- 올해로 동맹 70주년을 맞은 한미 관계도 마찬가지인가?
“그러하다. 미국은 우리에게 점령군도 아니지만 조건없이 아가페적 사랑을 베푸는 산타클로스도 아니다. 미국과 동맹국은 본질적으로 상호적 협력과 의존의 관계다. 동맹국은 미국의 지원을 거부할 자유가 있으나 미국의 지원을 선택할 경우 그에 따른 반대급부를 제공하는 게 마땅하다. 한미동맹 조약에도 상호주의적 지원 의무가 명기돼 있다.”
이용준 이사장은 이렇게 덧붙였다.
“미국의 국력 위축이 심각한 상황에서 주한미군을 온전하게 유지하려면 한국은 그에 따른 주한미군 현지비용을 미국에 지불하고 우크라이나, 대만 문제, 남중국해 등에서 상호주의에 따른 안보상 기여를 제공해야 한다. 1960년대와 2000년대 초 병력 부족에 시달리던 미국이 주한미군 철수 또는 감축을 하려 하자, 박정희 정부와 노무현 정부는 각각 베트남 파병과 이라크 파병으로 미국에 안보상 기여를 했다. 미국의 아시아 동맹국 중 일본은 주로 군사비용 부담으로, 호주는 해외 파병으로 미국에 상호주의적 기여를 제공한다. 한국도 미국의 안보 지원에 상응하는 비용 지불 또는 군사적 기여 중 하나는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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