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경제

김 여사의 그림자

太兄 2024. 7. 13. 17:23

[박정훈 칼럼] 김 여사의 그림자

크고 작은 스캔들과
부주의가 잇따르면서
'몰카'에 찍혔던
부적절한 발언들이
진짜 아니었냐고
의심 살 지경이 됐다…
불길하고 또 불길하다

입력 2024.07.13. 00:15
대선 국면인 2022년 12월 김건희 여사가 경력 위조 등에 대한 사과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 회견 후 윤석열 당시 대선 후보의 지지율이 10% 떨어졌다고 김 여사는 한동훈 전 위원장에게 보낸 문자에서 주장했다. /TV조선

‘김건희 여사 문제’는 늘 예기치 않은 곳에서 튀어나와 끊임없이 국민을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지난달 국민권익위가 김 여사 명품백 사건을 고발 없이 종결 처리하자 권익위 게시판에 항의 글이 쏟아졌다. “대통령 부인께 300만원 상당 전통 엿을 선물하고 싶은데 괜찮을지 문의드린다”는 식의 비아냥거리는 말이 많았는데, 그 와중에 권익위가 내놓은 법 해석이 기름을 끼얹었다. “청탁금지법은 직무와 관련 없는 경우 공직자 배우자의 금품 등 수수를 제한하지 않는다”며 조롱성 문의에 ‘진지한’ 답변을 단 것이다. 직무 관련성이 없다면 받아도 된다는 뜻이었다.

권익위 답변은 ‘배우자는 공직자 직무와 관련해 금품을 받아선 안 된다’는 청탁금지법 제8조 4항을 반대 해석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조항은 공직자 배우자도 법 적용 대상임을 명시한 규정이다. ‘받지 말라’는 데 방점이 찍혀있지 직무 관련성이라는 애매한 조건 아래 면죄부를 주려는 취지가 아니다. 권익위는 과거 비슷한 문의에 “배우자는 공직자 직무와 관련해 100만원 이상 금품을 받을 수 없다”고 답변했다. 같은 법 해석이라도 ‘이러면 안 된다’와 ‘저러면 된다’는 천지차이다.

뉘앙스가 달라진 것은 물론 김 여사 사건 때문일 것이다. 권익위로선 명품백 사건 종결의 정당성을 뒷받침하려 ‘받아도 되는 경우’를 강조하고 싶었을 것 같다. 그 결과 부패의 회색지대를 막으려 제정된 청탁금지법의 취지를 무색하게 만들고 말았다. 권익위가 김 여사 사건을 방어하려다 부패의 ‘배우자 루트’를 열어 주었다는 소리가 무성하다. 대통령은 모든 국정의 총괄자인데 대통령 직무와 관련 없는 게 어디 있냐는 비판도 나온다. 김 여사 문제가 반부패 정책의 기조마저 흔든 것이다.

집권당 대표 선거에도 ‘김 여사 문제’가 등장했다. 난데없는 ‘읽씹(읽고 무시함)’ 논란으로 난장판이 벌어졌지만, 배신이냐 아니냐보다 더 충격적으로 느껴진 것이 있었다. 우리가 모르는 물밑에서 김 여사의 독자적 소통 채널이 가동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공직자가 아닌 대통령 부인의 모든 공적 활동은 대통령실을 통해 대통령 업무의 일환으로 이뤄져야 한다. 그런데 공적 권한 없는 대통령 부인이 사적 채널을 통해 대국민 사과라는 국정 현안을 여당 대표와 직접 협의하려 했다. 국정 개입 시비를 부를 수 있는 부적절한 행위였다.

김 여사가 문자를 보낸 것은 한동훈 당시 비대위원장 측에서 명품백 문제를 거론한 직후였다. ‘마리 앙투아네트’ 비유가 나오고 한 전 위원장이 “국민이 걱정할 만한 부분이 있었다”고 거드는 과정에서 김 여사가 “사과하고 싶다”는 문자를 보냈다. 그러나 김 여사가 공개 사과할 의사가 있었다면 대통령실 정무 라인과 상의해야 마땅했다. 대통령실을 통해 사과 방식과 절차를 정해 실행하면 될 문제지, 한 전 위원장 동의를 구할 이유가 없었다. 사적으로 동의를 구해서도 안 됐다.

 

김 여사는 문자에서 사과의 역효과를 언급했다. “대선 정국에서 사과 회견 했을 때 지지율이 10% 빠졌고” “사과하면 진정성 논란에 책임론까지 불붙듯 이슈가 커질 가능성” 등을 말했다. 사과한다고 선거에 불리해지는지도 의문이지만, 정치와 무관해야 할 대통령 부인이 고도의 정치적 이슈에 대해 스스로 정무적 판단을 내렸다는 사실 자체가 놀랍다. 김 여사는 ‘댓글 팀’ 얘기도 꺼냈다. “제가 댓글 팀을 활용해 위원장님 비방을 시킨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결코 그런 일은 없었고 앞으로도 있을 수 없다”고 했다. ‘댓글 공작’ 루머에 대통령 부인이 등장한다는 것부터 보통 일이 아니다.

이 문자를 보내고 이틀 뒤 윤석열 대통령은 비서실장을 통해 한 전 위원장이 물러날 것을 요구했다. 선거판을 뒤집은 사퇴 파동에 김 여사도 발을 들이밀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도 그렇다. 여당 대표 선거를 둘러싼 이전투구에 김 여사가 당사자로 참전한 셈이 됐다. 대통령 부인이 정치 게임의 플레이어가 되어 논란의 한복판에 선 모양새다.

문자 사태가 더욱 예사롭지 않은 것은 그간 불거진 김 여사의 문제 발언들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지난 대선 때 김 여사는 좌파 매체 기자와 한 통화에서 “우린 원래 좌파였다” “내가 정권 잡으면 거긴(일부 매체) 무사하지 못할 것”이라고 한 발언이 녹음돼 공개됐다. 친북 목사의 함정에 빠져 “제가 이 자리에 있어 보니” “제가 남북 문제에 나설 생각”이라고 말한 것도 몰카에 찍혔다. 허언 혹은 실언인 줄 알았던 이 말들이 이젠 진짜 아니냐는 의심을 살 지경이 됐다.

시중엔 모 비서관이 김 여사 측근이고, 모 기관장이 김 여사 라인이라는 식의 소문이 파다하다. 용산발(發) 뉴스 중 이해되지 않는 것은 다 김 여사가 개입했다는 말도 나온다. 근거 없는 낭설이라 믿고 싶지만 김 여사의 부적절한 처신이 의혹을 증폭시키는 것이 사실이다. 크고 작은 스캔들이 잇따르면서 국정 곳곳에 김 여사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는 인상이 굳어졌다. 불길하고 또 불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