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과 싸우다 숨진 빨치산, 민간인 학살 피해자로 둔갑"
진실화해위 결정 8건 오류 드러나
1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2005~2010)가 6·25전쟁 전후 우리 국군과 교전하다 죽은 빨치산(조선인민유격대) 대원 등 적대 세력이 ‘민간인 학살 피해자’라는 결정을 내린 것으로 11일 나타났다. 조선노동당 산하에서 활동한 조선인민유격대는 흔히 빨치산으로 불리는데, 노동당 지시를 받아 소백·태백산맥, 지리산 등지에서 무장 활동을 하며 대한민국 후방 교란, 민간인 학살 등을 자행했다.
1기 진실화해위는 2008~2009년 빨치산 등 적대 세력 소속 인물 최소 8명에 대해 ‘민간인 학살 피해자’라고 판단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엔 대한민국 국군과 교전 중 사망한 빨치산 대원 2명도 포함됐다. 진실화해위의 활동 근거인 과거사정리기본법은 6·25 전후 불법적으로 벌어진 민간인 집단 사망·상해·실종 사건을 진실 규명 대상으로 규정한다. 그런데 전투 중 상대방을 죽이는 행위는 적법 행위로 간주, 이때 사망한 전투원은 민간인으로 분류하지 않는다. 빨치산은 북한 소속 군인으로 간주하는데, 이들을 ‘민간인’으로 판단한 것이 적합했느냐는 지적이 제기된다.
2009년 12월 발간한 1기 진실화해위 보고서를 보면, 전남 영광 불갑산에서 빨치산 대원으로 활동하며 1949년 2월 국군과 전투 중 사망한 정모(24)씨를 민간인 학살 피해자로 판단했다. “불갑산에서 좌익 활동을 하던 중 밤에 내려왔다가 경찰에 연행돼 총살당했다”는 참고인 진술이 인정됐다. 역시 빨치산 대원으로 활동하면서 1951년 2월 우리 군과 교전하다가 죽은 김모(26)씨 역시 ‘민간인 피해자’로 인정됐다. 빨치산 활동 사실은 보고서에 포함되지 않았고 “피난을 가던 중 토벌 작전 후 국군 총격으로 행방불명됐다”는 진술이 근거가 됐다.
이 밖에 대한민국 정부의 경찰서를 습격하고 빨치산 치하 분주소장(파출소장)을 지낸 정모(24)씨도 우리 군경 민간인 학살의 피해자로 판단됐다. 자살로 사망한 빨치산 대원 정모(27)씨가 경찰에게 총살당했다고 판단하기도 했다. 경찰에 자수하러 갔다가 총격으로 사망했다는 참고인 진술이 근거다.
이들의 빨치산 행적은 ‘전남 로동신문’ 주필을 지낸 고 정관호씨의 ‘전남유격투쟁사’(2008)에 기술돼 있다. 이 책은 6·25 전후 빨치산의 활동 내용, 인명록 등을 망라한 사료(史料)로 꼽힌다. 진보 진영의 저명 학자 한홍구 교수가 “빨치산 투쟁사에 대한 제대로 된 역사서가 아직 없다. 이런 모든 어려움을 뚫고 나온 역사서”라고 평가할 정도다. 하지만 이 책이 출간된 뒤에도 진실화해위는 사료 교차 검증을 하지 않고 유족 등 참고인 진술에만 의존, 빨치산이 ‘민간인 학살 피해자’로 둔갑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진실화해위의 검증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50년 전북 고창 일대에서 11사단이 민간인 273명을 집단 학살했다고 2008년 판단했으나, 가해 주체엔 빨치산도 포함돼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국군에게 총살됐다고 들었다’는 진술이 ‘사실은 빨치산이 총살했다’는 식으로 번복됐다는 것이다. 2009년 국방부는 이 결정에 이의 제기를 했고, 이후 진실화해위는 오류를 인정했다.
유호열 고려대 북한학과 명예교수는 “피아(彼我) 식별이 명확하지 않았던 대혼란기가 조사 대상인 만큼, 객관적이고 균형 잡힌 시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했다. 김광동 진실화해위원장 역시 “우리 군경에 의한 억울한 희생을 반드시 가려내야 한다”면서도 “진술뿐 아니라 정확한 기록에 근거해 구체적으로 상황을 검증해야 한다”고 했다. 일각에선 “빨치산 신분이었음에도 국군과 직접 교전 중 사망한 경우가 아니라면 민간인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그러나 대한민국 국가 전복을 목표로 한 빨치산 소속 인물을 민간인으로 보기 어렵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빨치산
정식 명칭은 조선인민유격대. 1946~1955년 태백·소백산맥, 지리산 일대에서 국가 전복을 목적으로 게릴라전을 수행한 조선노동당 산하 무장 테러 조직. 빨치산은 러시아어 ‘파르티잔(비정규 저항군)’이 변형된 말이다.
☞과거사정리기본법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의 존립 근거. 일제강점기부터 권위주의 통치 때까지 대한민국에 적대적인 세력이나 대한민국 정부의 부당한 공권력 행사로 희생된 사람들의 진실을 규명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러나 대한민국 국군과 북한군의 교전 중 사망한 적군은 ‘민간인’이 아니라고 보므로 진실 규명에 포함하지 않는다.
'사회, 경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국회 다수당의 헌법 경시 계속되면 나라 근간 흔들린다 (2) | 2024.07.12 |
---|---|
지질硏 "배터리 핵심인 리튬 광상, 울진·단양에 있을 가능성" (0) | 2024.07.12 |
'불법 대북송금·이화영 뇌물' 김성태 실형, 법정구속은 면해 (0) | 2024.07.12 |
싱크로율 98% 韓·日 운명 공동체, 尹·韓은 몇% 일치할까 (0) | 2024.07.11 |
韓 반도체, 전력난 용수난 인재난 이어 이제 파업난까지 (1) | 2024.07.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