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러시아, 중국, 이란의 "악의 동조(The Alliance of Evil)"
송재윤의 슬픈 중국: 변방의 중국몽 <37회>
“악의 축”이 아니라 “악의 동조”
푸틴과 김정은이 체결한 “포괄적 전략동반자 관계 조약”을 두고 서방 언론의 비판이 날카롭다. 특히 맥스 부트(Max Boot) 미국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의 워싱턴포스트(WP) 6월 20일 자 칼럼 한 편이 이목을 끈다. 부트는 지난해 4월 23일 “한국의 핵무장, 워싱턴이 아니라 서울의 결정”이란 파격적 칼럼에서 한국의 핵무장을 사실상 지지했던 인물이다. 이번 칼럼에서 그는 푸틴과 김정은의 군사·외교적 결탁을 비판하면서 북·중·러·이란 4국이 이미 “악의 동조(同調, alliance of evil)”를 이뤘다고 주장했다. 왜 악의 동조인가?
2002년 1월 29일 조지 부시(George W. Bush) 전 미국 대통령은 이란, 이라크, 북한을 묶어서 “악의 축(axis of evil)”이라 했다. “축”이란 단어를 들으면 미국인들은 대번에 2차대전 당시 영·미·중·소 연맹국(Allies)에 맞섰던 독·이·일 추축국(Axis)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이라크 침공을 앞둔 부시는 구소련과 동구 공산권이 줄도산하면서 자유 진영의 승리를 낙관하던 미국인들에게 2차 대전의 악몽을 일깨우려 했다. 그 발언의 세계적 파장이 컸으나 정확한 표현일 순 없었다. 당시 그 3국은 군사동맹도 아니었을뿐더러 이란과 이라크는 1980년대 서로 전쟁까지 벌였기 때문이다.
평양에서 만나 러시아제 최고급 리무진 아우루스(Aurus)를 번갈아 몰며 국제사회를 조롱하는 푸틴과 김정은의 위험한 조약을 보면서 맥스 부트는 북·중·러·이란 4국이 “악의 축”이 아니라 “악의 동조”를 이뤘다고 일갈했다. 이들 네 나라는 나토나 바르샤바 협정(1955년 구소련과 동구 7개국이 체결한 공동방위조직)과 같은 공식적 안보 동맹을 맺지는 않았지만, 미국과 그 동맹국들을 흔들려는 열망으로 똘똘 뭉치고 있다. 자유적 국제질서를 위협하는 독재국가 4국이 반미(反美)의 기치 아래 서로 밀고 끌어주는 형국이다.
북한은 러시아에 수십 개의 단거리 미사일과 거의 5백만 개의 포탄을 제공해왔고, 러시아는 북한에 값싼 기름과 가스를 주고 핵무기의 고도화를 방조한다. 북한과 같이 러시아에 무기를 조달해온 이란은 현재 러시아 땅에 자폭 드론 생산공장까지 지어서 가동하고 있다. 러시아는 이란에 러시아제 첨단 무기를 제공해 왔고 이란의 위성까지 궤도에 올려주었다.
2015년 이후 러시아는 이란과 동맹 관계인 전체주의 경찰국가 시리아의 독재자 바샤르 알-아사드에게 공군력을 지원하여 내부의 반란을 진압할 수 있게 했다. 나아가 러시아는 아사드 편에 서서 싸웠던 레바논의 테러 조직 헤즈볼라와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헤즈볼라의 테러 활동에 이란과 시리아가 돈을 대고 있음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이란은 아직 핵보유국은 아니지만 최근 핵무장에 필요한 여러 시설을 갖추고 핵클럽을 기웃거리고 있다. 중·러가 이끄는 “악의 동조”는 어쩌면 북한에 이은 이란의 핵무장으로 완성될 수 있다.
중국은 러시아에 직접 무기를 대진 않았으나 반도체와 기계 장비 등을 제공해왔다. 2022년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할 직전부터 푸틴과 시진핑은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만나서 독재자들 특유의 브로맨스(bromance)를 과시했었다. 계속되는 중국의 경제적·기술적 지원이 없었다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결코 칠 수 없었다. 자유주의적 국제질서에 맞서는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을 끌어안으며 이란을 감싸주고 있는 형국이다. 이 엄혹한 상황을 타개할 묘수는 없는가?
북·중·러의 결탁, 지속 가능한가?: 낙관론 대 비관론
북·러 조약을 보는 중국공산당의 시선은 이중적이다. 6월 19일 푸틴과 김정은이 화려한 외교 쇼를 연출하자 중국공산당 기관지들은 말을 아끼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그렇다고 중국과 러시아 사이에 큰 틈이 벌어졌다고 볼 순 없다. 며칠 전부터 중국 정부와 학계 전문가들이 북·러의 반미 전선을 옹호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북·중·러 3국 사이를 벌리려는 미국을 비난하면서 이들은 북·러의 연대가 동북아 지역의 평화와 안정 유지에 기여한다는 주장을 쏟아내고 있다. 북한 문제를 놓고서 러시아와 중국 사이에 긴장이 조성되는 측면이 있지만, 1960~70년대의 중·소 분열과는 전혀 다른 양상임엔 틀림없다.
북·중·러·이란의 불길한 결탁을 보는 서방 세계의 시선은 크게 보면 낙관론과 비관론으로 나뉜다. 낙관론의 근거는 미주, 유럽, 아시아 등 자유 진영에 대한 중국 경제의 의존도가 매우 높다는 점이다. 오늘날 중국은 고립된 대륙이 아니라 고도의 기술력을 갖추고 세계 제2위의 규모를 자랑하는 경제 대국이다. 중국의 교역국 중에서 1위가 미국, 2위가 일본, 3위가 한국이다. 블록별로 따지면, 동남아시아의 아세안(ASEAN)이 1위이고, 유럽연합이 2위이다. 체제와 이념이 달라도 자유 진영은 중국과의 경제적 공조를 지속하고 있음은 중국이 냉전의 늪에 함몰될 수 없는 가장 중요한 이유다. 중국 외교 전랑(戰狼)들이야 거친 발언을 이어가지만, 세계 시장을 포기하고서 중국 경제의 지속적 성장을 꾀하긴 어렵다.
물론 4209km의 국경선을 공유하는 러시아와 중국은 현재 표면상 반미(反美) 연대를 구축하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20일 앞둔 2022년 2월 4일 푸틴과 시진핑은 손을 맞잡고 중·러 양국이 “무제한의 협력관계(‘no-limits’ partnership)”를 선언했다. 시진핑의 뒷배가 없었다면 푸틴은 쉽게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수 없었음이 분명하다. 전쟁 발발 후 러시아는 중국에 기름, 액화 천연가스 등 값싼 지하자원을 수출하고, 중국은 러시아에 돈과 기술을 제공해 왔다. 2010년 러시아의 무역 총량에서 대중국 무역의 비중은 10%에 불과했는데, 2022년에는 18%까지 올라갔다.
그럼에도 중국은 우크라이나와 교전 중인 러시아에 대한 무기 지원을 자제하면서 오히려 공개적으로 우크라이나의 영토 보전을 지지해 왔다. 중국과 러시아의 사이에 이미 미세한 균열이 있음을 보여준다. 중국이 기껏 담장 위에 앉아서 양쪽 눈치를 살필 뿐, 러시아의 편에 서서 반서방의 전선을 구축할 만큼 무모하진 않다. 중국으로선 미국과 유럽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는 없고, 특히 한·미·일 공조가 강화되는 현실을 방치하기도 어렵다. 북·러의 결탁에 중국이 대뜸 나서 삼각동맹을 꾀한다면 한·미·일 공조, 쿼드(QUAD, 미·일·인·호 4자 안보 협의체)와 미·영·호의 오커스(AUKUS, 미·영·호 3각동맹)의 명분이 더 강화된다.
정치 체제와 무관하게 중국 경제는 이미 자유주의적 국제질서에 의존하고 있다. 일례를 들자면, 2023년 12월 8일 중국-유럽연합의 정상회담에서 시진핑은 중국을 경계하는 유럽의 “디리스킹(de-risking)” 정책을 풀어달라 요구했지만, 유럽 대표단은 외려 중국이 경제적 영향력을 발휘하여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러시아를 혼내주라 촉구했다. 이 에피소드는 중국이 유럽 시장을 원하는 만큼 유럽은 중국에 보편가치와 국제적 규범을 요구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바로 그러한 큰 그림 위에서 낙관론자들은 자유 진영의 국가들이 겉으론 단단해 보이는 중·러의 틈새를 벌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1960년 이후 미국은 중·소 분열의 틈을 파고들어 결국 중국을 개혁개방으로 이끌었고, 그 결과 구소련은 해체되었다. 낙관론자들은 미국을 위시한 자유 진영이 같은 방식으로 중·러 사이에 쐐기를 박고서 “악의 동조”를 분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낙관론에 맞서는 비관론자들의 논리 또한 강력하다. 표면상 러시아에 대한 중국의 지지가 미온적으로 보이지만, 실제로 양국은 1960~80년대보다 더욱 강력한 경제적 공생관계 위에서 강력한 반미(反美) 전선을 구축했다.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 이후 중·러의 무역 총량은 가파른 증가세를 보였다. 2022년 중·러 무역량은 1900억 달러로 36%나 급증했고, 2023년에는 다시 2400억 달러로 다시 25% 증가했다. 러시아의 대중국 수출품은 주로 석유, 파이프라인 가스, 액화 천연가스, 석탄 등 에너지 상품인데, 중국이 서방의 제재를 뚫고 경제적 자립도를 높이는 데 큰 도움을 준다.
무엇보다 중·러가 합동 군사작전을 벌이고 있다는 점이다. 2022년 9월 러시아가 시베리아 극동에서 군사 훈련을 펼칠 때 중국은 3000명의 병력을 보내 공동 훈련을 펼쳤다. 그 이후로도 중·러 해군은 여러 차례 공동 훈련을 벌였다. 특히 2023년 중·러는 3차례나 해군 훈련을 펼쳤고, 2022~2023년 아시아에서 네 차례에 걸친 핵 전투기를 동원하여 아시아 지역을 공동 순찰했다. 미국과 동맹국의 군사 훈련에 비하면 미약한 수준이지만, 양국의 군사 합동 작전은 더욱 강화되는 추세다.
경제적으로 더욱 밀착된 중·러가 북한·이란을 감싸고돌며 반미의 기치 아래 공동 군사 훈련을 강화하는 작금의 상황은 분명 신냉전이 도래했음을 보여준다. 신냉전의 현실은 냉전 시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대립과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인다. 과거 공산 진영은 자유 진영에 맞서 만민평등, 계급철폐, 인간해방, 반제국주의 등과 같은 이데올로기 경쟁을 벌였다. 오늘날 중국과 러시아는 막강한 군사력으로 정권 유지의 권력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전체주의 독재정권에 불과하다. 이념과 명분을 내팽개친 전체주의 정권들이 북한·이란 따위 불량국가의 핵무장을 방조하는 현실은 국제질서의 안정성을 근본적으로 해친다. 명분 없는 침공, 동맹 없는 결탁, 규범 없는 폭주······. 실로 “악의 동조”라 아니할 수 없다.
구소련의 해체가 33년 전, 중국식 개혁개방이 45년째인데 돌고 돌아 세계는 다시 신냉전이다. 신냉전의 미래는 과거의 냉전보다 더 복잡하고, 더 폭력적이고, 더 지리멸렬할 수 있다. 막강한 군사력과 경제 규모를 가진 전체주의 정권들이 국제사회의 제재에 맞서 무작정 버티기에 들어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가 북한을 끌어안고 핵무장을 고도화시키는 장면을 보면서 그런 악몽을 떨칠 수 없다.
지난 냉전이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대결이었다면, 신냉전은 자유민주적 국제질서와 전체주의적 패권주의의 투쟁이다. 대한민국은 한시 빨리 한·미·일 안보 협의체를 발전시켜 군사동맹 수준까지 끌어올려야 한다. 지난 냉전이 그러했듯 신냉전 역시 체제 전쟁이자 이념 대립이다. 더는 “우리민족끼리”를 외치며 “동북아 중간자”의 헛꿈을 꿀 여유가 없다. 신냉전의 시대에는 “악의 동조”를 분쇄하는 “선의 연대”가 급선무이기 때문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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