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두희는 왜 같은 당의 백범을 쏘았나? --------김구 바로 알기
1917년생 안두희는 당대의 엘리트였다. 1934년 신의주고등상업학교를 졸업하고, 1939년 메이지대학 법학과를 3년 다녔다. (정안기 박사에 의하면, 그 시절 압록강변에서 ‘할리 데이비슨’을 몰았던 귀공자이자, 평양기생과 재혼한 낭만주의자였다.) 소련을 등에 업고 김일성이 북조선에서 날뛰자, 1947년 고향 신의주를 떠나 서울로 왔다. 월남한 후 서북청년회 종로지부 총무부장과 중앙 총무부장을 맡았다. 육사 8기에 육군포병학교, 육군보병학교도 거쳤다. 그는 1949년 6월 26일 백범을 쏘았다.
그는 줄곧 일기를 썼다고 한다. 그가 남긴 백범 총격 당시의 서술은, 집필 허락을 얻어 매일 검열을 거치며 구속 중 작성한 것이다. 1954년 백범과 관련된 자신의 일기를 “안두희 수기, 시역(弑逆)의 고민(苦憫)”이라는 제목으로 출판할 무렵, ‘옥중기로 창작한 위작’이라는 풍문도 돌았고, 출판의 동기에 대해서도 말이 많았다니 당연한 일이겠다.
그는 1949년 8월 5일 중앙고등군법회의에서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았다. 6.25 발발로 가석방과 동시 육군소위로 복귀하여 참전하였고, 1953년 12월 25일 육군 소령으로 예편하였다. 1996년 10월 23일 가택을 침입한 버스 운전 기사 박기서에 의해, 손이 묶이고 목이 졸리고 머리를 봉으로 구타당하는 잔혹한 방법으로 살해 당하였다. 사망 당시 79세. 박기서는 1998년 3.1절 사면 되어 1년 5개월만에 석방되었다.
안두희는 김구 살해 3개월 전인 1949년 3월경 현역장교 신분으로 한독당 비밀당원이 되었다. 김구는 군 내부에 조직을 확대하기 위해 노력했던 듯 그에게 자주 곁을 내주었다. 친필 족자도 두 폭 선물하였다. 그런데, '거인'에 대한 막연한 존경심이 가까이 접하면서 빛이 바랬고, 백범 주변 인물에 대한 의구심도 커갔다.
‘당의 조직지령은 절대적인 것이며, 지령에 움직이지 않는 자는 반동이다. 탈당의 자유란 없다. 반동자의 등 뒤에는 죽음의 제재만이 따를 뿐’이라는 은근한 위협도 있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김구 살해의 배후가 이승만이라고 주장하는 자들이 있지만, 그들 ‘자칭’ 진보주의자와 통일지상론자의 언설(言舌)은 무시할 만하다.
아래는 총격 당시 사정을 스스로 복기한 내용이다.
“... 그 동안 여러 차례 선생님께 직소앙문(直訴仰問)코자 애썼사오나 좀처럼 기회를 얻지 못했고, 본시 이런 회의를 갖는 것 부터가 성스러우신 선생님의 정신을 모독함일까 저어되어 감히 입 밖에 내지를 못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으로서는 여기게 대하여 석연(釋然)히 그 내용을 밝히시어 저의 왜곡된 의심을 씻어 주심이 이런 혼란기에 처한 자제를 사랑하시는 길일까 하옵니다.”
“그래 말해 봐”
“국회 소장파와 선생님 사이에 일찍부터 내통되어 있다는 것은 세상의 정평이요, 이번 그를 피검시 '김약수'를 선생님께서 숨기셨다는 억측까지 가지게 되었던 것이온데 선생님과 그들과의 관계는 정말 어떤 것입니까?”
“세상이 아무려면 어때? 또 공산당이라면 어때서?”
“그러시면 공통된 노선이란 말씀이십니까?”
“네 멋대로 해석하렴.”
“선생님께서 남북협상 당시 서울을 떠나시며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그렇게 굳은 서약을 하시고서, 돌아오신 뒤에 왜 뚜렷이 대국(大局)의 전망과 선생님의 심경을 밝혀 말씀치 못하셨습니까? 무슨 숨은 사정이 계셨습니까?”
“그래 내 나라 내 땅을 갔다 온 것이 잘못이란 말이냐?”
“왜 모든 것을 국민 앞에 천명치 못하셨냐는 말씀입니다.”
“그래, 밤낮 반 쪼가리 땅에서만 살자는 말이냐?”
“협상 다녀 오신 후에 태도는 어떠셨습니까? 미군의 철퇴를 주장하셨고, 미국의 원조를 거부하셨고, 유엔의 처사를 비방하시면서 급기야는 5.10 선거까지 부인하신 것, 어떻게 그렇게 그 주장하심이 공산당과 꼭 같으십니까?”
“그러면 이놈! 내가 공산당의 사주를 받았단 말이냐?”
“전라도 방면을 순회하실 적에 정부를 부인하시고 미국을 침략자로 규정지으시며 이(승만) 박사를 사대주의자의 전형적인 존재로 매도하셨으니 공적인 국면도 국면이오나, 그렇게도 국민 전체가 쌍벽으로 모시던 두 분의 교의가 끊겼다고 생각될 때에 온 겨레의 실망은 어떤 것인지 아십니까?”
“그래 이놈! 이것이 정부 구실을 한다는 말이냐? 그리고 미국 놈이 무슨 전생에 은혜를 입었기에 그리고 고맙게 적선을 할 것이란 말인가? 대국을 좀 큰 눈으로 보아라.”
“그리고 '건국실천원양성소'는 무엇하는 기관이며, '혁신탐정사'는 누구의 것이며, 또 한독당의 소위 '비밀당원 조직망'이란 무슨 사명을 부여한 결사입니까? '한국 군대는 김구씨의 군대'라는 외인의 평론에 대하여 선생님은 무슨 말로써 반박하시렵니까? 선생님, 제게 8.15 기념일을 전후하여 중대한 지령이 있을지 모른다는 예비명령은 무엇에 대한 준비입니까?”
“무어야? 이놈 죽일 놈! 입이 달렸다고 함부로 지껄이는 거야?”
“여순반란은 누가 사주한 것입니까?”
“뭐야, 이 놈!”
“표 소령과 기거를 같이 한 놈은 어떤 놈입니까?”
“저런!”
책 뭉치가 날아온다. 얼굴에 맞았다. 나도 주먹을 부르쥐고 고함을 질렀다.
“송진우씨는 누가 죽였습니까?"
벼루가 날아와서 머리를 스치고 뒷벽에 부딪친다.
“장덕수씨는 누가 죽였습니까?”
“이놈! 너 이놈!”
붓이 날아오고 또 책이 날아오고 종이뭉치가 날아오고 ...
앗! 선생께서는 그 거구를 일으켜 두 팔을 벌리고 성난 사자같이 엄습하여 오는 것이 아닌가... 눈을 감으며 방아쇠를 당겼다
(안두희, 『나는 왜 김구선생을 사살했나』, 타임라인, 2020, 58~6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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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구는 해방 전 중국서 독립운동을 한 공로는 인정하드라도, 해방 후 이승만이 대한민국을 건국할때 표면적으로는 남북통일 정부를 지향한다지만, 실은 북한 김일성의 편에서 활동했다.
그가 그렇게 된 이유는 김일성이 소련과 합작으로 대남 침략 준비가 완전히 된 상황을 확인하고, 멀지 않아 공산 통일정부가 된다는 확신으로, 이승만의 대한민국 건립에 비협조적일 뿐 아니라 공산주의자임을 자인하는 것을 확인한 안두희가 사살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을 잘 보여주는 내용입니다. 현재 이런 김구는 추앙을 받고, 이승만은 독제자로 폄훼하는 좌파들 뿐 아니라 일반인들 역사 인식의 아이러니가 안타깝고, 이 자료로 인식이 바로 잡히길 바라면서 전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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