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경제

프랑스혁명과 현재 우리의 모습

太兄 2023. 4. 17. 20:44

프랑스혁명과 현재 우리의 모습

2017-09-23 12:16:36


프랑스혁명과 현재의 우리모습

프랑스혁명의 주역 로베스 피에르(Robes pierre)와 문재인
좌익혁명이 비극으로 끝나는 것은 평등을 부르짖으며 독재를 휘두르기 때문입니다

노동자와 농민을 위한다면서 오히려 노동자 농민의 삶을 피폐하게 해온 사상이기에
역사의 퇴물이 된지 오래입니다
이런데도 지금 이 나라 정권은 한사코 이 길로 가겠다니 어찌 하오리까???

로베스피에르와 문재인

1789년부터 시작된 프랑스 혁명은 1793년 1월 21일 부르봉 왕조의 막을 내리는

 루이 16세와 왕비 마리 앙트와네트를 혁명광장에서 단두대로 목을 자르는 잔인한

처형으로 외형적으로는 종결되었다.

수 많은 사람들, 적게는 2만명 많게는 10만명 이상을 희생시킨 과격좌파 쟈코뱅당의

혁명은 그렇게 막을 내림과 동시에 또 다른 막을 올리는 시작이되었다.

루이 16세가 단두대에서 목이 잘린 바로 그 날 로베스피에르는 루이 16세의 처형을

직접 보고 프랑스의 실권을 쥔 집정관으로 취임하였다.

중학생 때였던가보다. 역사에 관심이 유별났던 나는 한국사를 끝내고 서양사를 읽기

 시작하였다. 학교 교과 과정이 아닌 혼자서 책을 찾아 읽는 독학이었다.

그 때 관심있게 읽었던 부분이 프랑스 혁명역사 였다.

 왕정이 무너지는 과정에서 벌어진 다이나믹한 혁명 역사는 변화를 지향하는 소년기의

나에게 무척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변변한 역사의 분석서가 없던 그 시절에 통사 형태로 서술된 책만 있어도 감지덕지였다.

프랑스 혁명의 주역이었던 로베스피에르, 마라, 당통, 이 세 사람의 이름은 언제나

프랑스 혁명이라는 단어와 함께 떠오르는 이름들이다.

과격 좌파인 쟈코뱅당의 리더였던 이 세 사람 중 마라와 당통은 결국 로베스피에르에 의해 제거되어 암살되거나
단두대에서 죽게되고 로베스피에르가 혁명의 종결자가 되었다.

그런데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이제 왕정을 끝내고 혁명정부를 이끌어가야 하는

로베스피에르는 혁명을 지지해준 농민과 노동자에게

어떤 형태로라도 보상을 해주어야했다.

그들의 욕구인 잘 먹고 잘 살게해 주어야만 그의 지위가 견고해지기  때문이었다.

파리가 아닌 지방도시 출신인 로베스피에르(Robespierre)는 파리의 명문대학교에서

 법률을 공부하여 변호사가 되고는 파리에 머물지 않고 고향으로 내려가 서민을 위한

변호사 활동에 주력하였다.

 

 그는 서민인 노동자와 농민의 권익을 위하여 귀족들과 영주들을 상대로 변론 하면서 

 인기를 얻었고 그 인기를 발판 삼아 삼부회의 평민 대의원으로 선출되었다

삼부회란 프랑스 특유의 비상임 의회제도로 귀족과 성직자와 평민,

이 세 부류의 대표로 구성되어 필요시 왕이 소집하여 의제를 토론하고 결의하는 의회제도이다.

평민의 대표가 된 로베스피에르는 왕정을 공격하는 파격적인 연설로

인기몰이를 하게 되고 왕정에 반대하는 과격 좌파 그룹인 쟈코뱅당의 리더가 되어

 왕정을 무너 뜨리고 공화정인 국민회의를 여는 프랑스 혁명을 이루게 된다.

법률가이지만 경제에는 문외한인 로베스피에르는 최고 실권자가 된 후 

"모든 프랑스 어린이들은 우유를 마실 권리가 있다"

라고 선포하고 우유값을 반값으로 내리라고 지시한다.

이것이 그가 서민을 위한 정책이자 혁명을 이루는데 절대적인 지지를 한

노동자와 농민을 위한 중요한 경제정책이었다.

한 동안 우유값이 내려가서 우유를 마시는 서민들이 많아졌다.

그런데 낙농을 하던 농민들은 터무니없는 가격으로 우유를 공급하느니

  아예 소를 도살하여 고기로 파는 것이 이익이라고 생각하여 소를 죽여 고기로

팔자 우유는 품귀 현상이 발생하여 이전보다 몇 배 이상으로 폭등하게 되었다.

그러자 로베스피에르는 농민들을 불러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물었다.

낙농하는 농민들이 건초 가격이 비싸서 할 수 없이 소를 죽일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러자 로베스피에르는 이제 건초업자들에게 건초를 반값으로 내리라고 명령했다. 

그러자 건초업자들은 건초를 헐값에 팔아 생산가도 못 건지니느 아예 불 태워버렸다.

 그러자 건초값이  폭등하였다.

낙농하는 농민들은 이제는 정말 우유 생산을 하지 못하게 되고 우유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아, 우유는 귀족들이나 마시게 되고 서민의 자녀들은 우유 구경도 못하게 되었다.

결국 처음 우유값에 손 대지 않은 것보다 못한 결과를 가져왔고,

결과적으로 로베스피에르의 첫번째 경제정책은 실패로 돌아가버렸다.

여기까지만 살펴보고 로베스피에르와 문재인과 비교해 보기로 하자.

첫째, 문재인은 로베스피에르처럼 서울이 아닌 변방 거제도에서 태어나 지방 도시 부산에서 자랐다.

둘째, 두 사람 모두 머리가 좋아 법률을 공부하였으나 서울에서 판사나 검사가 되지않고

 변호사가 되어 자기 고향으로 가서 소위 서민을 위한 변호사를 하면서

일정한 부류의 사람들에게 알려진 사람이 되었다.

셋째, 두 사람 모두 서민을 위하는 정치인으로서 알려지면서 국회(의회)에 입성하였다.

넷째, 사회적 분위기가 무르익자 로베스피에르가 앙샹레짐(ancien regime: 구체제)을

  타파하기 위한 혁명을 주도하였던 것처럼,

 문재인은 촛불혁명이라고 하면서 적폐청산을 그 기치로 내세웠다.

로베스피에르의 앙샹레짐 타파와 문재인의 적폐청산은 같은 맥락에서 지난 시대를

갈아엎는 혁명의 시도이다.

다섯째, 두 사람 다 노동자 농민을 그 지지 기반으로 삼고,

도시의 젊은 세대를 그 외곽 지원부대로 삼은 것도 같은 전략이다.

이들은 언제나 기득권을 가진 부류에 대한 반감이 팽배해 있는 그룹이다.

여섯째, 로베스피에르가 혁명을 성사 시킨 후 소위 빚을 진 그룹에 대한

일종의 보상으로 우유 반값 지시를 한 것과 현재 문재인의 경제정책은 같은 맥락이다.

문재인이 기업에다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모두 전환 하라고 지시한 사항만 보자.

 이는 불합리한 정책이다. 채용공고와 입사시험을 통과하여 정규직이 된 사원들과

 이 과정에서 실패한 사람들과 동일한 지위를 억지로 가지게 하는 것이 과연 평등한

사회로 가는 길인가? 그렇다면 누가 힘들게 정규직으로 입사 하려고 노력하겠는가?

상대적으로 쉬운 비정규직이 되어 정치권 언저리에서 빈둥대다가 정규직으로 점프하면

 된다는 기회주의자들만 양산하게 될 것이다.

경쟁이 없이 평등만 강조하면 결국 혁신과 발전이 사라진 낙후된 사회가 될 것이다.

로베스피에르가 자기의 혁명  지지 기반이었던 서민을 위한 우유 반값 사건은 일시적인

 현상으로 성공한 것 같았으나 결국 더 악화된 상황을 초래하고 말았다.

촛불 세력이 추구 하는 반값 등록금, 반값 아파트 등의 공약들은 결국 있는 자의 것을

 빼았아 나누어 먹자는 사고인 것이다.

로베스피에르가 자기 지지 기반인 농민, 노동자, 서민과만 대화하고 협의한 것과

 문재인이 기업인들은 배제하고 노조 하고만 대화하여 만들어 내는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라는 지시는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전제적 사회주의 체제에서나 있을 수 있는 지도자의 행태이다.

두 달 전 나는 촛불세력을 등에 업은 문재인이 대통령이 되면 한국은 더 이상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아닌 민중민주주의,

즉 사회주의 국가로 방향을 바꿀 것이라고 글을 쓴 바 있다.

 이제 비정규직 문제 해결 방안이 사회주의로 가는 첫 걸음이다.

 앞으로 문재인의 정책을 보면서 프랑스 대혁명 시대와 비교해 보겠다.

1793년 1월 21일 루이 16세를 파리의 혁명광장에서 단두대로 처형하면서 앙샹레짐을

 무너뜨린 후 프랑스의 집정관이 된 로베스피에르는 과격한 정책을 계속하다가

 1794년 7월 28일 자신도 단두대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역사는 예언하지 않는다. 그러나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교훈을 준다.

공자의 말씀 온고지신, 溫故知新(옛 것을 익혀 새 것을 배운다)을 새겨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