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문명의 기원지로서의 황해평야
흔히 인류문명은 비옥한 초승달 메소포타미아에서 동방으로 퍼진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아득한 고대의 자연환경과 문명의 흔적은 그와는 반대임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2만년~1만2천년전 황해야말로 비옥한 초승달지대였다
호주 시드니 대학의 고고학센터는 2000년 3월부터 2004년 8월까지 장장 4년여에 걸쳐 동북아시아의 농업확산에 대한 정밀한 연구를 시행하고 그 결과를 무려 400쪽에 이르는 연구보고서로 만듭니다. 그런데 이 논문에는 지금으로부터 2만년에서 1만2천년까지 동아시아의 뭍과 강과, 바다를 분석한 지도가 들어 있습니다.

Transition of From Foraging to Farming In North China/ 2004, Sydny Unv.
위 지도를 보면 당시 한반도와 중국 동부는 하나의 땅덩이였고 가운데를 압록강과 황하가 한 줄기의 커다란 강으로 흘렀던 것이죠. 아울러 제주도는 일본과 이어져 있었습니다.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하다니.. ㅊㅊ) 이러한 형태의 황해평원은 1만2천년 앞까지 이어집니다. 그러다가 1만년전을 계기로 "영드라이어스"라는 짧은 빙하기가 끝나면서 버다가 높아지기 시작해서 8천년 앞에 이르면 현재와 같은 황해해안선이 이루어진 것이죠. 그러면 당시 황해평야는 어떤 지대였을까요? 아래의 지도를 봅시다.

- winsconsin univ.
위의 지도는 윈스콘신대학의 온라인 교육사이트에 있는 고지리학 자료입니다. 당시의 노랗게 칠해진 황해는 풀밭이었고 그 위쪽으로는 툰드라, 그리고 서쪽으로는 사막과 큰 빙하호로 막혀 있습니다.
알다시피 인류가 가장 사냥하기 쉬운 곳은 초록색의 수목지대가 아니라 탁 트인 풀밭입니다. 당시 메가파우나라고 불렸던 커다란 몸집의 짐승들이 주로 풀밭에서 무리지어 살았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그 때 황해평야는 커다란 강과 풀밭이 펼쳐진 그야말로 지상의 낙원이었다는 것을 넉넉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곳은 가장 높은 인구밀도를 보였을 것입니다.
그러던 이곳은 1만 년 앞쯤 지구 온도가 빨리 오르면서 바다가 약 100m정도 높아지기 시작합니다. 결국 1만 년 앞에 이르면 다음과 같은 모습으로 바뀌는 것이죠.

위의 지도에서 보이듯이 지구 기온이 올라 풀밭은 북쪽으로 밀려났고 그 풀밭은 다시 서쪽으로 러시아남부를 지나 헝가리 풀밭으로 그리고 아나톨리아와 지중해 연안으로 그리고 끝내 기름진 초승달 메소포타미아로 이어집니다.
이렇듯 풀밭이 북으로 밀리면서 사냥감이 풀밭을 따라 가고 초기 황해평야의 목축 수렵인들은 이 풀밭과 사냥감을 따라 서쪽으로서쪽으로 갔을 것입니다. 결국 그들이 다다른 곳은 수메르와 이집트가 그 끝자락이었을 것입니다. 아울러 황해평원에 남은 다른 부류는 바야흐로 정착과 농경시대로 접어듭니다.
황해평원에서 인류는 첫 문명을 맞이했다
이와 같은 현상은 대략 1천5백년 동안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따라서 황해평야는 적어도 2만 년 앞부터 1만1천년 앞까지 동방의 인류가 1만년에 걸쳐 그 터전을 영위해 왔던 곳일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황해평야에 초기 정착문명이 생기고 그것이 1만 년 앞 황해가 높아져 대홍수에 시달리면서 끝내 문명이 동북과 서쪽으로 옮겨졌다는 가정은 오히려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동방, 아니 세계의 첫 문명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일단 이러한 문명을 환문명이라고 부르기로 합시다. 그 까닭는 이런 가정을 충족시켜 주는 모티브로서 오로지 환단고기만 있기 때문입니다. 그 모습은 이런 것이지요.

황해평야의 초기 문명은 인구폭발을 일으키면서 끝내 동쪽으로 압록강을 따라 인구 분산을 일으키고 남동쪽으로 강을 따라 일본으로 일찌감치 갈려 나갔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다가 남아 있던 사람들은 황해 물이 더 높아져 다시 옮기게 되는 것이죠.
위의 가정을 타당하게 해주는 고고학적 증거가 있습니다. 바로 인류가 처음 고안한 붙박이삶의 연모 "토기"가 간 길과 피라미드 유적입니다.

토기는 일본 죠몽토기가 1만3천년전을 다투고 만주 아무르유역의 토기가 1만2천년 앞에 적힙니다. 아울러 우리 제주도 고산리 토기가 1만년 앞의 것으로 시료분석이 나와 있습니다. 그러나 메소포타미아에 토기가 나타나는 것이 약 8천년 앞이고 인도는 7천년 앞입니다.
그런데 더욱 뜻깊은 것은 내몽고자치주에서 나온 피라미드가 5천년 앞, 중국 서안의 피라미드 군이 3천년 앞으로 추정된다는 것이죠. 이집트 피라미드는 이보다 늦습니다. 이러한 증거들은 황해평야의 최초문명이 어떻게 퍼져 갔는지 보여 주는 것입니다.
아울러 우리에게 더욱 뜻깊는 한 낱말이 있습니다. 바로 "아스타" (Asta)라는 낱말입니다. Asta는 프로토 인도유러피언어 즉 아리안의 선주민어로 "고향"(home land)을 뜻함과 아울러 신성한 곳 = 부활( Easter) = 동방(East)이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이 아스타 (asta)는 알타이어로 "불의 나라", 신성한 곳, 밝은 곳이라는 뜻입니다. 아스타는 또 수메르어로 신성한 곳, 왕권이 있는 곳 (Ashite)을 말합니다. 독일 고어 Austra는 남(동)방 = 아침을 말합니다. 켈트어 Astur는 신이 사는 곳을 말합니다.
유라시아 여러 겨레가 동방의 신성한 곳으로 불렀던 곳, 그리고 아리아인들의 조상들이 고향으로 불렀던 곳, 한때 기름졌던 황해, 저 아득한 바다 밑에는 우리 조상들이 아스타 = 아사달이라고 불렀던 빛나는 인류의 첫 문명이 고요히 잠들어 있는 것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