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경제

이승만 모르면… 지금 우리의 정체성도 알 수 없어

太兄 2023. 7. 31. 16:47

이승만 모르면… 지금 우리의 정체성도 알 수 없어

이승만 소재로 쓴 소설 ‘물로 씌어진 이름’ 펴낸 복거일

 

입력 2023.07.31. 03:00
 
복거일은 “이 소설이 이승만에 대한 오해를 조금은 걷어내는 장소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박상훈 기자

“독자들에게 욕을 먹자는 각오로 썼어요. 일부에선 이게 왜 이승만 소설이냐고 할지도 모릅니다.”

8년 만에 소설 ‘물로 씌어진 이름’(백년동안·전5권)을 낸 소설가 복거일(77)이 말했다. 이승만 대통령의 눈을 통해 광복과 대한민국 건국 초기를 들여다본 작품. 이번 출간된 5권은 전체 3부 중 1부(‘광복’)에 해당한다. 1941년 일본의 하와이 진주만 공습 시기에서 시작해, 1945년 이승만이 귀국하는 장면으로 끝난다. ‘이승만 전기소설’인데 2차 세계대전을 비롯한 당대 세계사에 대한 서술이 주를 이루는 점이 눈에 띈다. 작가는 “이승만이 광복 이전 독립운동을 한 건 미국 정부 등에 편지를 쓴 게 대부분이다. 편지를 소설로 쓰면 무슨 스릴이 있겠냐”라며 “편지를 쓰게 된 배경을 알게 됨으로써, 대한민국의 탄생 과정을 제대로 볼 수 있을 것이다”라고 했다.

복거일은 1987년 소설 ‘비명을 찾아서’로 문단과 대중의 큰 환호를 받은 뒤, 전업 작가로 살며 보수 논객으로도 활동해 왔다. 이번 소설은 10여 년 전 간암 진단을 받은 그가 병마와 싸운 끝에 탄생했다. 작가는 집필에 전념하기 위해 항암 치료를 거부해 왔다. “건강이 꾸준히 나빠진다”는 그는 자신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작품이 ‘이승만’인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사회의 정체성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사회가 하나의 응집력을 가진 집단이 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어요. 정체성이란 역사적 환경에 의해 주어지기 때문에, 우리로선 이승만의 업적에 대해 연구를 해야 합니다. 이승만은 역사를 보는 창입니다.”

집필을 결심하기는 쉽지 않았다. 5권 합해 2500쪽이 넘는 분량. 2015년부터 한 월간지에 연재해 왔다. 작가는 “이 소설을 쓰면 제게 손해일 거라는 걸 알았다”고 했다. “역사 소설은 시시콜콜한 걸 밝혀서 써야 하기 때문에 쓰기는 어려운 반면, 문학이나 역사학계 둘 중 어디에서도 주류가 아니에요. 거기다 이승만을 소설로 쓰면 좋은 소리를 결코 못 듣습니다. 그러나 제가 아니면 쓸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 축하식에서 이승만(오른쪽) 대통령이 활짝 웃으며 나란히 앉은 더글러스 맥아더 유엔군 총사령관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눈빛 출판사

제목은 셰익스피어의 시구에서 착안했다. ‘사람들의 나쁜 행태들은 청동에 새겨져 남는다. 그들의 덕행들을/ 우리는 물로 쓴다’는 내용이다. ‘이승만’이라는 이름이 물로 쓰여 왔지만, 그의 공과(功過)를 다시 들여다 보고 이를 청동에 새길 필요가 있다는 뜻. 작가는 “1945년 ‘얄타 밀약’ 폭로를 이승만의 가장 큰 공으로 꼽을 수 있다. 그러나 이승만의 삶은 사실상 1954년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체결되며 끝났다”며 “사사오입 등 이후 권력에 취한 행태들은 삶에서 남은 군더더기로 본다”고 했다. 작가가 주목하는 이승만의 생애는 그가 1904년 11월 대한제국 밀사의 사명을 갖고 미국을 향해 떠난 이후부터 1954년까지 50년간이다. “1904년 부여받은 독립의 임무를 1954년 완성한 거죠. 그런 맥락이 이승만의 삶에 질서를 부여합니다.”

건강이 악화되고 있지만, 매일 오전 글쓰는 삶을 지키고 있다. “예전에 회사를 다니던 버릇이 있어서, 오전에 작업을 안 하면 일을 안 한 느낌이 들더군요.” 작가는 지금 소설의 2부를 연재하고 있지만, 책이 “(건강 문제로) 미완의 작품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8년 동안 소설의 절반 정도를 썼는데, 앞으로 그 시간만큼을 버틸 수 없을 겁니다. 그러나 분량을 줄여서 마무리할 생각은 없어요. 어차피 이승만이란 인물은 제가 끝낼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이 이어서 탐구해야 하니까요.”

작가는 “논객으로 활동해 작품을 쓰지 못한 시간에 아쉬움도 있다. 20대였던 독자들이 이제 60대가 돼 책을 읽지 않는다”라며 “독자들을 잃어버린다는 생각을 못 한 걸 지금도 뼈저리게 후회하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작가는 ‘남은 목표’를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인공지능을 소재로 과학과 기술에 대한 낙관적 전망을 담은 SF를 쓰고 싶어요. 그게 1987년 제가 소설을 내면서 시작한 일을 마지막으로 완결짓는 일이 될 겁니다.”

“독자들에게 욕을 먹자는 각오로 썼어요. 일부에선 이게 왜 이승만 소설이냐고 할지도 모릅니다.” 8년 만에 소설 ‘물로 씌어진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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