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신고, 제보, 경고 다 무시한 공무원들, 존재 이유 뭔가
충북 청주 오송읍 지하차도 침수로 14명이 숨진 사고는 관재(官災)라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국무조정실 감찰 결과에 따르면 15일 궁평 차도 인근 미호천교 아래의 임시 제방이 폭우로 붕괴된 것이 이번 사고의 중요한 원인이다. 지역 관할인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은 시공회사와 감리회사가 기존의 미호천교 제방을 무단 철거하고 규격 미달의 임시 제방을 설치하는 데도 이를 감독하지 못했다. 임시 제방만 제대로 쌓았다면 사고가 발생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는 점에서 뼈아픈 대목이다.
충북도와 청주시의 책임도 크다. 사고 전날 청주 지역에 호우경보가 발령되고, 미호천교 일대는 홍수경보가 내렸지만 지하차도를 모니터하거나 교통통제를 실시하지 않았다. 충북경찰청은 사고 발생 전에 ‘궁평 지하차도 긴급 통제’를 요청하는 신고를 받았지만 담당 경찰관들은 현장에 출동하지 않았다. 문제가 커지자 제대로 출동한 것처럼 112 신고 시스템에 입력했다고 한다. 충북소방본부는 미호천교 아래 임시제방이 위험하다는 신고를 받았으나 “그곳에 갈 인력이 없다. 구청 같은 데 전화해 보라”며 다른 기관에 알리지 않았다.
이렇게 들어온 신고, 제보, 경고가 확인된 것만 10건이 넘는다고 한다. 행복청·충청북도·청주시·충북경찰청·충북소방본부 등 관계 기관 중 어느 한 기관만이라도 자기 책임을 다 했다면 사고를 막거나 희생자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국조실은 “호우경보와 홍수경보가 발령된 비상 상황에서 신고 등 수많은 경고가 있었음에도 여러 기관이 상황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국조실은 관련 공무원 36명을 수사 의뢰하고 63명에 대해 징계를 요구했다. 행복청장 등 5개 기관의 최고위급 책임자를 경질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수해에 대한 조치로는 이례적으로 규모가 크다. 그만큼 공무원들의 태만이 심각했다는 뜻이다. 현장에 출동하지도 않은 경찰에선 자신들에 대한 조사에 반발하는 움직임까지 있었다.
최근 자연재해는 ‘지구 열대화’로 불릴 정도의 이상기후 때문에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하루에 비가 수백㎜ 퍼붓는 일이 일상화되고 있다. 기존 재해 대응 체계를 정비하고, 지하차도, 하천 주변 공원, 다리 등의 취약 시설물에 대해 확실한 통제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어떤 시스템과 장비를 도입해도 공직자들이 이렇게 태만하고 부주의하면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다.
‘오송 참사’ 행복청장·충북 행정부지사·청주 부시장 경질
국조실, 36명 수사 의뢰·63명 징계
국무조정실은 28일 충북 오송 궁평2지하차도 침수 사고의 책임을 물어 이상래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장, 충청북도 행정부지사, 청주시 부시장, 청주흥덕경찰서장, 당시 충북소방본부장 직무대리 등 5명에 대한 경질 등 인사 조치를 대통령과 지방자치단체장 등 인사권자에게 건의·요청하기로 했다. 감찰 결과 중앙 부처와 지방자치단체, 경찰, 소방 등 모든 관계 기관에 사고를 막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나 어느 한 곳도 사고를 막으려는 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들은 사고 당시 각 기관에서 선출직을 제외하고 최고위 책임자였다. 5명의 신분과 직급이 각기 다른 만큼, 인사 조치의 형태는 해임, 직권면직, 직위해제 등으로 달라진다. 그러나 공통적으로 현 직위에서는 모두 물러나게 된다. 이번 조치는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책임이 있는 사람에게는 책임을 묻는다”는 방침에 따른 것이라고 국조실은 설명했다.
여기에 행복청·충북도·청주흥덕서·청주시·충북소방본부 공무원 34명과 임시 제방 공사 현장 관계자인 민간인 2명을 검찰에 수사 의뢰하기로 했다. 다른 공무원 63명은 각 기관에 통보해 징계 등의 조치를 하기로 했다. 이번 사고로 문책되는 공직자는 100명이 넘는다.
김영환 충북지사와 이범석 청주시장은 인사 조치 대상에서 제외됐다. 선출직이어서 정부가 인사 조치를 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다만 이들은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라 별도의 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다.
국무조정실은 이날 궁평2지하차도 침수 사고에 대한 감찰 결과 발표에서 “미호천교 아래의 기존 제방을 무단 철거하고 부실한 임시 제방을 쌓은 것과, 이를 제대로 감시·감독하지 못한 것이 이번 사고의 선행 요인”이라고 밝혔다. 행복청은 궁평2지하차도 입구에서 약 600m 떨어진 곳에 있는 미호천교를 확장하는 공사를 발주해 놓고, 시공사·감리사가 지하차도에서 200m 떨어진 곳에 있는 미호강 제방을 무단으로 허무는 것을 막지 않았다. 시공사·감리사는 제방을 철거한 자리에 사고 1주일 전 임시 제방을 쌓았는데, 이마저도 규격에 미달하는 부실한 제방이었다. 결국 지난 15일 오전 8시 9분 임시 제방이 붕괴하면서 폭우로 불어난 미호강 물이 제방 너머로 넘쳤고, 31분 만인 8시 40분 지하차도가 완전히 침수됐다. 행복청은 제방이 붕괴된 것을 알고도 관계 기관에 상황을 곧바로 알리지도 않았다.
국조실은 “호우 경보와 홍수 경보가 발령된 비상 상황에서 신고 등 수많은 경고가 있었음에도, 관련된 여러 기관이 상황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지하차도에 차량이 진입하지 못하게 통제해야 할 권한은 충북도에 있었으나, 충북도는 사고가 일어날 때까지 아무 조치도 하지 않았다. 사고 전날 오후에 홍수 주의보가 발령됐고, 사고 당일 오전에는 홍수 경보로 격상됐다. 사고 2시간 전에는 미호강 수위가 홍수 수준에 도달해 충북도가 법적으로 교통 통제를 할 요건이 충족됐다. 그러나 충북도 담당자들은 미호강 수위에 대한 모니터링조차 하고 있지 않았고, 이때부터 행복청에서 미호강 범람 위험성이 있다는 연락을 3차례 받으면서도 끝까지 아무 조치를 하지 않았다.
청주시는 궁평2지하차도를 직접 관리하는 기관은 아니었으나, 사고 전날부터 사고 직전까지 10차례에 걸쳐 미호강 범람 가능성에 대한 신고를 받았다. 그러나 청주시 공무원들도 아무 조치를 하지 않았다. ‘우리 소관이 아니다’라는 이유였다.
청주흥덕서 경찰관들은 사고 1시간여 전부터 임시 제방 시공사·감리사에서 112 신고를 두 차례 받았다. 긴급히 지하차도를 통제하고 오송읍 주민들을 대피시켜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담당 경찰관들은 궁평2지하차도로 출동하지 않았다. 사고가 난 뒤 경찰의 대응이 도마에 오르자 이들은 당시 출동한 것처럼 거짓으로 112 신고 시스템에 입력해 놓았다는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
충북소방본부는 사고 전날 오후 5시 21분 미호천교 인근을 지나던 행인에게 119 신고를 받았다. ‘임시 제방이 허물어질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119 상황실 근무자는 “거기 갈 만한 인력이 없다”며 “구청에 전화해 보라”고 말하고 신고를 종결 처리했고, 관계 기관에 알리지 않았다. 사고 당일 오전 7시 51분 다른 119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대원은 임시 제방이 붕괴되는 것을 목격하고 상황실에 위급한 상황임을 알렸으나, 상황실에서는 매뉴얼에 따른 상황 전파 등 필요한 조치를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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