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 현대사

이씨조선의 위치와 광역

太兄 2023. 5. 24. 12:43

이씨조선의 위치와 광역

2019-06-26 23:13:16


이씨조선의 위치와 광역

현재 한국에 있는 삼국사기와 이조실록은 중국사기인데 조선사편수회에서 한국사로 조작하고, 환단고기와 고려사기는 중국사기인데 일본으로 가져가서 한반도역사로 개조한 다음에 일본동경에서 발행한 책이므로 여러 말 할 필요조차도 없는데 한국인들은 우리역사라고 한다. 그래서 진실을 찾아보자는 것이다.

조선사는 일제가 조작하고 성락훈, 이병도 일행이 번역한 이씨조선 지리지인 신증동국여지승람(1989년 중판본)에 나타난 충격적인 기록들을 발견한 대로 모은 것이다. 이씨조선이 한반도역사라고 하는데 왜 이런 기록이 있을까? 이런 문제들에 대해 역사학계는 분명하게 답변할 수 있을 까?

1. 조선

조선이란 국호는 백인흉노족 색부루가 동이족인 단군의 후단국(後檀國)을 무너트리고 세운 나라다. 단군조선은 단군의 (후)단국 1048년(BC.2333-BC.1285), 색부루조선 860년(BC.1285∼BC.425), 대부여 187년(BC.425-BC.238)의 3왕조를 일제가 하나의 왕조로 둔갑시킨 조작사서다.

좌우간 조선이란 국호는 동이족의 조상인 단군의 국호가 아니라 백인족인 흉노의 국호다.

색부루 조선의 번조선이 일명 기자조선이고 서라벌인데 기자를 단군의 후예로 둔갑시켜 “마땅히 기자로서 그 대를 잇고 왕통을 전하였다”고 기록한 조선지리지 京都上편의 기록은 정말로 이씨조선 왕실의 기록이라고는 믿기지 않는다. 또 “궁실”편에서는 “온 누리 모든 제도 주(周)나라의 법칙인데 강역은 모두 한(漢)나라의 봉역(封域)에 속하였다”고 하여 동이족인 단군-북부여-고구려, 백제를 계승하지 않고 서쪽 흉노족의 조선, 서쪽 청해성의 묘족나라인 주나라와 한나라의 문화를 계승한 것은 이성계를 묘족의 후예나 중국(서이족)의 계승자로 둔갑시킨 조작이라고 보여지는 대목들이다.

그러므로 “조선”이란 단군을 빙자하여 흉노족인 색부루의 국호를 사용하게된 것으로서 일제의 조작기록으로 보여진다.

기록에는 조선의 서쪽인 청해성에 붙어있었던 명나라에게 “朝鮮과 和寧”중 어느 것이 좋겠느냐고 물어보아서 “조선”으로 하라고 하니 조선으로 했다고 되어있다. 물론 조작된 것으로 본다.

그럼 이성계의 진짜 국호는 무엇이었을까? 조선이 아닐 것이다.

그럼 한국인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인가?

2. 사방4천여리의 통일신라 땅을 고려가 계승했다는 것이 공민왕조에서 증명된다.

고려사 권제42. 세가42. 공민왕조 경술19(1370): 과거제도

『"④. 향시(鄕試)에는 각 성(省)과 직예부(直隸府)와 주(州)에서는 합계 500명을 한도로 선출한다. 그러나 인재가 많이 모여 있는 곳은 규정된 수에 구애되지 않으며 인재가 부족하여 수가 차지 않는 데에서는 실제 정형대로 공(貢)에 충당할 것이다.

하남성 40명, 산동성 40명, 산서성 40명, 섬서성 40명, 북평성 40명, 복건성 40명, 강서성 40명, 절강성 40명, 호광성 40명, 광동성 25명, 광서성 25명.

경사(京師) 서울에서 실시하는 향시에는 직속부와 주들의 선비 100명이다.』

※원래의 북평성은 현재의 감숙성인데 북평을 1911년 이후의 손문의 중화민국 때 하북성으로 이동조작한 것이다. 그리고 산동성과 산서성을 포함하여 조작했다. 하북성, 산동성, 산서성 남부 일부를 제외한 전체는 통일신라 땅이 아니므로 고려 땅이 아니다.

⑤. 회시 (會試)

규정 선발인원 100명인데

가). 고려?, 안남, 점성(占城) 등의 나라들에서는 만일 경시에 밝고 조행이 비른 선비가 있으면 각각 그 본국에서 향시를 실시하고 서울로 올려 보내어 회시에 응하게 하는바 규정인원수에는 상관없이 선발한다.

 

3. (고려사 권 제42. 세가 42. 공민왕조 경술19(1370) 기록)

『신호(神號):

모든 신호(神號)에 대한 규정을 다음과 같이 열거한다.

(공민왕조 7월 을미일)

①.오악(五嶽)의 신은 동악태산지신(東嶽泰山之神),(산동성)

남악형산지신(南嶽衡山之神),(호남성)

                     중악숭산지신(中嶽嵩山之神),(하남성)

서악화산지신(西嶽華山之神),(섬서성)

                     북악항산지신(北嶽恒山之神). (산서성)

(해설) 모두 중국 땅 전체를 기록하고 있다. 고려가 확실하게 중국에 있었다는 증거이다. 산들은 영토내의 大山들과 영토 밖 가까운 큰 신들의 산신을 제사지내기 위한 것이라면 이해할 수도 있지만 통일신라의 영토를 왕건 고려가 계승했으므로 산동성-산서성-하북성이 포함된 것은 후세의 조작된 거짓기록이다. 조선은 고려를 계승했으므로 고려영토는 곧 조선의 영토이다.

4. 조선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 제4권 開城府 上. 山川편

“明太祖洪武三年(1370년 고려공민왕 19년)에 공민왕이 臣稱으로 표를 올리니 명나라 사신이 와서 왕으로 봉한다는 칙서를 전달하고, 고려의 大華岳神및 諸山의 神, 大南海神 및 諸水의 신에게 제사지내고 비석을 세웠다“는 기록이 있다.

33주문제에서 고려의 오악, 오진, 4독이 중국 땅임을 증명했다. 이것이 1392년에 건국한 이씨조선지리지에 고려의 서악화산지신(西嶽華山之神)인 화악(華岳) 즉 지금의 화산(華山)이 나오므로 고려와 이씨조선이 중국 땅에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려말에 명나라사신이 온 것이 증명된다. 이씨조선 초인 1402년에도 이방원(3대태종)이 왕으로 책봉해 달라는 사신을 명나라에 보냈다는 명나라황제평전 영락제의 기록에 있다. 명사(明史)는 조작된 사서(史書)지만 가짜든 진짜든 고려말과 이씨조선초기의 기록이 고려를 계승한 이씨조선이 한반도가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5. 이씨조선 지리지인 “신증동국여지승람 개성부연혁편”기록:

『고려 태조2년에 철원에서 도읍을 송악산(모아산?) 남쪽(개성)으로 옮기고 두 고을지역(철원과 임강현)을 개주(開州)로 삼고 궁궐을 지었다. 광종11년(960) 황도(皇都)로 고쳤으며, 성종14년(995)에 개성부로 고쳤다. 현종원년(1009)에 거란이 침입하여 궁궐과 민가가 다 없어졌다. 9년에 府를 파하고 貞州, 德水, 江陰 의 3고을을 관장하며, 尙書都城에 직속하게 했다.

문종 16년(1062)에 다시 知開城府事로 하여 도성에서 3현과 長湍, 松林, 臨津, 兎山, 臨江, 積城, 坡平, 麻田 등 11현을 예속하며 西海道의 牛峰郡을 분할하여 예속시켰다.--- 본조 태조 3년(1395)에 漢陽으로 천도했다.』

(해설)

조선을 한반도로 이동조작했기 때문에 여기 지명들을 다 말살되거나 이동 조작되어서 모두를 찾기는 어렵다.

정주, 장단, 파평, 마전은 말살되었고 강음은 강소성 상주부속현으로 으로 이동된 것만 기록이 있다. 덕수는 진시황본기에 황하를 덕수라고 했다. 송림은 송악으로 추정되며 임진은 감숙성 평량부경계이고, 토산은 현토군내의 산으로 보면 개성부근처이며 임강은 개성동북쪽이고, 적성은 평양서쪽 당나라 때 적리주(積利州)로 추정되는데 모두 개성부 지역일대이다.

이씨조선 “태조 3년(1395)에 漢陽으로 천도했다”의 한양은 지금의 중국 섬서성 함양이다. 백제의 北漢城이고 고구려 제2장안성평양이다. 秦나라 도성이 아니다. 후에 한강남쪽의 서안으로 천도했는데 이곳은 백제南漢城 이고 조선 때는 화성(華城)이며, 일제 때의 京城이다. 그러므로 漢城과 漢陽은 중국 섬서성咸陽이고, 華城과 京城은 중국섬서성 西安이다. 그런데 한반도는 한양, 한성, 경성이 청와대자리 하나뿐이고 한양남쪽 한강건너 화성은 수원에 있닥. 그러나 수원에는 화산(華山)이 없었다.

조선의 한양성은 둘레가 6.2km이고, 조선의 화성(서안성)은 한양성의 2배인 둘레가 약 13km이며 그 웅대함이 세계적이다. 한반도 서울은 원래의 화성에 비하면 영화를 찍기 위한 세트장에 불과하다. 일제 때 흉내만 낸 조작 품이기 때문이다.

 

6. 이씨조선 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 1권 개성부 성곽편 羅城條”

『고려현종(顯宗 8대: 1009-1031년) 때 강감찬이 경도(京都:개성)에 라성(羅城) 쌓기를 청하니 왕이 이가도에 명하여 토성을 만들게 했는데 21년만에 끝났다. 주위29700보(약 20Km), 라각(羅閣)13000칸, 崇仁, 宣旗, 保定 , 光德, 德山, 會賓, 仙溪, 泰安, 弘仁 ---永平, 安和, 安定 등 22개문이 있는데 지금은 모두 무너졌다."』

(해설)

고려와 이씨조선을 한반도로 이동 조작했으므로 원래위치는 말살하고, 이동하고, 바꾸고, 왜곡하여 직접기록을 찾기는 어렵다.

22개문 중 확실한 것은 보정(保定)은 중화민국 보정도(保定道) 안국(安國)의 땅인 감숙성 경천지역이고, 영평은 요나라 때 철령현 땅이니 개성의 북쪽이다. 安定은 한, 후한 때 지금의 감숙성 경천인데 당나라가 보정(保定)으로 바꾸었고, 금나라가 다시 경천으로 바꾼 곳이므로 경천지역에 2-3개의 문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추정으로는 숭인은 숭신(崇信)으로 보면 감숙성 경천지역과 경양지역 두 곳 중의 하나로 추정되고, 宣旗를 선주(宣州)로 보면 평양 동북방향으로 모두 개성주변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보정도(保定道)와 속현들은 증화민국 즉 일제 때 하북성으로 이동 조작되었다.

고려와 조선이 한반도라고 하는데 이런 이름들이 없으니 가짜다.

★왕씨(王氏)

왕건은 당시 당나라 남경인 사천성 성도에서 태어났는데 당나라 황제의 혼외자식으로 추정되며 사천성 성도에서 일어난 당나라 사람이다.

왕건이 태어나고 일어난 사천성 남경은 명나라 태조 주원장의 항몽운동 중심지이다.

기록에서 간헐적으로 나타나는 왕씨를 추적해보면 前漢宣帝 때 훈족(흉노족)單于呼韓耶에게 시집보낸 王昭君(胡地無花草春來不似春)이 있고 한나라 때 중신 王尹이 있으며, 전한말기에 왕망(王莽)이란 제왕이 있다. 송나라 神宗 때의 王安石이 있다. 명나라 초기에 3대성조의 王貴妃, 이부상서王文, 太監王振, 태감王誠,, 내시감王長隨, 9대憲宗황후 王氏, 헌종 때의 西敞督主 王直, 武宗때 王岳, 세종의嬪인 왕영 --- 등 왕씨가 득세했는데 고려를 세운 남경의 왕건과 명나라 남경의 왕씨가 연고지가 같다. 청해성과 남경이란 같은 땅에 漢, 唐, 宋, 明나라가 있었기 때문이다.

한반도에는 이러한 왕씨의 연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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