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경제

선배 '롤 모델' 3인... 수십억 번 게이머들이 엇나가지 않는 이유

太兄 2025. 3. 18. 19:52

선배 '롤 모델' 3인... 수십억 번 게이머들이 엇나가지 않는 이유 [여기 힙해]

이상혁·김혁규·한왕호 선수
모범 보여준 '선배의 자질'

입력 2025.03.17. 23:37업데이트 2025.03.18. 17:59
(왼쪽부터) T1의 ‘페이커’ 이상혁(29), KT롤스터에 있다가 최근 군 복무를 앞두고 있는 ‘데프트’ 김혁규(29), 한화생명e스포츠 ‘피넛’ 한왕호(27)

국내 프로게임단 한화생명e스포츠가 올해 처음으로 열린 리그 오브 레전드(LoL) 국제대회 ‘퍼스트 스탠드’에서 첫 우승 팀의 영예를 거머쥐었습니다. 한화생명은 지난 16일 서울 종로구 LoL 파크에서 열린 2025 퍼스트 스탠드 결승전에서 유럽 팀 카르민 코프(KC)를 3 대1로 꺾고 우승컵을 들어올렸습니다. 2018년 한화생명 e스포츠단이 창단한 후에는 첫 국제전 우승, 전신인 락스 타이거즈를 포함하면 두 번째 국제전 우승입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락스 타이거즈의 막내였다가 지금은 한화생명의 주장인 피넛 한왕호 선수가 있습니다.

1020 남자들의 우상인 프로게이머들은 10대 후반에 데뷔합니다. 현재 1군에서 가장 어린 선수들은 2007년생입니다. 프로로 데뷔할 정도의 실력을 가진 선수들은 이미 10대 중반에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구단에 들어와 연습생 생활을 시작합니다.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10대의 삶을 포기하고 연습에만 매진하는 것이지요.

한화생명e스포츠의 피넛 한왕호가 3월 16일 서울 LoL파크에서 열린 '퍼스트 스탠드 토너먼트 2025 그랜드 파이널'에서 초대 챔피언에 등극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라이엇 게임즈 제공

그래서 잘 된다면 20대 초반에 수십억 이상의 연봉을 받으며 선수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아직 얼마나 큰 돈인지도 모를 나이에 가장 좋아하는 게임을 해서 버는 돈이지요. 중국 등의 해외로 진출하면 더 큰 돈을 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롤 프로게이머들이 불미스러운 사건 사고에 휘말리는 경우는 의외로 드뭅니다. 구단과 감독이 사건 사고를 일으키는 것보다 선수 사고가 더 적습니다. 해외에서 바라보는 한국의 롤 프로게이머는 단정한 외모에 술 담배를 거의 하지 않고 비속어도 거의 쓰지 않는 모범생입니다. 20대 초반에 수십억을 버는 남자들이 모여있는 집단에서 이 정도 사건 사고가 나오지 않도록 관리가 된다는 건 연예 스포츠 업계에서도 놀라워하는 부분입니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롤 프로업계를 10년 넘게 굳건히 지킨 이 세 명의 선배가 모범이 됐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T1의 페이커 이상혁(29), KT롤스터에 있다가 최근 군 복무를 앞두고 있는 데프트 김혁규(29), 그리고 한화생명 소속으로 퍼스트 스탠드 우승을 한 피넛 한왕호(27)입니다. 돈이 되는 여기 힙해 마흔 여섯 번째 이야기는 롤 게이머로 보는 선배의 자질입니다.

<1>모범이 되는 아버지 리더십 페이커

페이커 이상혁./오종찬 기자

10~20대에는 부모님이나 선생님보다 친구나 선배의 영향을 더 많이 받습니다. 선생님과 부모님의 훈계는 듣기 싫지만, 잘 나가는 선배와 형은 닮고 싶습니다. 같이 노는 친구 선배들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5번의 월드 챔피언십(롤드컵) 우승으로 게이머들에게 신적인 존재인 페이커는 강한 승부욕과 자기 관리로 묵직한 아버지 같은 리더십을 보입니다. 모두가 선망하고 업계 몸값이 가장 높은 그는 자신을 따르는 후배들과 팬들을 위해 사치를 하거나 술 담배를 하거나 욕설을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책을 읽고, 명상을 합니다. 인터넷 방송에서 비속어를 쓰는 후배에게는 따끔하게 혼을 내기도 하지요. 미국 힙합씬의 리더들처럼 그가 과시형이었다면 롤 프로게이머 분위기는 어떻게 됐을까요?

페이커의 가족들도 수퍼스타 가족의 정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작년 6월 신라호텔에서 열린 페이커 전설의 전당 초대 헌액식에도 부담스럽다고 참석하지 않은 그들은 대신 집을 후배 동료들이 마음껏 놀 수 있는 공간으로 꾸며줬습니다. 롤 선수들에게 가장 가고 싶은 곳은 화려한 술집이 아닌 페이커의 집입니다.

<2>어머니 같은 따뜻한 선배 데프트

KT롤스터에 있다가 최근 군 복무를 앞두고 있는 ‘데프트’ 김혁규(29).

페이커의 마포고 동기였고, 2022년 중꺾마(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의 신화를 쓴 데프트 김혁규 선수는 어린 후배들을 다독이는 어머니 같은 리더십입니다. SKT에 이어 T1에만 있었던 페이커와 달리 데프트는 거의 매번 팀을 바꿨습니다. 선수 계약이 기본 1년 단위인 게임 업계에서는 페이커 보다는 데프트 입장의 후배들이 더 많습니다. 불안한 구단과 무서운 감독님 사이에서 불안해할 수 밖에 없지요.

데프트는 그런 후배 선수들을 먹이고 재우며 다독이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구단이 해체되고, 감독들이 어른의 모습을 보이지 않아도 후배들은 데프트를 의지하며 선수 생활을 지속했습니다. 해외 원정 경기장에서 그의 숙소는 한국 어린 선수단의 사랑방이었습니다. 코로나 시기에는 후배들이 그의 숙소로 모여들자 4인 금지 원칙에 따라 본인이 집 밖을 나가기도 했지요. 지난해 11월 군 입대를 앞두고 열린 송별회에서는 1000명의 팬들과 수십명의 후배들이 함께했습니다. 이런 그의 공에 감사하는 것이지요.

어린 시절부터 함께한 스코어 고동빈은 데프트에 대해 “어리광을 부리기보다 행동으로 실력을 증명하는 선수였다”며 “남보다 많은 시간을 연습에 쏟아부었고 항상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시간이 흐르면서 뛰어난 선수를 넘어 리더로도 훌륭하게 성장했다”고 말했습니다.

<3>대치맘처럼 키워주는 피넛

3월 13일 서울 롤파크에서 열린 '퍼스트 스탠드 토너먼트 2025' 라운드 로빈 스테이지에 출전한 한화생명e스포츠의 피넛 한왕호./라이엇 게임즈

아직도 앳된 그의 외모처럼 막내 이미지가 강한 피넛은 꾸준함으로 후배들에게 모범이 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선수 생활을 오래할지 몰랐다”는 그의 말처럼 그는 ‘잘 버틴 사람이 가장 강한 사람이다’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락스 타이거즈의 막내로 시작한 그는 “형들에게 좋은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그 영향을 후배에게 베풀고 싶다”고 한 바 있습니다. 그의 락스 형들은 프로게임단 초기 적은 월급으로도 피넛이 먹고 싶다는 건 무조건 먹게 해줄 정도로 그를 아꼈습니다. 대부분 일찍 선수 생활을 끝내고 피넛이 스타 선수로 성장해나갈 때는 누구보다 뿌듯해했습니다.

이렇게 형들의 사랑을 많이 받은 피넛은 경기장에서 후배 선수들을 키우는 ‘대치맘 리더십’을 보여줍니다. 게임 경기에서는 자원을 많이 먹고 상대 선수들을 이기는 선수가 돋보이지만, 그는 자신을 희생하더라도 후배들이 더 빛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우승 트로피를 들 때도 후배들이 먼저 들 수 있도록 배려합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풀어주지는 않습니다. 젊은 혈기에 선을 넘는 후배들에게는 따끔하게 혼을 내기도 합니다.

10년의 역사를 쓴 이 세 명의 선수들은 단 한 번의 사건 사고도 없이 롤 프로게임 업계를 이끌고 있습니다. 이들을 바라보며 이들처럼 되고 싶어 선수 생활을 하는 후배들이 엇나갈 확률은 적습니다. 만약 이 세 명의 선수들이 사건 사고로 점철된 삶을 살았다면 현재 게임단은 어떻게 됐을까요? 선수들을 믿고 후원을 할 기업도, 게임단을 믿고 어린 자식들을 보낼 부모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현재 롤 게임단은 신용이 무엇보다 중요한 금융사들과 이미지가 중요한 고급차 브랜드들이 후원하고 있습니다. 세 명의 위대한 선수들에게 감사를 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