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진출 525개 기업, 캐나다엔 배터리 업체… 對美 수출기지 타격
[관세 전쟁] 한국 기업들, 관세 전쟁 한복판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일부터 멕시코와 캐나다에 25%의 보편적 관세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에 1일 서명했다. 이전까지 미국·멕시코·캐나다는 사실상 무관세를 적용받았다. 3국 내에서 생산한 부품과 재료를 더 많이 쓰도록 원산지 규정을 강화한 미국·멕시코·캐나다무역협정(USMCA)에 따라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을 겨냥해 멕시코·캐나다에 투자를 확대한 국내 기업들의 큰 타격이 예상된다.
멕시코에 진출한 국내 기업은 삼성전자·LG전자·기아·포스코·HL만도 등 525사(작년 상반기 기준)에 달한다. 한국 기업은 2022년부터 매년 멕시코에 1조원 넘게 투자했고, 2023년 한 해에만 37곳이 멕시코에 법인을 설립했다. 캐나다에는 LG에너지솔루션이 2조원 가까이 투자했고, 포스코퓨처엠·한온시스템 등도 진출했다. FTA 교섭대표를 지낸 최석영 법무법인 광장 고문은 “미국의 관세 부과가 각국의 보복으로 이어지는 ‘관세 전쟁’으로 번질 경우 글로벌 공급망이 심각하게 교란될 수 있다”고 말했다.
◇얼마나 많은 한국 기업이 얼마나 투자해 놨나
한국은 일본에 이어 아시아 국가 중 둘째로 많이 멕시코에 투자하고 있는 국가다. 한국수출입은행에 따르면 작년 1~9월 한국의 대(對)멕시코 투자액은 12억700만달러(1월 31일 환율 기준 1조7602억원)에 달한다. 한국의 국가별 대외 투자 순위 8위 국가로서, 우리가 중국에 투자한 금액보다 많았다. 재계 관계자는 “한국 기업들이 멕시코에 투자를 확대한 건 온전히 미국 때문”이라며 “미국의 대중 무역 제재가 본격화하면서 미국으로 들어갈 때 무관세 혜택을 받을 수 있고 임금이 낮은 멕시코를 생산 기지로 택한 것”이라고 말했다.
작년 1~11월 기아 멕시코 공장에서 생산한 자동차 25만3000대 중 절반 넘는 12만9000대가 미국에서 판매됐다. 같은 기간 기아 미국 판매량(약 72만3000대)의 약 18%가 멕시코에서 생산된 것이다. 유럽이 불황에 빠진 상황에서 기아는 미국 시장에서 선전을 해왔는데, 멕시코 공장이 효자 역할을 해왔다. 이항구 아인스(AINs) 연구위원은 “멕시코 관세 부과로 부품 및 완성차 가격이 오르면서 북미에 진출한 한국 자동차 업계 전반이 타격을 받는 연쇄 효과가 일어날 것”이라고 했다. 삼성전자는 멕시코 케레타로와 티후아나에서 가전 공장과 TV 공장을 각각 운영하고 있고, LG전자도 레이노사(TV), 몬테레이(냉장고), 라모스(전장) 등에 생산 기지를 두고 있다.
니켈·코발트 등 배터리용 핵심 광물이 풍부한 데다 대미 수출 무관세가 적용됐던 캐나다에 투자한 기업들도 고민에 빠졌다. LG에너지솔루션과 완성차 기업 스텔란티스의 배터리 합작 기업 ‘넥스트스타에너지’는 작년 10월 캐나다 온타리오주에서 배터리 모듈 양산을 시작했다. 포스코퓨처엠은 양극재 공장을 조성 중이고, 한온시스템은 자동차 부품 공장을 추진하고 있다.
◇연쇄적 교란도 우려돼
트럼프발 통상 전쟁으로 글로벌 공급망이 연쇄적으로 교란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고(高)관세가 제품 가격에 미치는 직접적인 영향뿐 아니라, 생산 거점 이전 등 기업의 사업 구조 재편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작년 10월 보고서에서 미국이 한국 등에 보편 관세를 부과하고, 주요국이 맞대응하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펼쳐진다면 한국 수출이 최대 448억달러(약 65조원) 감소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재계에서는 이를 뛰어넘는 피해도 배제할 수 없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강대강 대결을 예고한 중국이 희토류 등 첨단 원자재 수출 통제를 확대하는 방식으로 미국 산업의 공급망을 흔들 경우, 한국도 영향권에 들어갈 수 있다. 지난달 24일 한국경제인협회가 주최한 세미나에서 조수정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미국의 대중 압박이 강화될수록 중국의 상품과 자본이 한국 시장으로 대거 유입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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