太兄思想

눈 뜨고 빼앗긴 고대사 영토

太兄 2025. 2. 1. 18:01

<눈 뜨고 빼앗긴 고대사 영토>
- 요동을 요령성  요하(遼河)동쪽으로 옮겨놓고 한국 고대사를 강탈하는 중국

이 지도는 후한의 13주 중에 유주(幽州)의 속군을 표시한 지도인데 역사적인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 그야말로 순 엉터리 지도이다. 유주는 한국 고대사, 특히 고조선과 고구려와 직접적인 관련을 맺고 있기 때문에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지 않으면 눈뜨고 역사강토를 빼앗길 수 있다(지도에 보다시피 이미 다 빼앗기고 말았지만).

1. 기주와 유주
고대 중국의 하(夏)나라 우왕은 천하를 구주(九州)로 나누고 황하 안쪽의 하북성과 산서성 지역을 기주(冀州)라고 했다. 기(冀)는 북방을 의미한다. 전한 무제가 고대 연국(燕國)을 포함하여 하북성 기주북방의 중부지역을 분리하여 유주(幽州)를 설치했다. 유(幽)는 그윽하고 어두운 곳이라는 뜻이다. 산서성에는 병주(幷州)를 설치하여 기주는 유주와 병주 3개주로 분리시켰으며 후한은 전국을 13주로 나뉘었다.

기주를 쉽게 설명하면 삼국지 소설에 나오는 하북의 원소와 조조가 장악했던 지역이며 대체적으로 황하 이북의 하북성 남부 한단시, 형대시, 형수시, 석가장시 일대의 중원권에 속하는 지역이다. 기주의 치소는 오늘날 석가장시 고읍현(高邑縣)이며 기주자사가 다스렸다. 삼국지의 상산 조자룡의 고향이 옛 상산국, 지금 석가장시이다.

석가장시 북쪽, 즉 기주 이북의 하북성 중부 보정시, 창주시 일대가 유주이었으며 유주의 북단이 요서, 요동군과 옛 위만조선으로 부터  빼앗아 설치한 현토, 낙랑, 대방군이다.
요서와 요동을 가르는 분기점이 대체적으로 요수(遼水)이며 현재 요하(遼河)는 '요(遼)'자만 같을뿐 고대의 요수하고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거란이 대요를 건국한 이후 최고의 명군으로 꼽히는 성종 야율융서(耶律隆緖) 치세기에 '요나라의 강'이란 의미로 요하라는 명칭이 붙여졌다. 10세기말 11세기초이다.

2. 유주 요동군은 고대의 한중 경계선
유주는 지금 북경과 천진을 넘어서지 못했으며 그 동북지방은 오환, 선비, 부여, 고구려, 옥저, 동예, 삼한(후삼한), 초기 백제와 신라의 영토이었다. 고대 연나라의 수도이었던 계현(薊縣)을 치소로 삼고 유주자사를 두었다. 유주 탁군이 유비의 고향이며 수,당이 고구려를 침공할 때에 수양제와 당태종이 탁군과 계현에 군사를 집결시켰던 동북지방의 최전방이었다.

만약에 낙랑군과 고구려 평양이 대동강에 있었다면 수, 당군은 압록강 쯤에서 대군을 집결시켜 공격준비를 했을 것이다. 유주 탁군과 계현에 대군을 집결시켜 공격준비를 했던 이유는 그 이북은 당시 수, 당의 영토가 아닌 고구려 영토이었기 때문이다. 

고구려의 서북영토는 요수(遼水)를 건너 영주(營州)에 이르렀다.
<구당서>에 이르기를, "그 나라는 평양성(平壤城)에 도읍하고 있으니, 곧 한(漢) 낙랑군(樂浪郡)의 옛 땅으로서 장안(長安)의 동쪽 5천 1백 리에 있다. 동쪽으로 바다(필자 주, 창해)를 건너 신라에 이르고 서북쪽은 요수(遼水)를 건너 영주(營州)에 이르며, 남쪽은 바다(창해)를 건너 백제(百濟)에 이르고 북쪽은 말갈(靺鞨)에 이른다."고 하였다.

3. 연나라가 탈취한 고조선(번조선)에 설치한 연5군과 연장성.
유주의 속군 가운데 지도에 표시된 상곡, 어양, 우북평, 요서, 요동은 서기전 3, 4세기경에 연나라 장수 진개가 고조선(번조선)을 급습하여 천리를 물리치고 빼앗았던 영토이며 연5군을 설치했다.

<전국책> 연책(燕策)편에 전국시대의 유세객 소진이 연나라 문후를 만나  '燕東有朝鮮·遼東(연동유조선요동)', 즉 연나라 동쪽에 조선요동이 있다고 했다. 연나라가 동쪽에 인접한 조선을 치고 5군을 설치한 이래 이 지역은 유주, 평주로 지명이 변천되면서 고대 한중양국이 격돌하는 지점이 되었다. 중요한 사실은 고대 연국은 연5군을 넘어서지 못했으며 연국의 도읍지 계(薊)가 북경이라는 주장은 성립될 수 없다는 것이다.

연나라는 이곳을 지키기 위하여 조양-양평 구간에 연장성을 쌓고 5군을 설치했다. <사기> 조선열전은 "진(秦)이 연(燕)을 멸한 뒤에는 [그곳을] 요동외요(遼東外徼)에 소속시켰는데, 한(漢)이 일어나서는 그곳이 멀어 지키기 어려우므로, 다시 요동고새(遼東故塞)를 수리하고 패수(浿水)에 이르는 곳을 경계로 하여 연(燕)에 복속시켰다."고 했다. 요동고새는 연장성을 지칭한다. 대체로 갈석산의 동쪽 기슭의 관문인 자형관 부근의 상곡군 조양에서 부터 갈석산에서 발원하는 요수를 따라 패수와 합수하는 지점까지 축성한 연장성을 경계로 조선과 중원국가가 대치하였다.

이 연장성을 수리하여 진시황이 만리장성을 축조하여 연진장성(燕秦長城)이라고 불렸으며 만리장성의 동단이 되어 <태강지리지>에 '낙랑군 수성현에 갈석이 있고 장성이 일어난 곳이다(樂浪 遂城縣有碣石.長城所起);고 했던 것이다. 참고로 한국인 관광객들이 방문하는 북경외곽의 북경-산해관 구간의 만리장성은 명나라때 주원장이 북원(北元)의 남침에 대비하여 장군 서달로 하여금 쌓게한 명(明)장성이며 진시황  당시의 만리장성이 아니다.

4. 유주를 분리하여 평주5군을 설치하다.
서진(西晉, 266-316)시대에는 요서군 일부를 분리하여 창려군을 만들고 요동군, 낙랑군, 대방군, 현토군과 함께 유주에서 떼어내 평주(平州)로 삼고 선비족 모용외를 평주자사로 삼았다. 유주로 부터 평주를 분리한 이유는 이곳은 대대로 한(漢)족이 아닌 오환 선비 고구려 등 동이계 북방민족이 거주하여 직접 통치가 어려운 변방이었기  때문이다. 

유주를 표시한 지도의 심각한 문제점은 유주의 속군이 된 연5군이 북경과 천진을 넘어 하북성 북부, 만주 요령성까지 뻗어 있으며 옛 위만조선의 영토이었던 낙랑과 대방이 평안도 황해도까지 표시되어 있다는 것이다. 고대의 한나라가 만주 요령성을 넘어 한반도 서북부까지 점유했다는 황당무계한 내용을 실제로 지도상에 표시하고 그 지도를 받아서 한국 강단사학은 아무런 반론도 없이 좋다고 베껴쓴 것이다.

5. 낙양에서 요동군까지는 3600리.
<후한서>군국지 요동군조를 보면 후한의 도읍지 낙양에서 요동군까지 거리를 "3600리" 라고 써 놓았다. 교통이 발달하지 못했던 고대에 실제로 이동하는 거리이므로 직선기준으로 환산하면 넉넉잡아 800km 정도이다. 구글 지도상에 낙양을 중심으로 이 거리를 대입하면 북경과 천진을 넘어서지 못한다.

지도상에는 요하이동을  요동군으로 표시했는데 낙양에서 이곳까지는 7000리가 넘어야 하므로 후한서 요동군조의 기사에 부합하지 아니한다. 중국사서를 한번만 읽어보았다면 단박에 거짓임을 알 수 있는데도 아무런 반론도 없이 그대로 옮겨 놓았다. 그 이유는 한국 고대사의 강역을 축소시키고자하는 동북공정과 그에 부용하는 한국강단사학의 이해관계가 일치했기 때문이다. 요수를 요하로 옮겨 놓음으로써 요동의 위치를 순식간에 하북성 보정시 북부에서 요령성으로 수천리 밖으로 옮겨 놓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곳에는 요동의 지표지명인 갈석산에서 흐른다는 요수도 없고 갈석산도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연장성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병도는 만리장성을 황해도 수안까지 끌어다 놓았다. 이런 자를 한국 고대사의 태두라고 추종하고 그 학설을 지금까지 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다. 사서를 읽고도 못본척 하는 함량미달 강단사학이 한사군 재한반도설을 포기하지 않는한 중국의 역사침탈은 계속될 것이다.

6. 갈석산과 요수는 어디에 있었나?
한중 고대사에서 갈석과 요수는 대단히 중요한 지표지명이다. 윤내현 교수 이후 민족사학계는 갈석과 요수의 정확한 위치를 비정하기 위하여 노력했다. 지금까지 민족사학계는 진황도시 노룡현에 갈석산이 있고 산해관을 지나는 난하를 요수로 보고 요령성 요하설을 부정했다. 요하설보다는 진일보한 주장이지만 일부에서는 사서기록에 부합하지 않는 난하를 부정하고 북경 외곽을 흐르는 조하, 영정하, 심지어 하북성 남부의 호타하까지 거론했지만 이 역시 사서기록과 일치하지 않는 자의적인 추정에 지나지 않았다.

최근에는 심백강 원장이 요수=역수설을 제기한 이래 역수(易水)가 정설로 인정되는 추세이다. 역수(易水)는 세개의 물줄기가 있다. 보정시 역현(易縣)을 흐르는 북역수, 중역수가 있으며 그 중에 가장 남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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