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은 ‘모자의 나라’로 불렸다. 계절·신분·성별 등에 따라 온갖 꼴의 모자를 갖춘 조선 특유의 ‘쓰개 문화’ 덕분이다. 100여 년 전 조선을 방문했던 미국 천문학자 퍼시벌 로웰은 이렇게 전한다. “단편적인 묘사만으로 조선 모자의 가치를 다 보여주기 어렵고 품위에도 맞지 않다.” 모자를 외출용 장식품으로 사용하던 서양인에게 조선의 다채로운 모자가 꽤 신기했던 모양이다. 다른 기행문을 보더라도 조선을 ‘모자의 왕국’ ‘모자의 천국’ ‘모자의 발명국’이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 선조의 지혜가 담긴 다양한 모자와 그에 얽힌 사연을 소개한다.
이한길 기자
앉으면 몸 전체 덮을 정도로 커진 갓…왕실서 ‘축소 정책’ 썼답니다
남자 모자
흑립
뒤로 갈수록 커지다 대원군 때 작게 변해
갓의 본래 이름은 ‘흑립(黑笠·검은 갓)’이다. 옻칠을 했다는 뜻에서 ‘칠립(漆笠)’이라 부르기도 한다. 양반들이 주로 외출용으로 썼는데, 사대부들이 가장 아끼고 사랑하던 모자였다고 한다. 조선시대 사대부가 사람을 대할 땐 반드시 갓을 써야 했다. 조선사 600년 동안 갓의 모양도 유행에 따라 변화했다. 연산군 시대엔 모자 꼭대기가 뾰족하고 아래는 넓은 갓이 유행했다. 고깔 모양과 비슷한 형태다.
영국 화가 엘리자베스 키스(1887~1956)가 그린 갈모를 쓴 조선 사람. [코리아나 화장박물관 제공] |
갓끈도 다양하다. 영·정조 때는 호박을 엮은 긴 끈으로 장식하기도 했다. 머리카락보다 가늘게 다듬은 대나무 올을 엮어 옻칠을 하고 붉은 실을 감은 갓끈은 왕이 쓰던 것이다. 옥으로 해오라기를 조각해 갓 꼭대기에 붙이기도 했다. 선비들의 고고했던 풍모를 엿볼 수 있다.
백립(白笠)
평상시에 썼지만 점차 국상 때만 써
망건(網巾)
최고급 제품 재료는 사람 머리카락
중국에서 유래한 망건은 명나라를 세운 주원장이 몽고족의 풍습을 없애기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청나라 때부터 변발 풍습이 유행하면서 더 이상 망건을 만들지 않게 됐다. 망건 생산이 중단되자 조선 망건이 중국에 역수출되는 일이 생겨났다. 중국에 간 조선 사신의 망건이 도난당하는 일도 종종 벌어졌다고 한다.
탕건(宕巾)
벼슬아치들이 쓰는 갓 맵시 잡기용
상투관(上套冠)
서민층은 종이로 만들어 써
면류관(冕旒冠)
왕세자 여덟 줄, 왕 아홉 줄, 황제 열두 줄
중요한 행사 때 쓰는 모자인 만큼 많은 의미가 숨어 있다. 유에는 왕의 시야를 가려 악을 보지 말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면류관 양 옆에 달린 작은 솜뭉치는 귀를 막아 나쁜 말을 듣지 말라는 뜻이다. 간신배들의 감언이설에 속지 않기를 바라는 뜻을 모자의 형상에 담아냈다.
전립(戰笠)
무관·포졸들이 쓴 조선시대 ‘철모’
임진왜란 당시 전립에 관한 권율 장군의 일화가 있다. 권율은 전투가 벌어지면 진지를 누비면서 제대로 싸우지 않는 병사의 전립에 칼로 표시를 해뒀다고 한다. 전투가 끝난 뒤 전립에 표시가 돼 있는 병사들은 즉결 심판에 처해졌다.
여자 모자
화관(花冠)
점점 커지는 가체의 폐단 잡으려다…
조선 정부는 이 같은 폐단을 바로잡기 위해 화관을 권장했다. 하지만 화관이 보편화되면서 또 다른 문제가 벌어졌다. 옥이나 금·조개 등으로 화관을 장식하는 데 사치하는 여성이 늘어난 것이다. 가체든 화관이든 과도한 꾸미기와 사치가 조선 시대의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올랐던 셈이다.
족두리
노론은 오목한, 소론은 볼록한 모양
옷깃의 길이나 제사 형식, 시부모님에 대한 호칭도 서로 다를 정도로 생활 양식도 차이를 보였다. 족두리 역시 마찬가지였는데, 노론파는 오목하게 들어간 겹족두리를, 소론파는 볼록한 홑족두리를 썼다고 한다.
굴레
돌부터 네댓 살까지 쓰는 양반집 모자
날씨에 따라
삿갓
햇볕·비 막거나 외출 여성이 얼굴 가리거나
풍차(風遮)
방한용 두건…뒤에서 보면 풍뎅이꼴
겨울에 추위를 막기 위해 쓰는 방한용 두건이다. 뒷목·귀·볼을 모두 감쌀 수 있도록 뒷부분이 목덜미까지 내려오고 귀와 볼을 감싸는 ‘볼끼’가 달려있다. 풍차는 독특한 모양 때문에 ‘풍뎅이’이란 별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뒤에서 보면 풍뎅이를 닮았다 해서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직접 보고 싶다면
옛날 여인들의 생활문화, 화장문화의 역사를 담고 있는 국내 최대 규모의 전문 화장미술관이다. 코리아나화장품(주) 회장 유상옥(兪相玉)이 30년간 수집한 화장도구와 규방에서 쓰는 물건들을 모아 2003년 11월 20일 개관하였다. 코리아나화장품(주)의 복합 문화공간인 스페이스 시(space*c) 건물 5~6층에 자리잡고 있다.
문의 02-547-91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