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경제

일본 이시바 총리의 '아시아판 나토' 구상을 주목한다

太兄 2024. 10. 11. 18:18

일본 이시바 총리의 '아시아판 나토' 구상을 주목한다

취임 직전이기는 하지만 중·러·북 핵 동맹 대항하여
아시아판 나토 창설하고 동맹과 미국 핵무기 공유 제안
비핵 3원칙 뛰어넘은 파격
군사 대국 日에 우리 거부감 크고 日도 개헌 의석 확보 전엔 힘들지만
한국 안보 관점서 진지한 검토를

천영우 前 청와대 외교안보수석·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
입력 2024.10.11. 00:15업데이트 2024.10.11. 00:18

지난 1일 취임한 이시바 시게루 신임 일본 총리는 과거사 문제에는 전향적 자세를 취해왔으나 안보 분야에서는 일본의 역할 확대를 주장해 왔다. 자민당 총재에 선출되기 직전인 9월 25일 미국 허드슨 연구소에 기고한 “일본 외교 정책의 장래”라는 제목의 글에서 중국을 억지하고 중국·러시아·북한 핵 동맹에 대항하기 위한 방안으로 ‘아시아판 나토’를 창설하여 그 틀 내에서 미국이 핵무기를 역내에 반입하고 동맹국과 핵을 공유할 것을 제안했다. 또한 새로운 안보 전략을 뒷받침하기 위한 국가안보기본법 제정과 평화헌법의 개정과 함께 미·일 안보 조약을 보통 국가 간의 상호 방위 조약으로 업그레이드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이시바의 지론은 10년 전 현행 헌법의 재해석을 통해 집단적 자위권의 근거를 마련한 고 아베 신조 총리의 안보 정책과 맥을 같이하고 있지만 그 배경이 되는 동아시아의 안보 지형이 근본적으로 달라졌다. 특히 러·북 동맹이 출현하고 북한이 핵미사일 전력을 대폭 증강하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의 핵전력이 여기에 가세하면 미국의 확장 억지는 무력화될 수 있다는 이시바의 전략적 안목이 눈길을 끈다.

이시바의 핵 반입 및 공유 제안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발표한 ‘비핵 3원칙’, 즉 ‘핵을 보유하지 않고, 만들지 않으며, 반입하지 않는다’는 원칙의 폐기를 전제로 하고 있다. 일본은 국가 안보를 미국의 확장 억지에 의존하면서도 일본이 공격받을 때 일본을 지키는 데 미국이 사용할 핵무기를 적재한 미국 전략 잠수함과 전략 폭격기의 일본 기항과 착륙을 금지하는 ‘비핵 3원칙’을 견지해 왔다.

이러한 비핵 근본주의는 세계 최초로 원자폭탄 피폭을 당한 트라우마의 산물이지만 대한민국의 안보에는 폐를 끼치는 측면도 있다. 미국의 전략 자산이 한반도에 가까운 위치에 있을수록 대북 확장 억지의 신뢰성과 실행력이 강화되고, 그만큼 국민들을 안심시키는 효과가 크다. 요코스카와 사세보의 미국 7함대 핵심 기지에 핵무기를 적재한 오하이오급 미국 전략 잠수함이 기항하는 데 제약이 없어지고, 요코다와 가데나 미 공군기지에 전략 폭격기가 착륙할 수 있으면 미국 전략 자산이 한반도 주변에 상시 전개하거나 더욱 빈번하게 출동하기가 지금보다 훨씬 용이해진다. 나아가 미국이 한국 및 일본과 나토 방식의 핵 공유 체제를 구축하는 것도 전술 핵 재배치 이상의 대북 억지력 강화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1970년 핵비확산조약(NPT)이 발효되기 전부터 시행되어 온 나토의 핵 공유 체제와는 달리 동아시아에 핵 공유 체제를 도입하는 것은 핵 비확산 체제를 약화시킨다는 논란을 초래할 수 있고, 국내에서도 종북·반미 세력의 거센 저항을 촉발할 것이다.

 

이시바 총리가 미국과의 기존 양자 동맹 체제를 업그레드하여 ‘아시아판 나토’로 발전시킬 수 있다는 견해는 현실성이 의문시된다. 집단 안보 체제의 생명력은 위협 인식과 안보 이해관계의 공통성에서 나온다. 나토 회원국 간에는 소련이 공통의 적이라는 데 이견이 없었고 회원국 하나가 소련의 침략을 당하면 다른 모든 회원국도 자국이 침략당한 것으로 간주하여 공동으로 소련과의 전쟁에 나서는 데 반대할 나라가 없었다. 또한 유럽에서는 안보 문제에 대한 다자적 협의와 해결의 전통이 1648년 웨스트팔리아 조약부터 거의 4세기에 걸쳐 축적되어 왔다.

그러나 동아시아에서는 위협 인식과 안보 이해관계가 나라마다 상이하여 집단 안보 체제 구축의 정치적 기반이 결여되어 있고 다자 안보 협력의 역사도 일천하다. 예컨대, 중국이 일본이나 필리핀을 공격했다는 이유로 한국이 중국과 전쟁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고, 한국이 중국의 공격을 받을 경우 일본이나 필리핀의 사정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결국 동아시아의 안보 문제는 미국과의 양자 동맹 체제를 통해 해결할 수밖에 없고, 양자 동맹을 연결하는 소다자주의(mini-lateralism)로 이를 보완해 나가는 것 외에는 현실적 대안이 없다. 한·미·일 3자 안보 협력 체제가 핵무장한 북한과 중·러·북 3자 연대에 대항할 실질적 능력을 갖춘 유일한 소다자적 틀이지만 현 단계에서 이를 3자 동맹으로 발전시키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이시바 총리의 구상은 자민당이 일본 국회에서 개헌에 필요한 의석을 확보할 때까지는 실현 가능성이 희박하고, 일본의 군사적 역할 확대에 대한 한국 내의 거부감도 만만치 않다. 그럼에도 대한민국 안보의 관점에서 진지하게 검토해 볼 여지가 있어 보인다.